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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열두시 Aug 28. 2015

그때, 그 찰나의 순간 '안아줘요'

나는 어떻게 처음 보는 사람에게 안길 수 있었을까

5년 전, 스물네 살의 '용기'


여느 날과는 다른 날을 바랐던 것일까. 나는 학교 정문 앞에서 오랜 시간을 서성거리다, 큰 결심을 하고는 가까운 역으로 되돌아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강의를 빼먹더라도 동기들을 공범으로 만들어 낮술을 마시거나 당구장을  들락날락한 적은 많았지만, 그 날처럼 아무 말없이 단독범행을 저지른 것은 처음이었기에 두려움과 설렘이 공존하던 순간이었다. 이왕이면 보통날이 아닌 날을 제대로 만들어 보자는 생각에 까운 버스터미널로 향했고, 그 곳에서 가장 빨리 떠나는 강릉행 버스에 올라탈 수 있었다.




마음 내키는 대로 돌아다니기


지금처럼 스마트폰을 자유롭게 쓸 수 있던 때가 아니었기에, 강릉 버스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내가 찾아간 곳은 지도를 구할 수 있는 곳이었고, 그렇게 나의 첫 목적지를 정할 수 있었다. 공범이 있었더라면 한 장의 지도를 들고 여전히 투닥거리도 있을 시간에 나는 동해바다를 볼 수 있었고, 마음 내키는 대로 강릉 이 곳, 저 곳을 돌아다닐 수 있었다. '하슬라'가 강릉의 옛 지명이었다는 사실도 이 때 알게 되었다.





얼마 전, 하동 섬진강변을 달리던 버스에서 본 노을이 그 날, 강릉에서의 저녁과 많이 닮았었다





강릉에서의 마지막 버스에서 시작된 이야기


마지막 목적지에서 나오는 순간까지도 고민했던 것은, 그 날 정문 앞에서 했던 결심이 긴 밤을 무사히 보낼 수 있는지였다. 하지만, 낯선 곳에서 문득 밀려온 외로움에 그 결심은 많이 무뎌져 있었고 나는 버스터미널로 향하는 버스를 기다리기로 결정했다. 버스에 올라타 맨 뒷 자석의 바로 앞에 자리를 잡고 보니 동행하게 된 분들이 몇몇 계셨다. 그리고 그 버스의 손님들 중 나만이 유일한 이방인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기 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오늘 예쁘게 입고 나오셨네!
곧 어두워질 테니 살펴 가세요





5분 정도가 지났을까, 내 앞자리에 앉아 계셨던 할머니께서 큰 봉지 한 개를 들고 벨을 누르셨다. 벨이 눌렸으니 곧 목적지에서 버스 뒷문이 열릴 테고 바로 문이 닫히는 소리로 이어질 테지.라는 내 생각은 보기 좋게 빗나갔고, 기사님의 정겨운 인사말이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내가 내릴 역시 한마디를 잊지 않으셨고, 그렇게 얹어진 말은 무엇보다 따뜻하고 포근하게 느껴졌다. 버스를 타기 전 느꼈던 외로움이 처음 본 기사님이 안겨준 말들로 밀려나갔다. 그만큼 따뜻했으리라.







우리의 말에도 온기가 있다면
그리고 그 최대치를 느낄 수 있다면
그 날 얹어진 그 말들이 아니었을까






그 때의 느낌과 꼭 닮았다고 생각된 사진





사람의 체온과 체온이 맞닿는 것만큼 따뜻한 것은 없고, 그 체온을 느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서로를 안아주는 일이라지만 그때 그 찰나의 순간으로 인해 나는 말로서 다른 사람을 안아줄 수 있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 지금까지 많이 노력 중이다. 내 한 마디도 그럴 수 있기를 바라면서, 누군가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안겨줄 수 있기를.


어쩌면, 생각보다 어렵지 않은 일일지도 모른다. 낯선 이에게 안기고, 안아주는 것이. 그러니 우리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더 쉽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오늘, 아직 용기가 나지 않는다면 내일은 따뜻한 말 한 마디를 그와 그녀에게 얹어주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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