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밤열두시 Sep 07. 2015

그때, 그 찰나의 순간 '낯선 실패'

나는 어떻게 '만약에'가 아닌 '다음에는'을 이어 붙일 수 있었을까

 3년 전, 자신 있게 도전한 '창업'


홍보대행사에서의 6개월 간 인턴을 끝내고, 나는 그 곳에서의 생활을 연장하는 대신 학교 동기와 창업을 하기로 결정했다. 2012년 2월부터 준비한 첫 번째 아이템은 창업경진대회에서 본선까지 진출하는 성과를 얻었으나 욕심을 부린 나머지 결선 진출에 실패했고, 두 번째 아이템으로 같은 해 7월 서비스 런칭에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 우리가 준비한 아이템은 당시 시장이 막 형성되고 있었던 '서브스크립션 커머스'였고, 마시는 차와 건강한 주전부리를 매 달 하나의 박스로 구성해 배송해주는 서비스였다.





EATEA BOX(잇티박스), 그 것이 우리가 준비하고 시작한 서비스이자 브랜드명이었다.






출발은 나쁘지 않았다. 자본금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도 유의미한 결과를 얻을 수 있었고, 소비자들의 피드백 또한 기대 이상이었다. 이와 동시에 4명으로 구성된 우리 팀은 점점 더 큰 희망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26살, 배운 것보다 배워야 할 것들이 더 많았던 나는 이 사업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가지 못했고 결국 이듬해 1월 서비스를 료해야만 했다.




그 땐 몰랐다. 이 박스가 우리의 마지막 박스가 되리라는 사실을 (2012년 12월)





자신 있게 도전했던 창업이었고, 쉽지 않은 길이라는 사실 또한 알고 있었기에 실패라는 결과를 덤덤히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폐업신고를 한 뒤로 '실패했다'라는 사실은 나를 점점 갉아먹기 시작했고 좀처럼 헤어 나올 수 없었다. 무엇보다 괴로웠던 것은 수없이 재생되는 '만약에'라는 가정이었다. 처음에는 이 '낯선 실패'에 대한 아쉬움에 한 번씩 튀어나오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 횟수가 점차 많아지기 시작했다.






후회와 아쉬움이 없는 일은 없다지만,
이 '만약에'라는 가정이 무서운 이유는
시작되는 순간 그 당시보다
 더 큰 후회와 아쉬움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과거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만약에'의 끝에서 마침표를 빼버린 후 찾아온 변화


부끄럽지만 한 달을 훌쩍 넘겨 거의 두 달이라는 시간을 그렇게 보냈고, 이대로는 더 깊은 곳으로 빠져 아예 나올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제일 먼저 시작한 것은 '만약에'로 시작되는 나의 가정들을 노트에 하나씩 적는 것이었다.






실패노트라 이름지은 이 노트는 지금까지도 내게 가장 값진 것으로 남아있다.





그 다음에는'만약에'로 시작되는 문장의 끝에 마침표 대신 '다음에는'이라는 말을 붙이기 시작했다. 그때의 상황을 다시 마주하게 된다면 나는 '어떻게'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춰 노트의 빈 공간을 채워간 것이다. 그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다음에는'이라는 말을 이어 붙이는 순간 과거에 머물렀던 이야기들이 다음을 준비하는 진행으로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낯선 실패가
값진 경험으로
바뀌는 순간







그렇게 100개가 넘는 질문과 답들을 정리할 수 있었고 그 동안의 과정을 조금 더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지금 내게는 그 때 보다 더 많은 실패노트들이 각기 다른 이름으로 남아있고, 소중한 배움으로 이어지고 있다.





2015년 여름, 곡성의 섬진강변





얼마 전, 곡 섬진강변의 다리를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다리가 '마침표'대신 놓여진 '다음에는'과 닮았다고 말이다. 다리를 기준으로 윗쪽에서 흘려 내려오는 것들이 과거에 대한 후회와 아으로 시작된 것이라면 아랫쪽으로 흘러 내려가는 것들은 그 다음을 생각하는 것들이 아닐까. 그렇게 다리가 우리의 '생각의 눈금'이 되어 주지는 않을까. 


과거에 대한 아쉬움과 후회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다만, 그 생각들을 어떻게 발전시키고 흘려보낼지는 각자에게 주어진 숙제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더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우리를 위한 '생각의 눈금'이
매거진의 이전글 그때, 그 찰나의 순간 '안아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