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살펴본 세계의 시니어 유튜버들
2005년에 만들어진 유튜브라지만, 2010년에야 처음 동영상을 올려봤다. 그때까진 이글루스(현재 동영상 기능 정지), 엠엔캐스트(파산) 같은 곳에 올렸지, 저~ 멀리에 바다 건너에 서버가 있는 유튜브에 동영상을 올릴 날이 오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유튜브가 한국을 점령하기 시작했을 때도, 여긴 우리들... 그러니까 인터넷을 좀 쓴다는 사람들 세상이었다. 사실 유튜브에서 방송을 한다는 개념도 별로 없고, 그냥 웹에서 내가 찍은 영상을 공유하고 싶을 때 이용하는 사이트였다. 아이들이 사랑하고 어르신들이 방송하는 세상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 그런데, 왔다.
애들은 잘 모르니 일단 넘어가자. 참고로 만 14세 미만 미성년자의 단독 유튜브 영상 출연은 금지되어 있고, 만 13세 이하일 경우 스스로 관리할 수 있는 구글 계정을 만들 수 없다. 그럼 노인...이라 부르면 다들 싫어하신다고 하니, 어르신... 도 역시 싫어하신다고 하니, 시니어 유튜버들은 어떻게 활동할까?
한국에선 역시 박막례 할머니가 가장 유명하다. 하지만 생각보다 더 많은 시니어들이 유튜브 방송을 하고 있다. 나는 시니어 유튜버를 크게 두 개로 나눈다. 한쪽은 박막례 할머니처럼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다른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크리에이터다. 다른 한쪽은 정치적인 얘기를 많이 한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비슷한 사람들에 말을 건다.
굳이 이렇게 나눈 이유는? 영상을 올리는 장소는 같은데, 유통되는 형식이 차이가 나서 그렇다. 유튜브는 원래 검색, 추천, 구독을 통해 영상을 즐기는 플랫폼이다. 반면 비슷한 사람에게 말을 거는 사람들은 동영상을 올리는 장소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영상을 올리고, 인터넷 카페나 메신저를 통해 링크 주소를 클릭해서 시청하는 식이다.
... 음, 유튜브 규정에 따르면 광고주가 선호하는 쪽과 아닌 쪽이라고 생각해도 좋겠다.
최초의 시니어 유튜브 스타는 누구일까? 피터 오클리, 닉네임 제리아트릭1927(geriatric1927)이 아닐까 싶다. 2006년 8월에 동영상을 올리기 시작해 2014년 2월까지 업데이트했다. 주로 자전적 이야기, 자신이 참전했던 2차 세계 대전 같은 이야기를 풀어나갔다고 한다.
한 달 정도이긴 했지만, 유튜브에서 가장 많은 구독자를 가진 유튜버이기도 했다. 그 이후 지금까지 영국에서 1위를 한 사람은 없다. 이때만 해도 영국에서 진짜로 굉장히 유명했다고 한다.
유튜브라기보다는 아프리카 TV에서 더 많이 활동하시지만, 한국 최초의 시니어 스타라면 이 분이 떠오른다. 닉네임 오작교, 본명 진영수 할아버지. 1941년생이시고, 아프리카 TV 베스트 BJ 가운데 한 분이다. 피터 오클리가 어떤 정보를 전달하는 방송을 했다면, 오작교 할아버지는 그냥 편하게 들어와서 이야기를 나누는 방송을 운영하신다. 2006년부터 하셨다고.
... 사실 요즘 유튜브 크리에이터 같은 콘텐츠를 가지고 있지는 않으신대, 우연히 발견되었다고 해야 하나.
방송 동기는, 외로워서(...). 사실 나이가 들면 새로운 인간관계보다는 자신에게 의미 있는 관계를 선택하고 집중하는 경향이 더 강해진다. 그래서 나와 다른 이에게 말을 거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래서 어떤 의미로는 대단하시다고 말하고 싶다. 그저 대화를 하기 위한 방을 열어놓을 용기가 계셨다니.
