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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열두시 Oct 05. 2015

그때, 그 찰나의 순간 '장작'

하나, 둘 장작을 쌓아 올리는 것에 담긴 의미

은사님, 나의 은사님


바쁘단 핑계로 최근 연락을 자주 못 드린, 하지만 내게는 평생 잊지 못할 은사님이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의 담임선생님이셨던 분이자, 윤도현밴드를 알게 해 준 분. 사물놀이의 흥겨움을 알게 해 주셨고, 나에게 글을 계속 써보라고 가장 먼저 말씀하시며 이면지를 묶어 건네주셨던 분. 이렇듯 내게 학교에서는 배울 수 없는 수많은 것들을 알려주셨고, 지금까지도 그 일을  계속하고 있으신 분. 초등학교 6학년을 마무리하며 함께 만들었던 작은 문집은 지금까지도 내게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보물로 남아있다.




아버지께서 쌓아 올린 장작


2014년 가을, 화천의 어느 식당



3년 전 자신 있게 도전했던 창업의 실패로 희망보다 좌절이 더 크게 자리 잡고 있었던 그때, 은사님은 내게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당신의 아버지는 당신이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정성스레 장작을 패신다고. 그러면서 겉보기엔 쌓여있는 장작들이 같아 보여도 하나씩 살펴봤을 때의 의미는 전부 다르다고 말씀하셨다. 이번 장작은 당신의 자식들을 따뜻하게 감싸주기 위해, 이번 장작은 당신의 당신이 맛있는 요리를 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등. 





2015년 여름, 홍성의 어느 마을




지난 여름 가족과 떠난 홍성 여행 중 잠시 강가 근처의 마을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어느 집 한편에 쌓인 장작들과 그 옆에서 계속 장작을 패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선생님의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땐 그 의미가 크게 와 닿지 않았었지만, 그제야 왜 내게 당신 아버지의 이야기를 해주셨는지 알 수 있었다. 마음을 담아 무언가를 쌓아두고, 남겨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그 것들을 다시 꺼냈을 때 의미가 어떻게 다가오는지를. 선생님의 아버지와 그 마을의 할아버지께서는 장작을 꺼내실 때, 분명 쌓아두실 때의 마음을 되새기실 것이고, 부족한 장작을 올리실 때면 또 다른 마음을 함께 얹어 두실 것이다. 만약 내가 실패 후, 모든 것들에게 좌절과 아픔이라는 딱지를 붙여 쌓아두기 시작했다면 지금의 나는 어땠을까. 하나가 아닌 전체를 보았을 때도 분명 좌절이라는 장작들이 쌓여있었을 테지. 






26살의 아직 어린 제자가, 
실패와 좌절이라는 이름의 장작을 쌓아두길 
선생님은 바라지 않으셨던 것이다.






돌탑을 쌓아 올리는 이유


2013년 겨울, 두물머리의 돌탑들





두물머리에 가면, 사람들이 나무 아래 저마다 쌓아 올린 작은 돌탑들을 볼 수 있다. 돌을 쌓으며 비는 소원들이 바로 이뤄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럼에도 사람들이 작은 돌들을 하나씩 얹는 이유는 그 시간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다잡고 다시금 내가 진정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상이 다를 뿐, 장작을 패는 것과 돌을 얹는 것은 결국 같은 의미이자 과정이 아닐까 싶다. 어떤 의미를 담느냐에 따라 쓰임새도 분명 달라질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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