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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열두시 Jan 03. 2016

그때, 그 찰나의 순간  '읽고 싶은 사람'

한 장 한 장 날마다 넘겨보고 싶은

너와 나, 그리고 우리의 시간


작년이라는 표현이 아직은 낯선 오늘, 아침부터 걸려온 전화에 일찍 잠에서 깼다. 7년째 연애 중인 그녀는 내게 물었다. '넌, 연애를 끝내야겠다는 생각을 언제 해?' 두 사람을 이어준 것이 나였기에 전화를 받자마자 들려온 질문에 순간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렇게 잠깐의 침묵 뒤에 뱉어낸 대답은 '그냥.. 내 시간을 뺏긴다는 생각이 들 때, 우리의 시간이 아니라 각자의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아닐까'였다. 다시 이어진 침묵이 그녀의 암묵적인 동의였는지, 생각할 시간을 갖는 것이었는지 아니면 내가 틀렸다는 의미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돌이켜보면 나는 늘 그랬다.





우리의 시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연애도, 관계도 힘들어졌던 것 같다





2015년 겨울, 볕이 좋았던 어느 카페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늘 동일하다. 그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는지가 다를 뿐. 누군가를 만날 때 '시간을 뺏기고 있어, 아까워'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잘 활용하지 못했다는 아쉬움 때문일 테고, '좋은 시간이었어'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기대 이상의 가치를 얻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늘 '우리의 시간'을 바라 왔던 것 같다. 시간을 벌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상대방과 나의 시간이 서로에게 스며들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같은 시간과 공간에 존재하지만 각자의 시간이 더해졌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 그 순간이 더 없이 소중하게 느껴진 이유는 모두 '우리의 시간'이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아, 물론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이 든다면 더더욱.





지금과 앞으로의 합이 아니라
현재와 현재의 시간의 합을 가능하게 만드는 '우리'


 





매일 읽고 싶은 사람의 이야기


친구로부터 듣게 된, 갑작스런 질문이 오전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와 동시에 나는 다시 한 번 '그녀'를 떠올리게 된다. 종일 듣고 싶은 음악이 있고, 봐도 또 보고 싶은 영화가 있듯 매일 한 장씩 아껴 읽고 싶은 그 사람을.



김재연 '너의 마음이 안녕하기를' 中

인쇄되지 않아 더 소중한 책. 그중 하나는 사람이다. 그중엔 난 저렇게 살아서는 안 돼, 표본이 되어주는 사람도 있고 책장 제일 좋은 곳 눈에 잘 띄는 곳에 꽂아두고 때마다 꺼내서 넘겨다보고 싶은 놀라운 사람도 있다.




2015년 가을, 합정의 어느 카페





보통 책으로 쓰인 원작을 영화로 만들었을 때, 그리고 원작이 영화보다 더 괜찮다 느껴질 때 '그려볼 수 있는 자유를 빼앗겼어'라는 말을 하게 된다. 한 장, 한 장 쓰인 글들을 보며 내 생각을 덧입혀 보기도 하고 텍스트를 이미지로, 영상으로 바꿔 보기도 하는 그 자유를 말이다. 그래서 내게 읽고 싶은 사람이란, 우리의 시간과, 앞으로의 시간을 그려볼 수 있는 사람이고 그렇게 그려진 장면들을 계속해서 이어 붙이고 싶은 사람이기도 하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고
그려낸 장면들을 끊임없이 되돌려보았다
그냥, 그냥 이유 없이도 좋을 시간






지금, 그녀가 내게 그렇다.

가장 가까이에 두고 계속해서 읽고 싶은 사람





2015년 겨울, 익선동의 어느 골목길에서 만난 카페





나는 볕이 좋은 카페에 앉아 글을 쓰고 있었고, 그녀는 내 옆에 앉아 커피를 홀짝이고 싶다 말했다.

나는 내 옆자리에 당신이 앉아 있으면 좋겠다 말했고, 그녀는 그 자리에서 볕에 안겨 잠들고 싶다 말했다.

나는 글을 다 쓰면 당신을 깨워주겠다 말했고, 그녀는 나와 함께 공원엘 가겠다고 말했다.

나는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걷고 싶다 말했고, 그녀는 그렇게 걷다가 - 작은 서점에 들어가자고 말했다.





나는 그리고 당신은,





그렇게 나는 볕이 좋은 카페에서도. 홀로 걷고 있던 공원에서도, 좋아하는 작은 서점에서도. 그녀를 끊임없이 그려보고 있고, 일상의 단편들에 그녀의 빛깔을 조금씩 새겨 넣고 있다. 또 그렇게 나는 우리의 시선이 가장 먼저 닿을 곳에 나의 마음을 살포시 얹어두며 바람에 - 쉬이 날아가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2014년 가을, 강원도 화천의 붕어섬





서로에게 서로의 시간을 더하고 스며들게 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내가 바라는 점이 하나 있다면, 내 시간에 스며들어도 좋고, 네 시간에 스며들어도 좋을. 서로의 시간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두 개의 선이 생겼으면 하는 것. 그렇게 우리의 시간을 만들어갈 수 있으면 하는 것.






2015년 겨울, 양재의 어느 카페





그녀를 만나게 된다면, 그래서 볕이 좋은 카페에 앉게 된다면.

나는 그녀를 햇살을 등지게 앉히고 싶다.




마주보고 앉아
양손을 잡을 순 있지만
뒤에서 안아줄 순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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