30대 장애인 여성의 체육관 단체 운동 프로그램 참여기
어릴 때만 해도 지역 운동은 내게 친숙한 존재였다. 긴 재활병동에서의 시간을 마무리하고 퇴원 후, 수치료실에서 재밌게 놀던 나를 기억한 엄마는 재활에 제일 좋다는 수영장에 나를 보냈다. 다른 아이들은 한 달이면 떠나는 초급반을 나는 꼬박 일 년을 채우고 떠날 수 있었다. 다리 근력이 많이 약한 탓이었다. 그래도 그 후로는 나름 승승장구였던 것 같다. 여전히 많이 느리고 수영장에서 맨 뒷줄을 차지하고 다른 친구들이 마지막 바퀴를 돌고 모두 시작점에 모여있을 때 나는 그 대척점에서 벽을 박차고 앞으로 나아갔지만, 상급반도 올라가고 연수반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그렇게 오래 해서일까. 어느 순간부터 수영이 너무 힘들고 하기 싫었다. 그래서 공부를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공부를 하니 수영이 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 둘 사이를 와리가리하다가 어느 순간 수영장에 가지 않았다. 대신 요가를 다녔다. 나마스떼. 합장하고 인사하고 김건모의 아름다운 이별이 피아노로 흘러나오는 따뜻한 요가 수업실의 분위기를 기억한다. 프로그램 이름도 어찌나 많은지. 나는 그 중에서 힐링요가를 제일 좋아했다.
그러다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수영을 다시 찾았다. 체육관에 친구와 함께 자유수영을 신청하고, 그 김에 친구가 듣고 싶다는 방송댄스를 등록했다. 끝에는 같이 가자던 친구가 못 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나도 가지 않게 되고, 흐지부지가 되어버렸지만… 어쨌든 나는 단체 운동 프로그램에 별로 크게 거부감이 없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 장애가 장애로 무겁게 다가왔다. 계단을 난간 없이는 오르기 힘들고, 걸을 때도 휘청거리는 일이 잦아졌다. (중심을 잡지 못해 이 글을 쓰기 전에도 진짜 추하고 아프게 넘어졌다.) 자전거를 끝내주게 잘 타서 지나가던 학생들이 탄성을 자아내게 했던 나인데, 오랜만에 타보고 싶어 자전거를 탔더니 페달도 무겁고 무엇보다 중심이 잡히지 않아 도저히 길게 탈 수 없었다. 이게 내 장애 때문인 건지, 아니면 내가 노오력을 하지 않아서인 건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이런 상황이다보니 단체 운동 프로그램을 참여한다는 것이 조금 겁이 났다.
그래도 운동을 하고 싶어서 마동석이 되고 싶다는 일념 하에 여성전용 피트니스에서 피티를 시작했다. 선생님께서 내 몸에 맞춰 잘 이끌어주신 덕분에 운동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 적은 없었다. 피티를 시작한 건, 생각해보면 정말 잘한 결정이었다. 앉았다 일어나는 게 한결 수월해지고, 오래 걸었을 때 피곤이 덜했다. 계속 하고 싶었으나 여러 이유로 피티를 그만두게 되었다. 조금의 텀을 두고, 나는 어머니와 함께 필라테스를 시작했다. 겨울이라 길이 미끄럽고 운동 가기 어려운 어머니를 보면서 함께 운동하면 어떨까 싶어 시작했는데, 이 역시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피티와는 결이 조금 달랐다. 필라테스가 몸의 근육을 이완시켜주고 움직이는 연습을 하는 것이라면 피티는 근력을 단단하게 잡아가는 느낌이었달까. 그래서 필라테스는 필라테스대로 두고 운동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필라테스와 피티 두 가지를 동시에 시작하기엔 돈이 감당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지역 체육관에 시선이 갔다. 어머니는 꾸준히 그리로 운동을 다녔지만 나는 수영과 방송댄스를 다녔던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 이후로 체육관의 운동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없다. 그곳에도 헬스장이 있다. 인기가 아주 많아 새벽에 일어나서 접수하지 않으면 금세 자리가 비어 신청할 수 없을 정도다. 가격이 저렴한 것이 가장 큰 이유이리라. 이제 차도 있겠다. 퇴근하는 길에 잠깐 들러서 운동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헬스장을 등록하려… 했으나…
깜빡했다.