하나의 콘텐츠가 히트하면 비슷한 다른 콘텐츠가 잇 다른 것처럼, 오클리 할아버지가 알려지기 시작한 이후, 서양에선 많은 시니어들이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다. 이들은 느낌이 1세대와는 다르다. 뭐랄까. 1세대는 자신이 미디어를 대하는 태도를 그대로 유튜브에 옮겨온 느낌이 강했다면, 2세대는 유튜브 영상 문법을 받아들였다고 해야 할까.
박막례 할머니만 봐도 그렇다. 1947년생이신데, 할머니가 주로 다루는 콘텐츠가 메이크업, 먹방, 영화 리뷰, 여행, 요리 등 정말 정말 다양하다. 크게 보자면 코미디 장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죄송합니다ㅜ_ㅜ), 어쨌든 유튜브 시청자 층이 많이 좋아하는 주제를 다룬다.
이런 아이템은 주제를 잘 잡고, 자신의 캐릭터를 잘 녹여내면서 재미있게 만들어야 한다. 다루는 주제나 형식은 이미 수도 없이 되풀이됐다. 다행히 박막례 할머니는 할머니 본인 캐릭터가 참 좋았다. 누구도 따라올 수 없다고 할까. 거기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생겼다.
1950년생 찰스 그린 주니어, 닉네임 앵그리파도 그래서 유명하다. 채널 구독자는 433만 명(2019.11). 주로 보여주는 방송 ... 화내는 거다. 정말 이런저런 이유로 화내고 또 화낸다. 이게 인기를 얻었다. 셜리커리라는 이름의 할머니는 여든 살이 넘었다. 그런데, 게임을 플레이하는 영상을 올린다. 그걸로 인기를 얻었다. ... (부럽습니다 ㅜ_ㅜ).
물론 혼자 힘으로 뚝딱 이런 걸 만들 수는 없다. 이 분들이 새로운 감각으로 영상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은, 자식이나 손주뻘(...) 되는 누군가가 도와줬기 때문이다. 가만 보면 1세대 시니어 유튜버들은 대부분 고정된 카메라에 대고 혼잣말을 한다. 2세대는 다른 누군가가 찍어주고 있다. 어쩌면 세대 통합(...)의 훈훈한 모습이다.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난다. 생각보다 많은 시니어 유튜버가 있지만 굳이 하나하나 다루지는 못하겠다. 3세대까지 얘기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지금은 2세대 시니어 유튜버들의 시간이다. 더불어 박막례 할머니에게 영감을 얻은(+ 시니어 유튜브 교육 과정을 이수한(...)), 새로운 시니어 유튜버들이 등장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 더 많은 시니어 유튜브가 궁금하다면 이 기사(링크)를 보자. 좀 옛날 기사지만 이 글(링크)도 있다.
앞으로 10년이나 20년이 지나면, 지금 유튜브에 익숙한 중년(...)들이 다시 시니어 유튜버로 활동할지도 모른다. 그때까지 유튜브가 싸이월드가 안된다면 가능한 일이다. 뭐, 좋다. 좋은 일이다. 젊은이와 노인을 나누는 중요한 차이는 ‘나에게 얼마나 많은 시간이 남았는가’를 의식하는 차이라고 하니까.
다시 말해, 많이 남았다고 생각하면 새로운 도전을 선호하고, 없다고 생각하면 소중한 관계에 집중하게 된다고 한다. 다른 이에게 말 거는 시니어 유튜버가 된 분들은, 젊게 사는 태도를 택했다. 앞으로 더 많은 이들이, 그런 태도를 택할 거라 여긴다. 이왕 할 거라면, 지금부터 해도 좋고.
대단한 선택을 한 시니어 크리에이터님들, Live long and prosper!
* 저보고 하라면 못합니다.
* 2018년 7월에 작성된 글을 수정해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