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었던 작년을 회고하며
작년 1월, 재작년에 일하던 업무 그대로 다른 근무지로 배정을 받았다.
예상하지 못했던 일인지라 당황스럽기도 했고, 이전 근무지와 거리가 있어 걱정이 많았다.
처음 만난 나의 상사와는 이상하게 자꾸 어그러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이 느낌은 단순히 '느낌'으로 그치지 않았다.
직장 내 괴롭힘이 큰 사회문제로 떠오르면서 새롭게 법이 제정되고 피해자들의 구제와 상담을 돕는 센터가 설립되는 등 많은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내가 신고를 준비하면서 느낀 것은 그에 반해 이런 이야기를 듣기가 영 어려웠다는 것이다. 과정은 어땠는지, 결과는 어땠는지. 그래서 용기 내어 그 이야기를 적어보고자 한다.
다만, 불행을 전시하고 가해자를 비난하고 힐난하기 위한 게시글이 아니기 때문에 가해자를 특정하는 일, 사건 내용을 세부적으로 서술하는 일은 지양하고 그 당시 내가 겪었던 사건의 흐름, 감정에 대해 서술하고자 한다.
상사는 자신의 과도한 스트레스를 잘 컨트롤하지 못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쏟는 경향이 있었으며, 그 스트레스의 영향은 주로 가장 업무적으로 가까운 나에게 닥쳤다. 업무적인 부분에서 지적을 받는 것은 당연하지만, 상사의 언행과 행동은 내게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범위였다.
그래서 1차적으로 내가 취한 행동은, 상사에게 정중하게 상담을 요청한 것이었다.
일이 가장 한가할 퇴근 한 시간 전 상사에게 "괜찮으시다면 지금 상담을 좀 요청해도 되겠느냐"라고 물었고, 상사가 혹여나 뻥 뚫린 사무실 공간에서 나와 이야기를 하다가 감정이 상하는 일이 생길까 싶어 자리를 옮기기를 원했지만 상사는 그대로 말하라고 했다.
나는 장애가 있으며, 내 장애로 인해 앉고 일어날 때마다 비틀거리거나 주변의 구조물을 붙잡을 때가 많다. 많은 회사가 그렇듯, 내가 일하던 근무지의 사무실 역시 바퀴가 달린 의자를 쓰고 있었으며 급하게 일어날 때면 의자가 뒤로 예상치 못하게 크게 밀릴 때도 있다. 내 앞에 온 민원인들이 많아 허둥지둥하던 차에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을 때, 내 자리와 상사 자리의 사이에 서 있던 책장 위에 상사가 쌓아두었던 종이가 떨어졌다. 이로 인해 상사가 순간적으로 욱해 많은 이들이 보는 앞에서 내게 한 마디 한 것이 못내 마음에 담겨 있었다.
평소에도 종종 그런 일이 있었던지라 혼자 앓고 삭히기보다 이야기해서 좀 풀고 싶었다. 무엇보다 위에 서술한 일은 내가 원한 일이 아니다. 그 부분에 대해 상사에게 이야기하자 상사는 건성으로 흘려 들었으며, 기분이 좀 상한 듯 보였다. 나는 이야기를 꺼내면 그 부분은 미안했다, 라든지 아 실수했군요. 따위의 이야기가 돌아올 거란 기대를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그날 돌아갈 때 인사했으나 상사는 (못 들은 건지) 인사를 받지 않았고, 그 뒤로 몇 달은 거의 상사에게만 존재하지 않는, 고양이손처럼 일했다. 정말 어쩔 수 없이 빌려 쓰는 고양이손 말이다.
그래도 거기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일하기 위해 내 나름대로 노력했다. 상사와의 관계 외에 다른 직원들과는 사이가 좋았으며, 무엇보다 내 마음을 잘 알아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동료가 있어 괜찮았다. 또 나는 정규직이 아닌 계약직이었다. 1년만 버티면 된다는 생각으로 최대한 상사와의 거리를 조절하며 일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노력했다.
그 노력의 일환으로는 상담 치료를 받은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 19로 인해 내가 일하는 직장에도 영향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점점 내 자신을 컨트롤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정신과 치료를 시작했다. 상담도 받고 정신과 치료도 받으니 기대가 컸다. 이제 괜찮아지겠지. 언니와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대다수 직장인들 그렇듯 직장 이야기가 자연스레 내 입에서도 흘러나왔다.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이야기도 했다. 상사와 맞지 않아 힘들다는 이야기도 했다.
