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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오십 여자 Jan 18. 2016

연극 <겨울이야기>를 보고나서

1막은 정극, 2막은 뮤지컬, 꽤 괜찮은 공연, 다만 결말이 주는 당혹감

    국립극장이 야심 차게 선보인 로버트 알폴디 연출의 <겨울이야기>는 원작으로 모르는 일반 관객으로서는 꽤 만족할만한 공연이었다. 하지만, 셰익스피어의 작품과 <겨울이야기>의 원작의 느낌을 조금이라도 아는 관객이라면 아쉬움이 많이 남을 듯하다.본인은 후자에 속했다.

 


    연출을 살펴보자면, 최근 연극계의 트렌드인 길고 장엄한 식탁이 주요대도구로 사용이 되었고, 무대의 끝은 배수처리가 되어있었다. 하얗고긴 식탁은 위치하는 곳에 따라 다양한 구도와 그림을 만들 수 있다. 배우는 식탁 위, 아래로 연기공간을 확장시킬 수 있고, 연출은 다양한 의미로 그 대도구를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연출 로버트 알폴디는 하얗고 긴 식탁으로 레온테스와 그 왕실의 위엄을 표현하였고, 동시에 레온테스의 의심으로 법정에 선 헤르미오네에겐 수치심을 주는 권위의 자리로 상징화했다. 사실적이지 않으면서도, 왕실을 표현하기에 충분한 금색 뒷벽과 4개의 문은 배우들의 등, 퇴장 시퀀스만으로도 관객의 흥미를 이끌어내기에충분했다. 금색 뒷벽과 희고 긴 대도구로 이루어진 1막은심플하지만, 세련되게 배우들의 연기공간을 늘려주었고, 1막의배우들 모두 자신에게 주어진 공간을 연기로 충분히 채웠다. 



    하지만, 연극 <겨울이야기>의 큰 문제는 2막부터 시작된다. 양치기인 양아버지와 살고 있는 페르디타와 플로리젤, 그리고 폴리세네스가 주가 되어야 하는 2막은 너무 무대 구성, 디자인이 모두 산만했다. 1막은 정극을 본 느낌이라면, 2막은 짧은 뮤지컬을 본 느낌으로 1막과 2막이 너무 동떨어졌다. 그래서인지 인터미션을 끝내고 돌아온 관객들에게또 다시 새로운 공연을 보는 당황스러움을 선사했다. 셰익스피어의 원작에서도 2막에서는 노래가 자주 등장하지만, 그것을 그대로 ‘노래’로 받아들여 ‘뮤지컬’을 만드는 건 너무 쉬운 연출이었던 것 같다. 그래도, 2막까지는 참고 볼 수 있었다. 1막의 쎈 한방이 2막까지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최악은 결말이었다. 헤르미오네와 레온테스가 다시 만나고, 모두가 화해와 사랑을 하며 행복해할 때! 갑자기 천장에서 엄청 큰샤워기가 내려와 물을 쏟아냈다. 그것도 샤워기 가장자리 부분에만 주륵 주륵 물이 새어 나왔다. 그리고 분명한 동기 없이 모든 배우들은 그 샤워기 안으로 들어가 서로 부둥켜 안으며, 마치 비라도 되는 양 그 샤워기 물을 피했다. 만약, 샤워기가 내려오지 않고, 천장에서 그대로 물을 뿜어냈다면, ‘비를 연출하려고 했구나’라는 의도라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왕 샤워기를 그대로 관객에게 노출시킨 그 저의를 절대 모르겠다. 잘 나가던 연극을 갑자기 ‘거짓 쇼’로 만든 느낌이었다. 결말이 너무 황당해 공연을 다 보고 집에 오는내내 당황한 표정을 없앨 수 없었다. 


    배우들의 연기는 대체로 훌륭했다. 단 주요 주인공인 몇 명을 제외하곤말이다. 일단, 레온테스,폴리세네스, 헤르미오네의 합과 연기는 너무 완벽했다. 레온테스는의심과 광기에 휩싸여 불안해하면서도 스스로 파멸로 가는 모습을 작은 체구에서도 손상규 배우는 우수하게 표현해냈다.1막은 마치 셰익스피어의 다른 대작 <리어왕>을보는 느낌이었다. 폴리세네스 역을 맡은 박완규배우 역시 절제와 노련미가 돋보였다. 진정, 그는 타이밍을 아는 배우다.또한, 양치기 아들로 열연했던 유영욱 배우는 비주얼부터 너무 훌륭했다. 바보처럼 좀 모자란 듯 하지만, 또 그 나름대로 미워할 수 없는착하고, 순한 심성을 가진 양치기 아들은 양치기와 페르디타, 그리고플로리젤보다 더 빛났다. 문제는 페르디타와 플로리젤이다. 플로리젤의연기는 차마 보기 힘들 정도였다. 발성과 움직임은 좋지만, 표정이늘 하나였고 대사 톤도 일정해 어떤 감정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특히,페르디타와 플로리젤의 케미(chemical)가 전혀 보이지 않아, 둘이 연인인지, 모르는 사람들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래서 2막에서, 특히이 커플에게 마음을 주기가 어려웠다. 스킨십만 한다고 갑자기 연인이 되는 건 아닌데, 관객입장에서 페르디타와 플로리젤이 서로 사랑하고, 애틋해하는 걸 전혀 볼 수 없어서 아쉬웠다. 



    전반적으로 <겨울이야기>는꽤 괜찮은 공연이었다. 좋은 배우들, 눈빛에서부터 머리털까지연기하는 배우들의 연기로 몇 몇의 역할들은 활자에서 벗어나 관객 앞에 살아있었고, 연출의 여러 실험적인시도를 알 수 있는 공연이었다. 다만, 샤워기는 잊혀지지않는다..

<사진출처 : 국립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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