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징 테크, 지금 이 시기 꽤 중요한
몇 달 전, 롯데리아에서 햄버거를 주문하다 망신을 당한 적이 있다. 키오스크를 제대로 이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런 데 나이 든 분들은 오죽할까. 패스트푸드점 주문 방식이 절반 이상 무인 주문기(키오스크)로 바뀌면서, 이에 대해 불평불만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높다.
목소리는 높은데 회사는 꿈쩍하지 않는다. 오죽하면 노인들 오지 말라고 키오스크를 쓴다는 말까지 나올까.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IT 기술이, 오히려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기술은 죄가 없는데 기술 때문에 사람이 차별당한다. 아니 알고 보면 그 기술에 규칙을 적용하는 사람들이 고객을 차별한다. 사실, 도와주는 직원 한 명만 있어도 해결되는 문제인데, 그걸 안 한다.
▲ 마음이야 이분들처럼 늙고 싶지만..
누군가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해결될 문제라고 하기도 한다. 기술에 익숙한 세대가 늙어가면, 차별도 사라질 거라고. 지나치게 낙관적이다. 문제는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가'라는 흐름이고, 새로운 기술은 끊임없이 도입된다. 기술 사용자를 먼저 생각하지 않으면 차별은 계속 이어진다.
에이징 테크는 이런 흐름 반대 편에 있는, 시니어 세대를 위한 기술이다. 드러나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에이지 테크(Age tech), 에이징 테크(Aging tech), 장수 기술, 실버 기술 등 부르는 이름은 다양하지만, 일단 여기에선 편의상 에이징 테크라고 부르자.
특별한 기술은 아니다. 푸드 테크처럼 IT와 만나 새로 생긴 여러 서비스 가운데 하나다. 그 가운데 고령층을 대상으로 하는 기술군을 에이징 테크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스마트 헬스 케어’ 기술이나 건강 관리를 위한 웨어러블 디바이스가 여기에 속한다. 친구가 되어주는 애완 로봇이나, 인공지능 스피커를 이용해 가전제품을 제어하는 기술도 여기 포함된다. 기술 사용법을 가르쳐 주거나 생활을 돌봐주는 서비스, 노화로 인해 생기는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장애 기술 역시 에이징 테크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어제오늘 생긴 기술은 아니다. 노년층을 위한 제품은 예전부터 많았다. 보청기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다만 예전에는 지금보다 노년층, 그리고 곧 노년이 될 사람들이 이렇게 많지는 않았다. 게다가 새로운 노년층은 보건 의학의 발달로 인해 예전보다 훨씬 더 건강하다. 60세, 환갑이 된 사람을 ‘늙었다’라고 생각할 사람은 이제 별로 없다.
널리 사용되지도 못했다. 이제까지 노인용 제품은 솔직히, 별로 보기 좋지 않았다. 떨어진 신체 기능을 보완하는 방법만 생각했지, 그걸 사용하는 사람이 어떻게 보이는가는 별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이 나이가 들어도 체면이 있는데, 그걸 고려하지 않으니 사람들이 쓰지 않았다.
에이징 테크에 속하는 새로운 기술 제품이나 서비스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먼저 실제로 필요한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해 고민한다. 예를 들어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작년에 나온 앱 중에 ‘파파’라는 앱이 있다. 만 60세 이상 성인일 경우 이 서비스에 대학생 파견을 요청할 수 있는데, 그 학생과 함께 집안일을 한다거나, 게임을 하거나, 스마트폰을 배우거나 할 수가 있다고 한다.
무료는 아니다. 한 시간에 20달러 정도 비용이 든다. 하지만 학생들은 지역 사회에 대해 봉사를 할 수 있어서 좋고, 신청자는 외로움을 덜 수 있어서 좋다고 한다. 노년층, 특히 1인 가구로 사는 노년층에게는 외로움이 큰 문제인데, 거기에 초점을 맞췄다. ‘그레이트 콜 라이드’라는 서비스도 있다. 여기에 요청하면, 우버나 리프트 같은 승차 공유 서비스 차량을 대신 불러준다.
▲ TCL에서 출시한 시니어 전용 스마트워치, 무브타임 MT40s
로봇이나 인공지능 스피커도 도움이 된다. 해외에서는 컴퓨터 대신에, 지역 커뮤니티에서 인공지능 스피커 사용법을 가르치는 경우가 꽤 많다. 아직 부족하긴 하지만, 길을 찾고 있다고나 할까.
구글 같은 경우엔 스마트홈 기기와 인공지능 비서를 이용해 노인들이 독립적으로 살 방법을 연구 중이다. 아무래도 손가락보다 말이 편하기 때문이다.
스마트 애완동물 로봇은 이미 노인 병간호 시설을 비롯해 여러 곳에서 쓰이고 있다. 최근 등장한 엘리큐(ElliQ)는 컴패니언 로봇이다. 사람의 말을 이해하고, 간단한 게임을 하거나 반응 동작을 보인다. 고개만 까닥거리기는 하지만, 친구처럼 느껴진다고 한다.
컴퓨터 게임을 치매 방지를 위한 쓰는 경우도 많다. Singfit 같은 앱은 노래방 앱처럼 보이지만, 실은 인지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을 위해 ‘음악 치료’용으로 만들어진 앱이다. 노인 병간호 시설에서 많이 쓰인다고 한다.
Wanderer라는 VR 게임도 있다. 노년층을 위해 만들어진 게임은 아니지만, 이 앱을 이용하면 구글 스트리트뷰를 이용해 세계를 여행할 수 있다. 집안에서 바깥을 돌아다닐 수 있어서, 한번 사용법을 익힌 사람들은 좋아한다고 한다.
에이징 테크를 보는 관점은 서로 제각각이다. 한쪽에선 시니어 계층을 케어하기 위해 만든다 하고, 다른 쪽에선 새로운 소비자에 맞는 '새로운 서비스'를 만든다 여기기도 한다. '치료' 목적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그저 오락이나 편의를 제공하는 게 목적이기도 하다. 말은 하나지만, 다양한 관점으로 만들어진 기기와 서비스가 한데 얽혀있다.
여기서 어려운 질문이 하나 던져진다. 노인들이 기술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선, 누가 노인을 위해 대신해줘야 할까, 아니면 스스로 배워야만 할까? 어느 쪽이 우선시되어야 할까? 실은 여기서도 빈부격차에 따라 서로 갈리기 때문에, 뭐라고 딱히 답을 내리기 힘들다.
어쨌든 이 시장은, 세계적인 고령화 추세가 이어지면서 당분간 쭉쭉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 2050년엔 6명 중 1명이 65세 이상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남성 1인 가구의 주된 문제인 '외로움'과 '식사', 여성 1인 고령 가구의 주된 문제인 '안전'과 '경제' 문제를 풀어줄 기술이 나온다면, 크게 환영받을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 없다고 외면하기엔, 꽤 중요한 흐름이다. 무엇보다 당신도 나도, 언젠가는 반드시 늙는다. 아니 지금도 늙고 있다. 지금 만들어지는 기술은, 앞으로 우리가 도움받고 써야 할 기술이다. 우리가 살게 될 세상의 판을 까는 일이니까. 그렇게 쓰이려면, 좀 더 사람에 대해 생각해야 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