그 다음날, 생전 처음으로 심한 악몽을 꿨다.
처음이었다. 누군가에게 쫓겨서 도망치고, 어떻게든 깨기 위해 노력하다가 깼는데 그게 꿈이었다. 또 깨어봐야 꿈. 그 전부터도 아침마다 알람 소리를 들으면 심장이 무너질 것처럼 아파서 한 번에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모두 이 근무지에서 일을 시작하고부터 생긴 증상이다. 그날 역시 심장이 아파 부여잡고 침대를 구르다가 일어나 출근했다. 손이 계속해서 카페인을 과다 복용한 사람처럼 벌벌 떨렸다. 하지만 출근해서 아무렇지 않게 일했다.
많은 사람들이 직장 내 괴롭힘을 겪는 사람에게 이런 말을 한다고 한다.
그럼 그만두지 그랬어.
하지만 당장 그만두면 앞으로의 생활은 어떻게 하는가? 돈은 어디서 구해오고, 텅 비어버린 시간은 어떻게 메꾸면 되는가? 1년만. 당시 기준으로 1년을 채우려면 얼마 안 남은 상황이었다. 6개월만 더, 5개월만 더. 그렇게 버텼다. 퇴직금을 받고 싶었다. 당장 2021년에 대학원을 간다는 목표도 세운 상황이었기에 더욱 절실했다.
그러나 7월 말, 대놓고 면전에서 반말과 비속어를 들었다. 그때까지는 빙 둘러서 온 느낌이었다면 그때는 달랐다. 팀장님과 상담을 하고 그날은 일찍 퇴근했다. 이제 안 된다. 나는 버틸 수 없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다음날도 웃기지만 나는 출근했다. 전날 쉬겠다고 말하지도 않았으니 출근하지 않으면 그 일로 또 꼬투리를 잡힐 것 같았다. 안 그래도 면전에서 심한 말을 들은 날, 내가 몸이 아파 문자로 쉬겠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서도 여러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출근하자마자 팀장님께 오늘은 반가를 내고, 이번 주는 출근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자 팀장은 그 일에 대해 상사와 이야기하고 가라고 하셨다. 상사는 어제의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눈치였다. 가벼운 투의 사과를 받았다. 그러나 나는 상사의 얼굴을 보는 것도, 목소리를 듣는 일도 힘들었다. 자리도 하필이면 딱 옆자리였다.
그날 나는 퇴근하고 병원을 돌고, 상담 선생님께 상담 내용을 토대로 한 의견서도 받았다. 직장 내 괴롭힘 상담 센터에 전화해서 상담하며 산재처리를 할 수 있으니 함께 신청하라는 조언도 받았다. 그리고 집에 가서 진술서를 쓰기 시작했다. 근무 기간 내에 있었던 일들을 적은 글은 한글로 8페이지 가까이 나왔다.
나는 당시 8개월 가까이 버틴 셈이었으니, 5개월을 버텨 퇴직금을 받고 싶었다. 당장 카드값도 문제였다.
그래서 나는 사장님께 찾아가 근무지 재배정을 요구하는 한편, 상담 센터의 조언대로 산재 처리를 요구했다.
진술서와 진단서, 병원 의무기록지, 먹는 약들, 상담센터의 의견서... 사장님은 내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셨고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돌아간 나는 연락이 오기를 기다렸다.
연락은 없었다. 아무에게서도 오지 않았다. 몇몇 직원에게서 괜찮냐는 톡이 온 것을 제외하면.
일자리를 배정해준 일자리 담당자에게 전화해서 근무지 재배정에 관해 이야기를 들은 게 있냐고 물었지만 금시초문이라는 듯 "다시 잘해보기로 하신 거 아니었어요?" 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다음 주에 다시 출근했다. 내가 신고한 가해자와 한 공간에 놓이게 된 것이다.
그래도 자리는 바뀌어 내 옆자리는 다른 직원이 앉게 되었다. 한 다리 건너뛰어 앉게 된 것이다. 여전히 업무는 이어져 있었고 꾸준히 이야기해야 했다.
