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장의 사진으로부터 시작된 이야기
브런치를 만나게 된 후,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은 인스타그램과 메모장에 짤막하게 써놓은 글들을 하나씩 곱씹는 것이었다. 수백 개가 넘는 메모들을 살펴보니 스스로가 좋아하고 관심을 보인 것들이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했고, 특정 주제에 대한 글들을 모아 '언제부터 였을까'라는 첫 번째 매거진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렇게 다섯, 여섯 개의 글을 써넣었을까. 이번에는 반복되지는 않지만 순간 순간의 깨달음에 대한 짧은 글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두 번째 매거진 '그때 그 찰나의 순간'을 만들게 되었다. 두 개의 매거진에 글을 발행한지 얼마나 지났을까. 매일 글을 쓰지도 못할 테고, 글을 유려하게 쓰지도 못할 거면서.. 나는 또 하나의 매거진을 만들어 버렸다.
직접 찍은 스냅 사진들을 살펴보다 우연히 다른 장소에서 찍은 두 사진을 한 장으로 합치게 되었는데, 각각으로 나누어져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이야기들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한 장으로 뭉쳐진 사진에서 시작된, 뒤늦게 만들어진 이야기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당연하지 않은 이야기'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었고, 나의 세 번째 매거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스물아홉, 서른 즈음의 친구들을 만나 술 한 잔 기울 일 때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고. 퇴근하면 잠들기 바쁘고, 잠들면 일어나기 바쁜. 그 뒤로 이어지는 말들도 늘 비슷하다. 여행을 꿈꾸고, 연애를 꿈꾸고, 일탈을 꿈꾸며 그렇게 잠시나마 즐거운 상상을 해보는 것. 스타트업에서 2년 차 기획자로 일하면서 이만큼 즐거운 일이 없다고(아직까지는) 생각하는 나이지만, 그렇다고 친구들의 말에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일은, 여전히 일이고 가끔은 나 역시 나도 모르게 '힘들고, 지친다'는 말을 내뱉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우리가 만나는 그 시간 동안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만남 자체가 우리 일상의 단비 같은 존재임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 '종이달(가쿠다 미쓰요)'에 여주인공이 남편과 저녁을 먹은 후 집으로 돌아가며 '우리, 싸게 먹히는 인간이어서 좋네'라는 말을 내뱉는 부분이 있다.
사실은 우리도 그럴 수 있는데,
'즐거움'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주 가까이에 있는데, 모르는 척 더 멀리서 찾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여전히 즐거움에 닿기 위한 사다리를 오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유도 모른 채, 취하기 위해 술을 마시던 때가 있었다. 상대방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기보다 저마다의 이야기를 내뱉는데 열중했었고, 다음날에는 전날의 기억을 찾아 헤매는데 많은 시간을 허비하기도 했다.
지난날의 술잔은 비워지는 걸 용납하지 않았고 그만큼 빠르게 채워졌는데, 다행히 이제는 빈 잔으로 머무르는 시간을 늘려가며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배워가고 있다. 아직 익숙지 않은 시간이기에 연습이 필요하겠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의 이야기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안주 먹을 시간도'없다며 몰아쳤던 우리에게 스스로의, 각자의 이야기를 안주 삼아 즐길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술이 꽉 들어차야 한 잔이 되는 것은 아니다
빈 잔도 한 잔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빈 잔에 귀 기울이게 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