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왜 여자의 말을 믿지 않는가' 서평
오해하실까 미리 사족을 달겠다. (여자가) 죽어도 여자 말은 안 듣는 의사가 이 글의 정확한 제목이다.
나는 의사를 많이 만날 수밖에 없는 난치병 환자이며, 좋은 의사 선생님들 덕분에 큰 장애를 겪지 않고 일상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겪은, 또 주변에서 들은 몇몇 의사들은 여성에게 '아주 악질'이었다. 때문에 책의 내용에 공감하고 이 뿌리 깊은 여성 혐오적인 관행에 분노하게 되었다. 나는 모든 의사를 무조건 비난하거나 증오하지 않음을 미리 밝혀둔다. 그래도 안 읽을 사람은 안 읽는다는 것을 알지만 일단 쓴다.
책을 쓰고 목소리를 내는 것은 사회가 건전하게 바뀌어야 한다고 내는 각성의 목소리이며 사회운동이다. 이를 읽고 공감하고 서평을 쓰는 것 역시 그 사회운동을 지지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나는 의료계가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그리 함으로 인해 여성들이 좀 더 나은 의료를 받을 수 있기를, 수고하는 의료진이 더 존경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의사는 왜 여자의 말을 믿지 않는가
이 책의 제목은 상당히 자극적이다. 성실하게 의사를 진료하고 일하고 있는 최전선의 의료진에게는 불쾌감을 느끼게 할 수 있으며 여성 환자로 하여금 의사를 향한 불신을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 어쩌면 곱지 않은 시선으로 봤을 사람도 있겠다. 이 제목을 클릭하고, 이런 책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내게도 화를 내고 싶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책은 개인의 주관으로 쓰인 책이 아니다. 저자 '마얀 뒤센 베리' 역시 이것이 개인적인 경험이고, 그저 주변 여성들 몇몇이 겪은 '우연한'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했으나 사실 의료계의 성차별과 만연한 여성 혐오는 역사와 통계자료로 뒷받침할 수 있는 그 무엇보다 '객관적'인 이야기였음을 깨닫고 이 책을 집필하게 된다.
잠시 개인적인 이야기로 돌아가고자 한다.
여성분들 중에는, 살면서 이런 '의사 이야기'를 한 번쯤 겪어본 적 있으실 거라 생각한다.
의사 : 어떻게 오셨나요?
A : 배가 아파서 왔어요.
의사 : 그렇군요. 혹시 월경 중이신가요?
A : 아니요. 월경통과는 달라요.
의사 : 임신 가능성이 있으신가요?
A : 아니요, 없어요.
의사 : 단순한 스트레스로 인해 그런 걸 수도 있습니다.
자연스러운가?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
다음은 살집이 있는 여성 B의 이야기다.
의사 : 어떻게 오셨나요?
B : 최근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고 어지러워요.
의사 : 그렇군요. 혹시 월경 중이십니까?
B : 아니요.
의사 : (임신 가능성과 최근 식단 조절 등을 물어본 후) 아무래도 살을 빼는 게 좋겠습니다.
이제 의사는 A와 B가 아무리 다른 가능성을 제시해도 듣지 않는다. 왜냐하면 의사는 이미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월경'도 '임신'도 아니라면 여성의 질병 원인 중 제3순위로 '스트레스'를 꼽는다. 살이 찐 여성이라면 '살'이 문제다. 체중을 줄이기 위해 식단 조절을 하고 운동을 하라고 말한다. 언뜻 들으면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문제는 월경, 임신, 스트레스, 살 등이 원인이 아닌데도 이렇게 검사 없이 몇 분의 간단한 질의만으로 진단이 내려지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대다수의 여성 환자는 유난스럽다는 말을 듣는 것이 두려워한다. 조금이라도 의사에게 반기를 들면 전문가도 아니면서 왜 아는 척을 하려 드나, 하는 진상을 보는 눈으로 본다. 진료시간이 길어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대학병원의 경우, 패스트푸드점 드라이브 스루에서 진료를 하는 것보다 짧은 진료시간이 주어진다. 대개는 2분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물밀 듯 들어오는 환자를 감당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진료의는 최대한 빠르게 질의를 하고, 대다수를 자신의 농후한 경험에서 우러나온 지식으로 판단하고자 한다. 그 과정에서 빠르게 검사도 동반한다. 그러나 검사 결과에 답이 나오지 않을 경우 그것이 심인성이 아닐까 의심한다.