허겁지겁 들어가보니 남은 건 다른 단체 프로그램들뿐이었다.
그냥 4월은 포기할까 싶다가, 운동을 위한 워밍업을 한다는 생각으로 ‘파워요가’라는 것을 수강신청했다. 그냥 힐링하고 몸을 풀어주는 건 지금 듣고 있는 필라테스면 될 것 같고, 좀 더 근력운동이 하고 싶어서 한 결정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 결정을 후회하게 된다…
첫 날부터 허둥지둥이었다. 챙겨놓은 운동복을 가지고 오지 않아 집까지 다녀오느라 수업에 늦게 들어갔다. 어정쩡하게 스피커 앞에 자리를 잡은 탓에 귀에 소리가 무식하게 울렸다. 쉬워보이는 동작도 내게는 어려웠다. 나는 중심을 잘 잡지 못했고 툭하면 쓰러지고 뒤로 구르고 넘어질 것 같았다. 발을 내려놓을 때마다 힘을 조절하지 못해 그곳이 체육관이 아니라 우리집이었다면 아랫집을 화난 헐크로 만들어 쫓아오게 했을 정도로 쿵쿵거렸다. 아, 실수했다. 이걸 듣는 게 아니었구나. 뭐 하나 동작을 제대로 따라가는 게 없었다. 창피했다. 내가 지금 여기서 뭐하는 거지. 동시에 그런 생각을 했다. 철판 깔아. 철판 깔고 그냥 하는 거야. 운동하는 내내 오락가락했다. 손목에 찬 애플워치를 보며 시리야 지금 몇 시야? 속으로 물었다. 야박한 내 애플워치는 운동 시작한 지 10분 됐다며 매몰차게 날 모른 척했다.
진짜 너무 창피했다. 중심을 못 잡고, 동작도 제대로 못하고. 방송댄스 배울 때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진짜 심한 몸치였다. 아니다, 원래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다이아몬드 스텝 같은 것도 못 밟아서 체육대회 때 그냥 멀거니 보기만 했었으니까. 하지만 한편으로는 재밌었다. 내가 몸을 이렇게도 움직이네. 단체 프로그램은 못 하겠으면 하지 말라고 나를 만류하지 않는다. 그냥 되도 않는 자세로 해도 일단 선생님이 둔다. 도와주실 때는 도와주시지만. 그래서 나는 그냥 누가 보든 말든 막춤 추는 사람처럼 최선을 다해 하는 시늉을 하기로 했다. 윗몸일으키기도 하나도 하지 못해서 선생님이 와서 잡아줘서 겨우 했다. 첫 주에 허리가 너무 아파서 별 생각을 다했다. 원래 허리 아픈 사람은 함부로 윗몸일으키기를 하면 안 된다는데. 이제 초등학교에서도 윗몸일으키기는 시키지 않을 정도로 좋지 않은 운동이라던데… 이거 하면 안 되는 거 아니야? (하기 싫어서 별 생각을 다했다.) 팔벌려뛰기도 개판이었다. 군대였으면 고문관으로 찍혀서 동료들의 원성을 샀을 게 분명하다. 그런데 재밌었다. 진짜 엉망이고, 남들 보기에는 저 사람 어디 아픈가? 너무 못하네? 생각할 수도 있어도 난 즐겼다. 물론 몸이 힘들어서 기진맥진했지만.
그리고 나가면서 수강철회할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 다음 수업에도, 그 다음 수업에도.
나는 꾸준히 나갔다.
이번 한 달만 버텨보자. 어쨌든 내가 시작했으니까 열심히 하자는 마음으로 수업을 따라가기 위해 내 나름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마침내 5월 수강신청 기간이 다가왔다. 재등록 기간은 홀가분하게 넘겼다. 파워요가는 다시 듣지 않을 거다. 차라리 옆 교실에서 하는 자세교정 운동이라면 모를까. 해보니 알겠다. 나는 이 수업을 따라갈 수 없다. 그리고 신규신청 기간에 마침내! 헬스를 신청하는데 성공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일이다. 이제 마지막 주에 접어들었는데…
파워요가… 수강신청… 할까…?
