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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그니 Apr 29. 2019

왜 가난한 사람도 아이폰을 사는가

언젠가 다시 읽을 글 : 20190429

* 이 글은 제가 읽었던 콘텐츠 가운데 나중에 다시 볼만한 콘텐츠를 정리하는 글입니다.


과도하게 해석할 필요는 없지만, 어떤 도구를 산다는 건 '대학 점퍼(학잠)'를 입는 행동과 비슷한 면이 있다. 과시와 소속감이 뒤엉킨 기분이랄까. 아이폰이 한국에 처음 출시되었을 때, 애플 리테일 샵에서 학생과 같이 온 듯한 교수님이 '이거 내가 미국에 있을 때 쓰던 폰인데...'라며 으쓱하던 모습과 비슷하다. 


아래 기사를 쓴 기자는 '아이폰'을 사는 일을 '애플빠'라는 집단에 진입할 수 있는 티켓으로 해석한다. 실제로 아이폰 이용자들은 아이폰 구매 행위를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연관시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꿀리지 않으려는 마음이기도 하다. SUV를 타는 여성 운전자가 내게 해줬던 말이다. 조금 과한 해석이지만, 생각할 부분도 있다.


사회적 낙인을 찍으려는 공격으로부터, 과시를 통해 자기를 보호하려는 소비 행위. 더불어 소비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행위. 일종의 '인정 욕구'. 아이러니하게, 그런 낙인은 특정 판단 기준을 자기 내면에 받아들인 사람들로부터 나오고, 지금껏 그런 판단 기준은 미디어와 광고가 제시해 왔다. 대표적으로 다이어트, 뷰티, 자동차 등. 


모두 알지만, 효과는 사라지지 않는다. 갤럭시 폴드를 쓴다고 갑자기 돈을 많이 벌거나 세련된 사람이 되지는 않지만, 다른 사람들이 저 사람은 돈 많은가 봐-하고 생각하게 만들 수 있다. 만들어진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래도 아래와 같은 결론은 좀 곤란하지 않을까. 


그래서 결론은 이렇다. 가난한 사람들도 아이폰을 산다. 가난하더라도 능력이 뛰어나고 성실한 집단에 속한다는 점을 증명하기 위해. ... 세상에는 극단에 서 있는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을 자극하여 물건을 파는 판매자들이 이미 많다 ... 악마들 사이에서 비집고 살아남아 경쟁하려면 악마가 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일 수 있다.




징징거림과 조리돌림의 세계, 단어가 참 세다. '단속사회'를 쓴 엄기호의 출간 기념 강연 기사에 붙은 프레시안의 기사 제목이다. '인정 욕구'는 여기에서 다시 등장한다. 징징거림은 인정 욕구를 채우기 위해 말을 하는 방식이다. 우리는 힐링 프로그램 등을 통해 이렇게 말하는 걸 '배웠다'. 


조리돌림은 문제를 해결하는 태도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이야기를 해야 한다. 한국에선 이야기를 하기 전에 문제를 폭로하고, 상대방을 나쁜 놈으로 만드는 일에 능하다. 일종의 '갤러리 효과'다. 이 사회는 어떤 시스템을 통해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믿음이 없으니 사적 해결 방법을 모색한다.


비아냥과 조롱은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스스로 비아냥거리지 않는다고 해도, 좋아요와 리트윗을 통해 비아냥에 동조하는 역할은 하는 사람이 많다. 시사인에서 말한 '반페미니즘 20대 남성'이 택한 태도이기도 하다. 이 기사는 다음에 링크하겠다. 시사인이 기획한 반페미니즘 20대 남성 기획 기사와 이 글을 같이 읽으면, 겹쳐 보이는 부분이 너무 많다. 


사람들은 말을 함으로써 돌려받고 싶어 하는 게 있습니다. 내가 정당하다는 것에 대한 인정입니다. 즉 "네 말은 들을만한 가치가 있고, 나 말고 다른 사람들도 들어야 해, 사회가 지금까지 이 문제를 몰랐지만, 너무 중요해서 토론을 해봐야 할 것 같다"라는 대응입니다. 나의 사적인 경험이 사회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인정받는 것, 그때 생기는 것이 오늘의 열쇳말인 '사회적 존재감'입니다. 


또한 우리가 그렇게 유려하게 잘 말하는 '내용'이 '자신의 고통'에 대해서라면, 그걸 말하는 '방식'의 특징은 바로 징징거림입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 사회에서 개인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선택하는 주된 방식(사회과학적인 언어로 말하면 '주체화의 형식')이 '내 고통을 징징거리면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어요. 내가 내 고통을 그런 방식으로 이야기하지 않으면 사회에서 존재할 만한 가치가 없는 것으로 평가된다는 두려움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사람들은 나날이 서로서로를 고조시키죠. "내가 더 고통받았다", "내가 더 힘들다"라고요. 

...

다시 말해, 우리는 자신을 효율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자신을 피해자화하는 방식을 선택한다는 겁니다. 스스로 어떻게 고통받았는지를 이야기해야만 그나마 누군가 들어주고, 그런 방식으로 사회에 어필할 수 있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원래 소개하려고 했던 기사는 아래 기사였는데, 유료 기사라 적당하지 않아 링크만 걸어둔다.


 



마지막은 뚜렷한 희망을 보여주는 두 사람 이야기를 링크하며 마무리하려 한다. 먼저 포항공대 최초의 외국인 총학생회장, 사르카르다. 제목은 자극적이지만, 이 사람, 멘탈이 굳건하다. 징징거리지 않는다(응?).


―무섭지는 않은가. 앞에서는 미소 지으면서 트위터에는 욕설을 남기는 셈인데.

“괜찮다. 안 죽는다(웃음). 지금은 개인 신변보다 총학생회 일이 더 중요하다. 내가 내건 공약, 정책 추진으로 답변하면 된다. 우리 총학생회의 안건은 ‘모든 대학원생에게 익숙해지기’다. 대학원에는 총학생회가 중요하지 않다는 인식이 있다. 그리고 본인들이 얼마나 열악한 노동 환경에 처해 있는지도 모른다. 대학원생 조교 임금 상승은 반드시 해결돼야 한다.”


다른 한 명은 2019년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WBC)에서 우승한 전주연의, 2018년 WBC 시연 영상이다. 보다 보면 기가 막히다. 커피 시연이 이리 이뤄질지 몰랐다. TED 같기도 하고, 스타트업 회사가 프레젠테이션하는 모습으로도 보인다. 애당초, 이렇게 만들어지는 커피가 한국에 있으리라고도 생각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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