나는 무척 놀랐다. 이게 말이 되는가? 불치병을 추구하며 질병 없는 세상을 꿈꾼다 말하는 의학이 원인을 찾아 해결하려 애쓰기는커녕, 모든 것을 손쉽게 심인성으로 내몰고 있다. 이러한 정신의 신체화, 심인성 장애는 꽤 오랜 역사를 자랑하고 있으며 '특히' 여성에게 편중되어 나타난다고 저자는 말한다. '히스테리'한 여자의 이야기에 대해서는 다들 많이 들어보셨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히스테리'한 남성에 대한 이야기는 들어보았는가? 제인 에어에 나오는 다락방에 갇힌 아내, 그 히스테리 한 미친 여자의 이야기에 대해서도 들어본 사람은 아마 제인 에어를 읽은 이보다 적으리라.
오랫동안 비평가들은 히스테리든, 신체화든, 스트레스로 인한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증상'이든 심인성 질환이라는 개념에 오진의 위험이 크게 내재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이 문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논쟁은 영국 정신과 의사 앨리엇 슬레이터가 1965년에 쓴 사설에서 한 경고다. 히스테리 진단을 너무 자주 내리는 의사는 자신이 수수께끼를 풀었다고 착각하지만 사실 의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고 경고했다. 슬레이터 본인을 포함한 런던 국립병원에서 1950년대에 히스테리를 진단받은 환자 85명을 추적한 결과, 9년 후 환자의 60% 이상이 뇌종양과 뇌전증 같은 기질성 신경계 질환을 진단받은 것이다. 이 중 열두 명은 사망했다. "히스테리 진단은 무지를 위장하려는 것에 불과하며, 풍성한 임상 오류의 원천이다. 사실 착각일 뿐만 아니라 유혹이기도 하다."라고 슬레이터는 결론 내렸다. p.120
이것이 위험한 유혹인 이유는 심인성 질환과 기질성 질환을 진단할 때 필요한 증거의 양이 극명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증상을 신체 질환으로 진단하려면 관찰할 수 있는 병리학적 증거가 있어야 하지만, 심인성 질환은 사실 심인성 검사라는 것이 없으므로 추측만으로도 충분하다. p.121
엘리자베스 클로노프와 호프 랜드린은 1997년에 발표한 저서 <여성의 오진을 막아라>에서 여성에게 더 흔한 내분비이상, 신경장애, 자가면역질환을 포함한 수십 개 증상의 1차 징후가 정신과적 증상으로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두 사람은 동료 정신과 전문의들에게 "우울증, 불안장애, 신체화 장애가 여성에게 더 많은 이유는 부분적으로 이런 신체장애를 정신과적 장애로 오진하기 때문이다"라고 경고했다. p.121
확실히 통계로 보았을 때, 여성 환자가 남성 환자보다 정신질환을 앓는 비율이 더 높다. 그러나 이는 여성 환자가 "그 자체로 여성이 남성보다 정신과적 오진을 더 많이 받는 이유 중 하나다"라고 저자는 말한다. 또 "정신과 진단과 치료에서의 이런 젠더 격차는 여성의 증상을 '머릿속에서 나온 것'으로 무시하는 경향이 만들어낸 결과의 일부일 수도 있다"고도 말한다.
실제로 나의 친구 C는 고등학생 시절 허리가 아파 병원을 방문했다가 "잠을 잘 때 바르지 않은 자세로 자서" "앉아 있을 때 자세가 나빠서" 허리가 아픈 것이란 진단을 받았다. C는 어렸고 의사의 말을 신뢰했다. 좀 더 바른 자세로 잠을 자기 위해 베개를 바꾸고 정자로 눕는 등을 노력을 했다. 또 자리에 앉을 때는 허리를 꼿꼿이 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허리는 더욱 쑤시고 아팠고 나중에 가서는 다리가 저릿한 지경에 이르렀다. 의아함에 다른 병원을 찾아 정밀검사를 받고 나서야 정확한 진단명을 받았다. C는 척추측만증이었다.
