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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열두시 Nov 06. 2015

그때, 그 찰나의 순간 '우연한 만남'

두 번의 우연한 만남으로 만들어진 운수좋은날

시청역 3번 출구에서 시작되는 짧지만, 짧지 않은 사잇길


지난 추석의 마지막 날, 연휴 중 유일하게 허락된 자유 시간을 어떻게 쓸까 고민하다 오랜만에 정동에 가보기로 했다. 1호선 빨간 열차에 올라타 시청역에서 내려, 3번 출구를 통해 서울 주교좌성당과 서울특별시의회 사잇길로 가고자 한 것이다. 시청역 2번 출구로부터 시작되는, 덕수궁 대한문을 거쳐 돌담길을 따라 서울시립미술관이나 정동극장으로 향하는 코스도 좋지만 주말이나 연휴에는 사람이 많기에 반대 방향인 3번 출구를 선택했.






시청역 3번 출구로부터 시작되는, 짧은 골목길을 걸으며 마주쳤던 것들(모두 지난 추석 연휴에 촬영)






지도에서 보면 'V+U' 두 모양을 합쳐놓은 듯, 재미있게 생긴 이 짧은 길 위에는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35호로 지정된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1975년까지 국회의사당으로 쓰였던 서울특별시의회, 조병순 관장님이 세운 국내 유일의 성암 고서박물관, 조선일보 미술관이 있는 조선일보 정동별관, 독립 영화관 스폰지 하우스 등이 자리 잡고 있다. 길 자체는 짧지만, 양쪽으로 펼쳐진 이야깃거리들을 하나씩 주워 담다 보면 왜 이 골목길을 걸어야 하는지 금세 알아차릴 수 있다.





우연한 두 번의 만남으로 시작된, 그 날의 이야기


그 날, 3번 출구로 나오자마자 내 가려했던 곳은 서울주교좌성당 입구에 있는 작은 노천카페였다. 그런데 사잇길로 접어들기 전, 예전 국세청 남대문 별관에서 서울건축문화제(2015.10.08~11.08)가 열리는 것을 보게 되었다. 미리 알고 찾아온 것은 아니었지만, 건축과 문화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해져 한 시간 정도를 머무르게 되었고, 이 우연한 첫 번째 만남으로 인해 기분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사람이든, 어떤 대상이든 '우연'이 붙을 때
우리는 대상의 날(raw)것 그대로를 마주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기대치로 인해 생겨나는, 수없이 많은 잣대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특별시의회 건물의 옆면






전시장을 빠져나와, 나는 원래의 목적지였던 '길'로 접어들게 되었고  갈지(之) 자로 걸으며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만큼 더 많은 이야기들이 스며들어 있는 대상들을 보기 시작했다. 정오를 갓 넘긴 시간 덕분에 그림자들이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자리 잡고 있었고, 그 모습들을 한 장씩 담는 재미에 푹 빠지기를 10분. 전혀 생각지도 못한 두 번째 만남을 갖게 되었다.






서울특별시의회 건물의 옆면 #2






아직 단풍으로 자신을 알리기에는 시기가 이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듯, 그 날 그 시간엔 가을 바람이 기분 좋게 불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서울특별시의회 건물을 따라 걷다가 굳게 닫힌 철문에서 무언가 부드럽게 움직이는 것을 보게 .





그림자였다
뒤를 돌아보고서야 큰 나무 한 그루가 서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나무는 철문을 거울 삼아 자연스럽게 춤을 추고 있었다











이미 나는 언제부터 였을까 '빛'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빛의 춤사위를 본 적이 있다. 빛과 바람이 만들어준 무대를 말이다. 그런데 그 날 마주친 무대가 더 특별하게 다가온 이유는 춤이라면 질색을 하는 나를 아주 자연스럽게 무대로 올려주었기 때문이었다. 바람에 따라, 빛에 따라.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는 그 날, 정말 행복한 춤을 출 수 있었다.   






가끔은, 그렇게 몸을 맡기는 것도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던
바라보고 관찰하는 것도 좋지만, 좀 더 적극적이어도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던
두 번의 우연한 만남으로 만들어진, 운수 좋은 날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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