나는 계속해서 일을 해결해주기를 촉구했다.
또, 힘들었다면 상담을 요청하지 그랬냐던 팀장님의 말씀처럼 상담도 요청하여 지금 내 상황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러나 팀장님은 불쾌하신 것 같았다. 일이 한창 바쁘고, 사장님은 하필 여름휴가를 가신 상황이었다. 상식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기간이 아니었는데 왜 따지느냐고 물었다. 나는 사실 이때, 내 상사보다도 팀장님이 더 야박하게 느껴졌다. 나는 따지기 위해 상담을 요청드린 게 아니었다. 갑작스럽게 일을 터뜨리는 것보다도, 미리 말씀을 드리고 싶었다. 저의 상황은 이렇고, 앞으로는 어떻게 할 예정이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무엇보다 상담의 문을 열어두시듯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머리로는 이해가 가면서도 속상했다.
그게 내 탓 같이 느껴졌다.
내가 너무 겉으로는 멀쩡해서 그런 걸까?
손목을 긋고, 자살기도를 하는 등의 과격한 행동을 보여야지만 내가 아픈 사람이라는 걸 믿어줄까?
직장에 출근해서 울면서 민원인을 대할 수 없다. 민원인에게는 잘못이 없다. 그들은 그저 자신들의 용무를 보러 왔고 나에게는 그들의 민원을 해결해야 할 직업상 의무가 있다. 집에서처럼 시체가 되어 바닥에 늘어져 멍 때릴 수도 없다. 말을 걸어오는 직원을 무시하고 혼자 마이웨이 하고 싶지 않다. 왜 내가 인간관계를 망쳐야 하는가? 밥을 굶고 싶지도 않다. 어차피 집에 가면 굶는다. 아무것도 먹기 싫어지고 내가 쓰레기 같이 느껴졌다. 실제로 나는 2020년 한 해 동안 몸무게가 무려 10kg 가까이 빠졌다. 자꾸 나타나는 식욕부진 때문에 건강검진을 받으러 갔다가 그 결과를 보고 웃어버렸다. 난 그쯤 눈물도 안 났다.
이불 밖으로 나온 손목을 볼 때면 식칼을 가져와 그어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흉을 만들고 싶지도, 애매하게 그어서 살아남아 후유증을 앓고 싶지도 않았다. 죽을 거면 확실히 죽어버리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죽고 싶지 않았다. 살고 싶었다. 무엇보다 돈, 퇴직금 받고 싶었다. 그래서 근무지 재배정을 그토록 간절하게 원했는데.
팀장님은 잘 지내고 있잖아, 뭐가 문제야?라고 신경질적인 투로 내게 물었다.
그래서 나는 솔직하게 다 말씀드렸다. 저 잘 못 지내요. 죽고 싶어요. 웃으면서 말했다. 얼굴에 미소밖에 안 지어졌다. 난 눈물이 나지 않는다. 내 일이 내 일 같지도 않고 그냥 차에 뛰어들어서 죽고 싶었다.
이상했다. 처음에는 근무지 재배정을 받고 다른 곳으로 가서 일을 하면 모든 게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근무지 재배정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뻥 뚫린 민원대에 나와 일을 하는 게 고통스러워 수없이 자살충동에 시달렸다. 끝내 시도하지 못한 자살충동은 밥을 굶는 형태의 자해로 나타났다.
결국 나는 일을 그만뒀다.
우여곡절 끝에 재배정받은 근무지는 내 기준으로 왕복 두 시간이었다. 오바라고 들을 수도 있겠지만, 장애가 있는 내 걸음이 빠른 편도 아니고. 버스를 타고 역에 내려서 전철을 타고 환승 역에 내려서 다시 전철을 타고 내려서 버스를 타고 혹은 걸어서 근무지로 가야 하는데 도저히 무리였다. 다른 근무지를 찾기 어렵다고 담당자는 말했다. 그렇다고 더 지체할 수도 없었다. 더 이상의 유급휴가를 받을 수 없었다. 돌이켜보면 버텼어야 했나 싶은 생각도 든다.
처음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하겠다고 나섰을 때의 나는 이미 시들 거려서 죽어버렸다. 그쯤 남은 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을 거라는 절망감만을 가득 안은 나였다. 돈이 없어 대출과 신용카드로 생활했다.