이때 C는 또 한 번 공격을 당한다. '왜 이제야 왔냐'
억울한 말이 아닐 수 없다. 왜 이제 왔냐니! 그 말을 들은 C의 보호자, 어머니도 많이 속상해했다. 진작 병원을 찾았고 그때 제대로 된 진찰을 받지 못한 것뿐이다. 그건 환자의 잘못이 아니다. 탓해야 할 사람이 있다면 성실하게 진료에 임하지 않고, 자신의 경험에 그럴싸하게 살을 붙여 심인성 진단을 내린 첫 번째 의사의 잘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 보호자들은 저 말을 많이 듣는다. 나의 어머니 역시 들었다. 애 엄마가 이렇게 늦게 오면 어떡해, 애 엄마가 애가 아픈 걸 모르면 어떡해. 나는 반대 성별에게는 그런 호통을 치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살면서 정말, 단 한 번도. 드라마에서 싱글 대디가 자신의 어머니에게 애정 어린 구박을 받는 장면에서 보긴 했다. 역시 '드라마'로군, 했다.
C가 찾아간 병원은 동네에서 나름 명망 있다 알려진 병원이었다. 그럼에도, 이러한 진단을 받았다. 동네병원이라 그런 걸까? 하지만 대학병원에 입원했다가 감기를 뇌수막염이라고 진단받은 나는? 말도 안 되는 과잉치료로 꼬박 3일을 입원해 있던 기억이 난다. 그건 의사를 잘못 만나서? 단순히 여자들의 불행인가? 나는 사실 여태 그런 줄 알고 다시는 그 병원 안 가, 내가 조심할 거야 생각하며 살았다. 하지만 이 책이 말해준다. 통계가, 역사가 말해준다. 아니야.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하다못해 머리가 아프면 먹는 타이레놀의 정량조차 건강한 성인 남성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임상시험 자체가 남자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내용은 1장의 지식의 간극에서 상세히 다루고 있다. 그중 일부만 인용하고자 한다.
최근 매일 아스피린을 먹으면 심장질환 위험이 낮아진다는 연구를 내놓은 의사건강연구도 남성 22,071명을 대상으로 연구했지만, 여성은 한 명도 포함시키지 않았다. 1982년 미스터피트 연구로 알려진 '다중위험요소조정실험(MRFIT)에서는 식이요법과 운동이 심장질환을 예방할 수 있는지 조사했는데, 연구 대상 13,000명이 모두 남성이었다. p. 45
남성만을 기본값으로 설정한 연구는 모순에 빠지기도 했다. 1960년대 초에 '에스트로겐 농도가 낮아지는 폐경기가 오기 전까지는 여성이 심장질환에 걸릴 위험이 낮다'는 사실을 관찰한 연구자들이 여성 호르몬 치료법이 심장질환에 효과적인 예방법인지를 연구했는데, 연구에는 남성 8,341명과 여성 0명이 참여했다. p.45
너무 이상하다. 크릴새우가 좋다고, 라즈베리가 좋다고, 흑마늘이 좋다고. 실컷 떠들어대는 건강 프로그램들의 주시청자는 중년 여성인데 정작 그게 정말 중년 여성에게도 좋은 건지 알 수 없다. 하다 못해 여성에 대한 연구도 남자로 하는데! 이에 대해 여성 심장질환 권위자인 내니트 웽어 박사는 "의료계는 비키니를 보듯이 여성건강에 접근했으며, 여성의 가슴과 생식기관만 쳐다보았다. 여성의 다른 신체 부분은 여성 건강을 다룰 때 사실상 무시되었다"라고 언급했다. (p.47)
그렇다면 왜?
왜 여성은 배제하는가?
연구 단체는 여성을 배제하는 이유를 해명할 때, 서로 충돌하는 두 가지 설명을 제시한다. 때로 이들은 생식기관을 제외하면 남성과 여성은 아주 비슷해서 남성과 연구해서 결론을 도출해도 여성에게도 잘 들어맞는다고 주장한다. (후략) p.55
생의학계가 자신들에게 정확히 반하는 설명을 내놓으면서 이 변명은 더욱 의심스러워졌다. 여성과 남성이 너무나 유사해서 남성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여성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는 앞의 주장과 달리, 생의학 연구자는 여성과 남성은 너무 달라서 여성을 시험 대상에 포함할 경우 연구 모집단의 균질성을 파괴하고, 연구 결과에 '혼동'을 불러온다고 주장한 것이다. (중략) 여성은 남성과 다를 뿐만 아니라, 여성끼리도 서로 다르다는 뜻이다. 월경 주기에 따라 변하는 호르몬 농도와 호르몬 피임법, 호르몬 대체 요법, 임신이나 출산, 폐경 상태에 따라 여성은 너무 많은 '변수'가 끼어들어서 '명확한' 결과를 얻기가 더 힘들다고 말했다. 요약하자면 남성만 연구하는 편이 비용도 적게 들고 쉬우며, 여성의 몸은 연구하기에 너무 복잡하다는 주장이다. p.55
이 말은 나에게 있어 "그래서 연구 안 했다"라는 것처럼 들린다.
