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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열두시 Apr 17. 2020

그때, 그 찰나의 순간 '선택하지 않은 나'

가끔은 내가 선택하지 않은 나를 만나야 할 때도 있다






이런 만남은
원하지 않았는데






2017년 가을, 어느 카페의 계단 <아이폰7 플러스>






나도 모르게 낯설다, 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어떤 일을 준비하고 진행하는 데 있어 그대로 잘 되었을 때와 그렇지 않을 경우를 함께 대비하게 된다. 나는 후폭풍이 더 거센 후자에 신경을 쓰는 편이다. 런데 그날 내가 받아 든 결과는 '일반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두 가지를 완전히 벗어난 것이었다. "잘 되었어, 잘 되지 않았어"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지도, 그 중간 지점에 머무르지도 못한 전혀 다른 방향을 만난 것이다.






그 상황도, 그 상황을 예상하지 못한 나도,
그로 인해 무척 당황하는 나의 모습까지
모든 게 낯설었다







2017년 겨울, 제주도의 어느 동네서점 겸 카페 <필름카메라>






무레 요코는 <일하지 않습니다>를 통해 인간은, 상상하는 그대로 보다는 가끔은 반전이 있는 쪽이 훨씬 재밌다고 했지만 그날의 나는 아니었다. '언제부터 였을까 나'에서 써내려 간 것처럼 매일 새롭게 이어지는 나와의 만남을, 나만의 모습을 다시 그려볼 수 있는 시간으로 생각하고 견뎌보려 했지만 그날의 나는 낯설게 시작해 낯설게 끝나가고 있었다. 






그날 내게 얹힌 한 가지 깨달음은
가끔은, 선택하지 않은 
나를 만나야 할 때도 있다는 것






2018년, 위대한 나라의 괴짜들 K현대미술관 <아이폰7 플러스>






낯섦을 지나 다시 낯섦을 만나는, 믿을 수 없는 시간의 반복.

여행에서의 낯섦, 새로운 공간을 통해 전해지는 낯섦과 같은 종류였다면 그 시간을 놓치기 싫어 되려 걷는 속도를 늦추고 한 번이라도 더 들여다보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낯섦으로 시작되는 두려움도 나중에 돌이켜보면 그저 순간일 뿐인데, 그날의 나는 1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벅차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답은 없지만, 기대한 만큼이라는 기준을 
많이 벗어났기에 나는 그 낯섦이라는 덫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했다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할까 두려웠고, 또 같은 나를 만날까 무서웠고, 다시 무기력해지는 나를 보게 될까 어려웠던 그날의 낯섦. 이질감으로 잔뜩 둘러쌓인 이녀석은 며칠이 지나서야 조금씩 무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미완이기에, 낯섦에서 오는 신선한 충격에 푹 빠져 있었던 내게 선택하지 않은 나를 만나야 할 때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란 그리 쉬운일이 아니었다. 실컷 방황하는 것도, 제자리에 오래 머무는 것도 아직 영글지 못해서 그랬을거야 - 라고 넘겼던 나인데, 이런 위로에도 끄덕없던 지난날의 시간은 서늘함 그 자체였으니 말이다. 






2018년 봄, 부산 영도의 어느 골목길  <아이폰7 플러스>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인정하고 받아들일까 노력했지만, 서늘한 낯섦을 품는 대신 나는 내가 기존에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에서 벗어나는 일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매듭 지어 내려놓기로 했다. 낯설게 시작했으니, 아니 낯설게 시작 되었으니 익숙하지 않게 맺을 수 있도록.


앞으로도 나는 의도하지 않은, 내가 선택하지 않은 나를 만나게 될 지 모른다. 통증은 줄어들 지 모르지만, 익숙해지진 않을 것이라는 사실도 안다. '나'로 묶여있지만, 미묘한 틈과 괴리 같은 것이 또 다른 두려움과 서늘함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도. 그래서 나는, 의도하지 않은 나의 반대편에 서있을 내게 약속을 하기로 했다. 보이지 않아 초조하게 만드는 미래의 약속일지라도 과거의 지키지 못한 약속보다는 가능성이 높을테니 말이다. 






반복된다면,
또 낯섦이라는 덫에 걸려든다면,
당황하지 않고 빠져나오자고
나를 더 강하게 만들 수 있는 시간으로 만들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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