실업급여는 받을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나왔다고는 하지만 자진해서 나왔으므로 "자발적 퇴사"로 본다는 것이다. 산재급여 담당자는 상담도 제대로 받아주지 않았다. "예, 뭐. 원하시면 해보실 수는 있어요."
* 차후 실업급여는 "질병으로 인한 퇴사"로 처리되어 신청할 수 있게 되었다.
그만두게 되면서야 겨우 고용노동부에 가서 신고하고, 일자리 담당자에게 말하자 담당자는 사안의 심각성을 보고 나를 공무원 갑질 피해 신고하도록 도와주었다.
갑질 피해 진술하는 내내 "기대하지 않아요"라는 말을 반복했다. 떠올리면 무례한 언행이었으나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공무원 사회가 폐쇄적인 것도 알고, 계속 돌고 돌아서 볼 직원을 더 감싸고 싶지 누가 지금 내보내면 안 볼 사이인 비정규직의 편을 들어주겠는가? 친분이고 자시고 내 이야기를 나서서 진술해줄 사람이 있을까? 피해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이미 동료에게서 진술이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말을 들은 상황이었고, 나는 이해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도 진심으로 이해하고 있다. 일은, 돈은, 우리 삶에서 정말 중요한 거니까.
고용노동부에 출석해서 내가 제출한 진술서를 시간순으로 다시 정리하며 두 시간 가까이 오랫동안 진술했다. 담당 수사관은 진술 전에 내게 말했다.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서 따로 처벌 조항이 정해진 것은 없다. 그 말은 기대하지 말라는 말처럼 들렸다. 그럼 뭐하려고 있는 법인가 싶기도 했다. 쫄쫄 굶고 두 시간을 내리 앉아서 진술하는 동안 수사관님은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셨다. 내용을 더 진술하려고 하자 이 정도로도 이미 차고 넘친다는 답을 받았다.
지금이야 모든 게 다 끝나고 글을 쓰는 것이니 잘 정리가 되지만...
한 차례 더 갑질 피해신고의 진술을 하러 갔던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또 한 번 팀장님을 향한 야박함을 느꼈다. 진술인이 누구인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으나 팀장님 같았다. 말리는 사람이 더 밉다고. 결정적 사건이 있던 당일 "지지의 목소리가 더 크고 신경질적으로 느껴졌다"라고 진술했다는 것이다. 진술이라는 게 이런 것 같다. 상대를 까내리고 내 편을 보호하고. 당연히 그럴 거라고 생각은 했는데 끝까지 참, 너무 하시네요. 하는 생각을 했다. 매일 때리는 사람이 사람을 죽이면 우발적 살인이고, 내내 맞고 살던 사람이 반격을 하면 계획적 살인으로 형을 더 살게 된다. 매일 때리니까 죽을 줄 몰랐으니 우발적인 거고, 한 번도 안 때리다가 반격에 나섰으면 그건 죽이려고 한 거다. 이런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사건의 경중은 다르나 내겐 그런 느낌이었다. 이 일로 내게 남아있던 팀장님을 향한 쌀 한 톨만큼의 존경심을 버렸다.
그렇게 신고를 하고 한 달이 지나도 어디에서도 연락은 오지 않았다. 7월 말 사장에게 첫 보고를 한 시점으로 보면... 정말 지독하게도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내 기준으로는 그랬다. 왜 지금까지도 이 일을 끌어야 하는 건가. 시간은 흘렀는데 아직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괴로워 여전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조금씩 일어나는가 싶던 9월 말, 고용노동부에서 먼저 연락이 왔다.
그쯤 나는 밤에 잠에 들지 못했다. 억지로 자보려고 귀마개에 안대까지 끼고 누워있어도 잠이 오기는커녕, 그대로 세 시간을 더 뜬 눈으로 하품하며 눈물만 흘렸다. 이러고 있느니 일어나자 해서 일어나 날을 새우기 일쑤여서, 낮이 되어서야 일어나는 불규칙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겨우 잠에 들었던 아침이었던 것 같다. 수사관님의 목소리는 아주 밝았다. 결과가 나왔다고 했다. 기억나는 대로 내용을 적어보겠다.
안녕하세요, 지지 씨 노동부예요.