내내 겪는 그 지긋지긋한 월경통도 사실 없었을 수 있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이게 만약 전립선에 관련된 질환이었다면 어땠을까. 많은 여성들이 월경통을 겪는다. 하지만 겪지 않는 여성'도' 있다. 이 사실은 중요하다. 겪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게으른 의학이 여성을 저버렸다. 의학 연구에서 연구자가 관심 있는 주제는 연구자 자신이 가장 시급하다고 생각하는 주제이기 마련이다. 1990년에 슈뢰더 대변인이 "사람은 자신이 두려워하는 것에 자금을 쓴다. 남성이 대다수인 의학 연구 집단은 유방암보다는 전립선암을 더 걱정하기 마련이다."라고 언급했듯이 말이다. (p.55) 그게 싫었다면, 여성이 의사가 되었어야지! 여성은 이과를 기피한다는 낭설을 말하는 이들도 있는데, 남성 권력집단이 어떻게 여성의 의료계 진출을 막았는지는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책 여기저기에 포스트잇을 많이 붙였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라 밑줄은 긋지 못했다. 필기도 못했다. 이 책은 구매해야 하는 책이구나, 확신했다. 두고두고 읽고, 공부해야 하는 책이다.
이 책을 읽고 오랫동안 미루던 전원을 결심했다.
나는 희귀 난치병 질환자이며, 이 병을 국내에서 다루는 병원은 서울에 단 두 곳밖에 없다. 그중 한 곳을 아주 어릴 적부터 다녔다. 그러다 성인이 되면서 몸에 이상을 느껴 여러 차례 같은 문제로 예약을 잡고 왕복 4시간 거리 병원을 왔다 갔다 했다. 그때마다 의사는 내게 "원래 너 같은 질병을 가진 애들은 다 그래" "그건 당연한 증상" "좀 더 지켜보자" "수술이 답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이렇게 십 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제대로 된 검사 한 번 없이 2분 동안 상담만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의사를 믿었고, 수술이 답이 아닌 것은 나도 알았다. 하지만 나는 수술을 받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사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그 선생님께 받기 싫었다.) 나는 내 몸 상태가 어떤지 알고 싶었다. 내 상태에 대해 제대로 알고 앞으로를 대처하고 조심해야 한다. 희귀 난치병 환자가 가질 당연한 태도가 아닌가.
나는 왼쪽 다리의 통각을 잃었다. 뿐만 아니라 이제는 신경이 마비되는 듯한 느낌이 간혹 발까지 내려온다. 왼쪽이 이럴 때 병원을 찾아가서 음~ 지켜보자. 보글보글 끓는 사골국처럼 다시 뚜껑을 덮었더니 이젠 오른쪽도 그런다. 왜 다른 병원에 갈 생각을 못했냐고 한다면, 신경과를 제외한 다른 과 2개를 여기서 다니며 십 년 다닌 곳을 한 번에 바꾸기 부담스럽고 무서웠다. 의사의 가스 라이팅처럼 별거 아니고 다른 환우들이 다 이런 거라면? 하지만 난 모른다. 알 수 없다. 설명을 못 들었으니까, 설명은 들었어도 그게 객관적인 것이 아니니까! 그냥 의사의 경험, 추측이었으니.
한 번은 분노해서 이에 대해 강력히 설명을 요구했다.
'부자병'이라고 해서 '부인들이 많이 걸리는 병'으로 오래 서 있으면 '발의 신경이 마비되는 듯한 감각'을 느끼지만 휴식을 취하면 '돌아온다'라고 내내 의사는 말했다. 그러나 통각이 죽은 건 신경이 죽은 게 아니냐 하자 그렇다고 했다. 이건 돌아오느냐고 했더니 돌아온다. 했다. 신경이 죽은 게 살아날 수 있어요? 못 살아나지. 벽과 얘기하는 기분이었다. 결국 화가 났다. 인천에서 서울까지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다시 또 버스를 타고 병원으로!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역시 5분도 안 되어 나왔다. 평균 2분이었던 진료를 5분이나 받은 데다가, 쫓아내려던 간호사가 중간에 포기하고 결국 의사가 나도 알고 당신도 아는 당연한 사실, "신경은 죽으면 안 돌아온다"는 말을 들려주었다. 그 당시 내가 스물셋이었을 것이다. 나는 이를 꽉 깨물고 병원에서 나왔다. 내내 울고 싶었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했기 때문에 의연한 척 돌아왔다. 그 어떤 답도 찾지 못했다.
