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엘레인 Feb 11. 2022

마음에 감기가 걸려버린 요즘

내가 쉬는 방법

시드니로 돌아와서 지내는 이 며칠, 내 마음에 감기가 걸려버렸다는 것을 알았다.

이 감기의 시작은 작년부터 시작되었는데.. 작년에는 시드니가 락다운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미친 듯이 바빴기에 미처 몰랐다. 나는 바보처럼 내 마음이 아팠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게 된 것이다.


마음이 크게 아픈 건 아니고.. 감기가 들은 것 같다. 그래서 덕분에 1년여의 시간 동안 내 아트월드는 꽝꽝 얼려져 있다. 소위 사람들은 이걸 번아웃이라고 부른다.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살아왔던 이 몇 년이었다. 솔직히 짧은 시간 동안 생각 이상으로 이루었고.. 또 욕심도 점점 커져가서 내가 나 자신을 닦달하고 괴롭혔기에 이렇게 마음에 감기가 들어버린 것이다. 시골에서 일할 때에 내 문제에 대해서 주주와 이야기했을 때, 주주는 "엘레인. 쉬는 것도 과정이야."라고 말해줬는데, 그 말이 그렇게 고맙더라. 그래, 당장 잘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래도 끈을 놓지 않고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 정말로 잘할 수 있겠지.


4월까지 해야 할 일들이 정말 많다. 지금 이렇게 글 쓰고 있을 시간도 아니고, 여유 부릴 수 있는 시간도 아닌데.. 이 며칠, 집에서 생각 없이 푹 쉬었다.


늦잠도 실컷 자고.. 낮잠도 실컷 잤다.

이게 이렇게 개운한 것이었던가.



날씨가 좋은 날에는 좋아하는 근처 공원도 산책했다. 있고 싶을 만큼, 앉아있고 싶을 만큼 앉아서 멍 때리거나 커피를 마셨는데, 나에게는 힐링이었다.



집 꾸미기를 나름 엄마와 함께 해보았다. 작은 화병에 꽂혀 있는 것은 시골 이웃집에서 보고 너무 이뻐서 부탁해서 꺾어온 잎사귀인데, 뿌리가 자라면 화분에 심으라고 이웃분이 말씀해주셔서 지극정성으로 매일 물 갈아주고 예쁜 말만 해주며 키우고 있다. 다행히 매일매일 싱싱해 보인다.



숭어알 말린 거를 사 왔다. 보타르가라고 부른다.

보통 얇게 슬라이스 해서 와인 안주로 먹거나 파스타에 넣어서 먹기도 하는데..

필자는 찬밥을 물에 말아서 이 보타르가를 곁들어서 먹는 것을 좋아한다.


호주 보타르 가는 살짝 비린내가 난다. 다음에는 구워서 먹어야지.



쌀누룩 완성 사진 아님!

집에서 쌀누룩을 만드는 미친 짓을 시작했다. 더 웃긴 건.. 엄마가 뭐라고 안 하고 그냥 내가 하는 일에 동조한다. 나는 엄마가 이럴 때마다 너무 감사하더라. 어릴 때부터 내가 하고 싶은 것들, 실험하고 싶은 것들은 맘껏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나는 뭔가에 쉽게 꽂히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한번 꽂히면  궁금증과 집착을 반드시 어떻게든 풀어내야 한다. 반드시 해내고, 끝을 봐야지만 직성이 풀린다.  장점이자 단점은 7 넘어지면 8 일어나서 안되면  때까지 한다. 집착과 끈기가  심하다.  되는 일도 되게끔 만들어내려고 노력한다. 모든 일에 그러는 것은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유니크한 일들이 있다. 그리고 종종 사람의 힘으로는   없다고 느끼면 놔버린다.  이후에는 하나님이 알아서 해주시겠지. 어쨌든, 어쩌면 그런 또라이 같은 성향 덕분에 미술도   있었고,  지겨운 공부도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음식에 엄청 집착하고 호기심이 많은 사람인데, 오래전부터 마음에 꽂힌 건 발효 음식이다. 쌀누룩을 만들면서 처음에 한번 이미 실패했다. 이해할 수 없지만 밥알에 물기가 너무 축축하게 갑자기 많아졌다고 할까.. 습도 조절을 잘못했던 것이다. 그래도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하지 않는가.


