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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열두시 Aug 03. 2020

그때, 그 찰나의 순간 '너그럽지 않은 시간'

함께 였기에 소중하고, 함께 였기에 더 그리운 시간에 대하여






아이들이 웃으며 놀던 모습이 떠올라
이 곳을 계속 찾게 됩니다. 






2020.07 홍천강






차박을 떠나기로 했다. SUV로 차를 바꿨다는 핑계로, 며칠동안 우리의 하루를 준비했다. 새벽 같이 일어나 잠깐 TV를 켰는데, 마침 우리가 떠날 장소가 나오고 있었다. 각자의 방법으로 캠핑을, 차박을 즐기는 사람들. '아 재밌겠다!'라는 생각도 잠시, 홀로 밤낚시를 하는 아저씨 한 분이 보였다. 왜 이 곳을 찾았냐는 질문에 잠시 강을 바라보다 '아이들이 생각나서'라는 답을 하셨다. 어릴 적 자주 찾았다는 홍천강. 그리고 그 곳에서 행복하게 놀던 아이들이 떠올라서 라는 말에 나는 멈칫 할 수 밖에 없었다. 






시간이, 참 너그럽지 않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시간인데, 각자의 사정이 점점 쌓이기 시작하니
그저 곱씹을 수 밖에 없는 시간이 되어 버렸다.






다시, 오면 되죠. 라는 말을 던지는 사람도 그 말을 받는 사람도 잠깐의 희망을 갖는 것처럼 보였지만 쉽지 않음을 알기에 말을 아꼈다. 그렇게 아저씨는 밤새 그 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홀로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2020.07 홍천강






그러고 보니, 얼마전 가족과 함께 점심을 먹으며 비슷한 이야기를 했었다. '여름 휴가'를 어디로 떠날거냐는 말에 다양한 장소들이 나왔는데, 우리는 우리가 갈 장소를, 엄마와 아빠는 우리와 함께 간 장소를 말했다. 갈, 간. 받침이 하나 달라졌을 뿐인데 시점은 명확하게 달라지는 말을 이제와 생각해보니, 부모님은 다음과 다시를 떠올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릴 적, 부모님은 나와 동생을 데리고 참 많은 곳을 다녔다. 바다로 산으로 계곡으로. 그런 시간들이 당연히 존재하는 거라 생각한 나는 결혼을 하고 나서야 그 시간을 만들기 위해서 꽤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루의 시간을 더 잘개 쪼개야 하고, 당신의 시간을 비집고 들어가야 가능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2020.07 홍천강






차박은 성공적이었다. 무엇이 필요하고 부족했는지 알았다는 점에서 더더욱. 밤 늦게 집으로 돌아오면서 계속 그날 아침 아저씨의 말이 떠올랐다. 그해 여름의, 그해 겨울의 그 시간을 다시 함께 할 수 있는 수없이 많은 기회가 있었음에도 시간이 없어서- 라는 말로 놓쳤던 것은 아니었을까.






시간이 없어- 가 반복 되는 순간,
그렇게 각자의 사정이 계속 되는 순간,
우리는 그런 상황에 무뎌질 수 밖에 없고
그렇게 다음과 다시는 더 멀어질 수 밖에 없다.






2020.06 양양






어쩌면 지독히 고약한 말, '시간이 없어서'. 그 지독함을 '어쩔 수 없지'로 달래준 엄마와 아빠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그 뒤에 숨은 말들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받지 못한 미안함도 이어졌다. 그래도 결혼하기 전 많은 시간을 보냈으니까! 라는 말로 스스로를 다독였던 것은 후회로 돌아왔다. 


그래서, 이번엔 내 시간을 더 비집고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내 차례라는 생각도. 어쩔 수 없지- 의 끝에 왜 어쩔 수 없어! 라는 말을 붙여보기로. 상대적으로 더 많은 시간을 밀어 넣을 순 없겠지만 적어도 다음과 다시를 한 번쯤 더 말해 볼 수 있도록. 





내년의 오늘, 점점 비어가는 그해 여름의 시간이 아닌
더 꽉 채워진 그해 여름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9월의 어느 날, 우린 함께 당일치기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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