나는 그 후 병원 가기를 포기했다. 그래, 의사의 말대로 내 병은 고칠 수 없고 서서히 망가져가는 것을 받아들이고자 했다. 하지만 얼마큼 망가질지 어디까지 망가질지 마음의 준비는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런 의구심이 서서히 머리를 들었다. 게다가 이번에 엄마의 간병인으로 병원에 있을 때 너무 힘들었다. 병원에 있으니 겸사겸사 예약을 하고 지난번의 무례를 사과하기로 했다. 그래. 선생님은 내가 미성년인 시절부터 보셨기 때문에 늘 보호자를 대동한 내 모습만 생각하시는 걸 수 있다. 나는 이제 성인이고, 내 몸을 내가 관리해야 하니 내 상태를 정확히 알고 싶다고 당당히 요구하자.
결론은, 실패다.
사과만 하고 나왔다. 거기서 말이 끊겼다. 온 방의 분위기가 더 말을 할 수 없게, 어서 진료를 해야 하니 나가라고 말하고 있었다. 나는 원치 않는 사과를 했다. 나는 사실 미안하지 않았다. 이 글을 만약 그분이 보실까? 보신다면 말씀드리고 싶다. 저 사실 안 미안해요. 제가 환자로써 당연히 요구해야 할 것들이었다 생각합니다. 진상은 부리면 안 되는 거겠지. 그러나 의사 역시 태만을 부려서도 안 된다. 여러 차례 같은 문제로 문의를 했다면 최소한의 검사는 할 수 있었다. 더 예후를 지켜볼 수 있었다. 아무리 조곤조곤 말해도 나는 히스테리하고 증상이 없는데 꾀병을 부리고, 남들보다 더 건강해 보이는 주제에 복도 모르는 되바라진 여자애였다.
이미 전원을 하겠다고 선언을 한 후였다. 자료를 달라고 하자 그는 웃으며 알겠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또다시 이번 주 수요일에 의사를 마주하러 간다. 정말 싫다. 분명한 전원 의사를 밝혔지만 전원 의뢰서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별거 아니래서 돌아갔다가 척추측만증으로 수술한 내 친구, 그냥 어지럼증이라고 돌려보내 졌다가 치명적인 뇌질환이 밝혀진 내 가족, 이건 병리학적으로 찾을 수가 없다며 전형적인 검사 후에 환자의 정신병이라고 치부해서 오랫동안 길을 헤맸던 내 가족, 이들은 모두 여성이었다. 책에서 가장 강하게 와 닿았던 부분을 인용하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베리 메르츠는 이 일이 타이타닉 호의 진로를 바꾸는 일과 같다고 말했다. 과학이 지식의 간극을 좁히는 동안, 메르츠는 여성들이 자신을 믿고 주치의가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하더라도 이를 그대로 수용하지 말라고 강력히 권한다. 힘들겠지만 건강염려증 환자로 비칠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한다. "여성은 자신의 몸을 잘 알고 있다 몸 어딘가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면, 다른 의사를 찾아가야 한다." p.194
할 수 있는 한 의사를 많이 만나도 좋다. 토머스는 이야기할 때마다 항상 한 여성의 이야기를 빼놓지 않는데, 자신과 비교하면서 이 여성을 '영웅'이라고 부른다. 그 여성은 심장마비가 일어나는 중인데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도 아닌, 세 번이나 응급실에서 처치 없이 내보내졌다. "그때마다 그 여성은 '당신들이 뭐라고 해도 상관없어요. 나는 아프다고요!'라고 말했다. 반면 나는 한 번 되돌려 보내진 뒤에는 너무 당황해서 쓸데없이 소동을 일으켰다며 부끄러워했고, 다시 병원에 갈 용기가 없었다. 하지만 그 여성은 살기 위해 세 번이나 계속 병원에 갔다. 세 번째로 응급실에 들어갔을 때 의사는 그 여성에게 항우울제를 권했지만, 네 번째로 응급실에 갔을 때는 그 여성에게 이중 관상동맥우회술을 시술해야 했다." p.194
여성들이여, 우리, 죽느니 앓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