재등록기간 내내 고민했다. 하지만 에이 아냐, 헬스할 거잖아! 애초에 퇴근하고 시간도 이게 더 잘 맞을 거고, 창피스럽게 운동하지 않아도 돼. 그렇게 넘겼는데… 나는 결국 오늘… 파워요가를 수강신청했다. 재등록기간이니 등록하라는 선생님의 말에 대학원 원서 접수 기간을 놓치지 말라는 말을 들은 대학생처럼 뜨끔뜨끔거리다가 그만… 신청했다. 마음 속에서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지씨! 한 말씀만 해주십시오. 파워요가는 이제 거들떠보지 않겠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노코멘트하겠습니다…
롤링이라는 동작이 있다. 마무리 단계에서 공벌레처럼 누워서 무릎을 두 팔로 감싸안고 뒹굴뒹굴하며 허리를 이완시키는 것인데, 나는 아무리 해도 굴렀다가 돌아올 때 바닥이 닿지 않았다. 마지막 주인 지금, 나는 이게 된다. 윗몸일으키기할 때 아팠던 허리는 2주차에 접어들자 괜찮아졌고, 이제는 선생님이 잡아주지 않으셔도 발을 펄쩍펄쩍 뛰긴 하지만 혼자 올라올 수 있다. 중심도 떠듬떠듬 잡는다. 무엇보다 길게 느껴졌던 수업시간이 이제 익숙해지자 금방 지나간다. 재수강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내 몸에 맞춰주는 일대일 수업들에 너무 익숙해져 단체 프로그램의 이점을 잊고 살았다. 다시 하게 될 거라고 은연중에 기대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너무 못 따라가니까 아마 하기 힘들지 않을까? 내 안에서 선을 그었던 것 같다. 어릴 때는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노력하면 장애도 극복할 수 있는 것이라 믿었다. 세상이 나에게 그렇게 가르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점차 장애는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좌절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받아들였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고, 할 수 없는 것은 어떻게 하면 대체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했다. 그 과정에서 단체 운동 프로그램은 내게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장애로 인해 한계가 생기는 것은 맞지만 스스로 한계를 만들어서는 안 되는 것인데, 좀 안일했던 것 같다. …근데 뭐 비장애인도 운동이 어려워서 안 하는 사람 많을 텐데 장애인인 내가? 좀? 거리를 뒀다고 해서? 그럴 수도 있지 않나 싶다.어쨌든 난 해봤고 괜찮다는 걸 알았으니 앞으로도 여러 단체 프로그램을 참여하게 될 거고.
단체 운동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장애인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엉망으로 하더라도 괜찮으니까 해봤으면 좋겠다. 쉽지 않다는 걸 알지만, 사실 일대일로 맞춰주는 운동을 늘 하는 것은 비용적으로 큰 부담이 든다. 그렇다고 장애인이 운동을 안 하면 몸이 더 힘들어진다. 그래서 나는 얼렁뚱땅으로라도 몸을 움직였으면 좋겠다. 할 수 있는 동작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나는 겁도 없이 파워요가부터 시작해버렸지만 다른 난이도 낮은 운동들도 많다. 하지 말라는 말도 하지 않는다. 생각 외로 누구도 관심이 없다. 내가 없다고 믿는 것인지는 몰라도 나는 나한테 말 안 걸면 관심 없는 거라고 생각한다. 오늘도 파워요가 하면서 생각했다. (파워요가 한다는 말이 참 마음에 든다.) 나처럼 얼렁뚱땅으로 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좋겠다고. 겁먹지 말고 같이 운동합시다. 운동하고 건강해집시다! 파워요가 합시다!
thanks to.
처음 운동을 시작할 때 하기 어려운 자세가 있으면 이렇게 저렇게 바꿔서 하도록 지도해주시고, “회원님 하시기에는 무리가 아닐까요?”라는 말을 하지 않아주신 요가 선생님, 중심을 못 잡아 얼레벌레 하는 내게 수업이 끝나고 다가와 양말을 벗고 하면 좀 더 중심 잡기 쉬울 거라 조언해주신 회원분(양말 한 번 벗었다가 맨발이 좀 더 애매하게 힘든 것 같아 다시 미끄럼방지 양말을 신었습니다만 감사했습니다.), 본인 물품을 반납하러 가는 길에 제 물품도 함께 챙겨서 반납해주신 회원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