팀장님이랑 상사 씨가 같이 조사받고 갔는데 많이 반성한 것 같더라고요.
저번에도 말했던 것처럼 처벌 조항은 따로 없어요.
권고 조치로 종결해야 할 것 같아요.
저희가 정해진 처리 기간이 있어서 이대로는 둘 수 없어서~
갑질 피해 신고한 건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고 하시더라고요?
이 분이 공무원이라 여러 가지가 있고 (기다려봐야 할 것 같아요)
원래 개선 사항을 받아야 하는데 지지 씨가 퇴사해서 그건 안 될 것 같고.
여하튼 종결 처리할게요~
새해 다가오는데 잘 마무리하시고 힘내서 좋은 한 해 맞이하세요~
충격적이었다.
지금은 우습네, 하고 웃지만. 그때는 온몸이 붕 뜨는 기분이었다.
피가 싹 식고 머릿속이 하얗게 되었다. 이제 어떻게 하지.
결과가 나오면 산재신청을 하고, 이런저런 것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것들을 차치하고서라도, 결국 내 신고는 아무런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으며 내게 남은 건 충격적인 대출 잔액과 갚아나가야 할 신용카드 대금뿐이었다. 그것도 억울한데 내게 있었던 일을 인정받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자살충동이 다시 올라왔다. 그냥 참고 일할 걸 그랬어. 아니야, 그랬으면 죽었을지도 몰라. 고통스러웠다. 무엇보다 전화를 했던 수사관(조사관)의 목소리가 너무 밝고 상냥해서, 내게 있었던 일이 정말 대수롭지 않게 느껴졌다.
뭘 마무리하라는 거지. 이렇게 종결해버리면 그동안 나는 뭘 한 거지. 충격에 휩싸여 심연으로 가라앉을 때쯤, 다시 한번 노동부에서 전화가 왔다. 사건을 맡았던 부서의 팀장이라 소개한 그는, 갑질 피해신고 결과를 참고하고자 했으나 그쪽에서 일이 늦어지고 있어 참고하기 어려웠고, 처리 기간을 길게 잡을 수 없어 우선은 종결했을 뿐 결과가 나온 것은 아니라고 했다. 갑질 피해신고 결과가 나오면 다시 한번 상담을 받고 선생님이 원하신다면 이의제기를 하시는 게 가능하다고 말해주었다. 그제야 좀 진정되는 것 같았다.
12월에는 마침내 갑질 피해신고의 결과가 나왔다.
몇 차례의 참고인 조사와 외부 자문을 받느라 결과가 늦어졌다고 했다.
내게는 녹음파일이 없었다. 그날 그렇게 폭언을 듣던 날 녹음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지금도 후회한다. 내가 이 말을 하는 이유는 결정적인 증거가 없고 참고인들의 진술이 엇갈리는 점, 제출한 증거로 입증할 수 있는 사건을 바탕으로 하여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결과는 "경미한 직장 내 괴롭힘"이 인정되어 "훈계"조치였다.
사실 고용노동부의 처리와 다를 건 없었다.
하지만 나는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서 여러 조언을 많이 들었다. 국회의원에게 말해라, 뿌려라, 적극적으로 민원을 제기해라 등등...
하지만 나는 계속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만 시달리고 싶었다. 박차고 나온 내 결정을 잘했다 생각하면서도 대출잔액을 보며 후회하기도 했다. 신고 후에 알려지는 게 싫었다. 누군가의 입에 소문으로 오르내리고 싶지 않았다.
다 쓰고 보니 신고하려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글은 아닌 것 같다.
신고하려고 한다면, 그 사람에게 조언해줄 수 있는 것은 1. 녹음기를 구비해둘 것, 2. 고용노동부에 신고할 경우 따로 처벌할 수 있는 법 조항이 없어 결국 모든 것이 권고로 끝난다는 것. (결국... 빛 좋은 개살구다. 이건.)
애초에 법 자체가 내부에서 잘 해결하세요~ 이게 모토이기 때문에 아무런 손도 써주지 않는다. 그래서 1차 신고가 대표에게 신고, 그다음으로 안 되면 고용노동부인 것이다.
사실 그냥 신고하려는 당신이 잃는 게 더 많을 것이다. 남는 것도 없다.
그럼에도 내게는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짚고 넘어가야 했다. 후회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