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제작자와 소비자의 간극에서, 새로운 규칙을 찾을 수 있을까?
우리는 관심 경제(Attention Economy)의 세상에서 살고 있다. 예전에는 정보가 부족해 우리가 정보에 목 말라 했다면, 이젠 정보가 많아도 너무 많아 오히려 정보가 우리의 관심을 구걸하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관심은 곧 그것에 쏟는 시간이다. 하루의 시간은 정해져 있고, 우리가 정보에 시간을 소비할수록 미디어는 돈을 번다. 그래서 많은 미디어는, 우리가 관심 가질만한 정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인터넷 보급 초기에 지식인 서비스가 붐을 일으켰던 것도 같은 이유다. 초기 인터넷엔 쓸만한 정보가 많지 않았고, 특히 내 입맛에 딱 맞는 정보는 드물었다. 그래서 검색해서 답을 찾기보다 질문해서 답을 얻었다. 지식인 서비스는 쓸만한 정보를 생산해 내는 좋은 방법이었지만, 나중엔 업체 홍보를 위한 어뷰징이 가득해지면서 사람들이 관심을 거뒀다.
블로그가 각광을 받기 시작한 것이 그때쯤이다. 처음에는 싸이월드 미니홈피 같은 개인 일기, 홈페이지 정도로 시작했다가, 점점 여러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좋은 정보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마치 작은 신문사처럼, 매일매일 관심 분야의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 올리거나, 소식을 전했다. 네이버는 파워 블로그란 제도를 만들어 좋은 블로그를 가려 뽑으며 그들을 응원했다. 사람들의 관심이 다시 블로그에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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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타리 쇼크’는 여기서도 일어났다. 하나의 콘텐츠가 인기를 얻으면, 비슷하게 따라 하는 질 낮은 아류 콘텐츠의 범람으로 결국 전체 시장이 무너지는 것. 그 뒤에 붙어 있는 쉽게 이익을 얻으려는 질 낮은 욕망들. 아이러니하게도 ‘파워 블로그’ 명단은 어떤 사람들에겐 홍보를 위한 ‘섭외 대상자’ 명단이나 다름없었다. 이름값이 높아지니 콧대가 높아지는 사람들도, 으스대는 사람들도, 심지어 이를 사칭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결국 이름값 자체가 망가지며 ‘파워 블로거지’라는 말까지 낳았다.
파워 블로그 제도가 장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미디어 업계에서는 ‘유명한 것이 권력이다’.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이 제대로 대접받기 위해선 인지도가 필요하고, 파워 블로그 제도는 이 인지도 획득에 걸리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여줬다. 여기서 일이 틀어지기 시작한다. 파워 블로그 제도는 잘하는 사람들을 밀어주려고 시작했을 텐데, 거꾸로 사람들이 파워 블로그 딱지를 달기 위해 콘텐츠를 만들기 시작한다.
블로그를 쓰는 사람들도 눈에 띄게 늘어나고, 파워 블로그가 되는 방법이란 글과 책도 수시로 나온다. 여기저기서 강의도 열린다. 슬픈 것은, 참가자 수에 비례해 콘텐츠의 질이 더 좋아지긴 커녕, 오히려 나빠졌다는 것이다. 지식인 서비스와 마찬가지로 질 낮은 욕망들이 달라붙기 시작했다. 지금 원하는 키워드를 넣고 검색을 해보자. 아이폰SE? 검색 1면에 걸리는 블로그 글 대부분이 아마 광고일 거다. 오죽하면 ‘~에서 오빠랑’이란 추가 검색어가 유행하기까지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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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흐려진 콘텐츠의 저수지에서 좋은 콘텐츠를 다시 끌어내려는 시도는, 몇 년 전부터 이어져왔다. 핵심 기고자들의 콘텐츠를 모아 플랫폼 서비스를 시작했던 ‘허핑턴 포스트’의 모델을 개량해 ‘미디엄’이라는 서비스가 나오고, 이를 응용해 ‘네이버 포스트’와 ‘브런치’라는 한국형 플랫폼도 론칭 되었다. 대부분 어느 정도 글쓰기가 검증된 사람들을 미리 큐레이션 해서, 글쓰기 좋은 플랫폼과 서비스를 제공해 글쓰기를 도우며, 별도의 대가가 없는 대신 글 쓰는 이들이 독자의 관심을 얻는 것을 돕는다.
문제는 글 쓰는 사람들과 글 읽는 사람들의 욕망이 다르다는 것. 형식은 '관심의 등가 교환'이겠지만, 유튜브 인기 스타들이 대부분 스폰서 콘텐츠를 통해 수익을 얻는 것처럼, 단순히 인지도만 얻는다고 계속 글을 쓸 힘을 얻기는 어렵다. 대다수의 콘텐츠 제작자들은 콘텐츠만 만들어서는 생활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스폰서 콘텐츠가 올라가는 순간, 많은 독자들은 등을 돌린다. 그 사이의 간격을 메꿀 정해진 방법은 별로 없다.
콘텐츠 업계의 수익은 결국 소수 독점의 체제다. 웹툰이나 소설이 아닌 이상, 웬만큼 좋은 글을 올려도 글쓴이에게 원고료를 줄 독자가 얼마나 있을까? 결국 아이돌 그룹처럼 음원이 아니라 행사나 광고를 통해 돈을 버는, 비판매 비즈니스의 기회가 오는 것에 만족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도 유명해진 몇몇에게만 허락되는 기회. 결국 스폰서 콘텐츠를 만들게 되고, 그 이익을 노리며 불나방들이 뛰어들고, 독자들은 관심을 거두고, 다시 판은 망가진다. 지난 10여 년간 숱하게 되풀이 되었던 망가짐의 역사.
네이버 파워블로그 선정 종료 이후, 새로운 콘텐츠 플랫폼은 이를 극복할 대안을 가지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