쌀누룩을 만들면서 책 한 권을 읽는 기분이 들었다. 쌀누룩 만들면서 뭔가 인생을 더 배운 것 같았다. 쌀누룩과 인생에 대해서는 조만간 생각을 정리해서 글을 써봐야겠다.


쌀누룩에는 정말 많은 정성과 보살핌이 들어가야 하는데, 귀찮고 번거로웠지만 그 과정이 하나도 힘들지는 않았다. 이 며칠 쉬는 동안 국적불문 온갖 유튜브 찾아서 보고, 이북으로 책 읽어서 연구했다. 나에게 최근 안부를 물었던 어떤 분은 누룩이나 만드는 내 근황을 보고 나를 한심하게 생각하셨지만 나는 이게 쉬는 거고 필요한 시간이었다. 내가 행복하면 됐지 뭐.


작업실 가서 작업하고.. (3월 말까지 끝내야 하는 프로젝트 2개 이상이다. 문제는 시작도 안 했다는 것.)

전시회 기획서 작성해서 제출하고.. 5월에 있을 또 다른 전시회 준비하고.. 갤러리 가서 일도 해야 하고.. 대학원 마지막 학기 마무리 짓고.. 시골 가서 일도 해야 하는데..

그래도 그럼에도 이렇게 쉬어가는 시간이 나에게는 너무 절실했다.


쌀누룩은 두 번째는 성공이다. 그리고 두 번 다시 실수는 하지 않는다.

이러면서 배우는 거지? 덕분에 내 마음의 감기도 많이 나아졌다.


누룩 소금도 만들었다. 발효시키는 중인데, 이거 쓰면 음식에 풍미가 아주 좋아진다.

특히 스테이크와 누룩 소금은 찰떡궁합.


다음에 시드니 내려올 때는 누룩으로 누룩 젓갈, 누룩 간장도 만들어봐야지. 누룩을 만들어서 먹으니 너무 좋은 것 같다 정말.



두유 요구르트 막 만들었을 때!

요즘 두유와 사랑에 빠졌는데, 두유로 요구르트도 만들어서 먹었다.

얘도 시행착오가 정말 너무너무 많았었다. 본 소이로 두유를 만들었었는데, 꾸덕하지 않았다. 그래서 홈메이드 두유로 요구르트를 만들었다. 많은 실험 끝에 내 레시피를 찾았다!


그릭 요구르트처럼 꾸덕꾸덕하고, 신맛이 덜한 고소한 요구르트를 만들 수 있어서 행복한 요즘.



집안 곳곳에서 식물을 키우기 시작했다. 확실히 집안에 식물을 들이니 생기가 돈다.



덕분에 이런 곳도 방앗간처럼 뻔질나게 드나들게 되었다.



집에서 며칠 쉬는 동안, 콤부차도 만들었다!

지난번 첫 콤부차가 성공해서 스코비를 생성했었는데, 새롭게 생성된 스코비와 함께 콤부차 4리터를 만들고 있다. 오가닉 홍차를 진하게 우려서 만드는 콤부차.. 기대된다.



주주가 직접 키운 고추로 만들어준 피클!

내 거가 아니라 우리 엄마 꺼라고 했다.



집에서 김치 만두를 만들면서 이 며칠 김치 만두 실컷 먹은 것 같다.

다행히 아직까 질리지는 않았어! 이제 마음에 힐링도 하고.. 감기도 거의 나은 것 같다.


조금 더 게으름 피우다가 다시 작업이랑 일 빡세게 시작해야지.








작가의 이전글 나의 단조롭고 평범한 호주 시골 생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