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 시대의 백기사가 되다
* 2018년 5월에 썼던 글입니다. 지금 다시 올리는 이유는, 코로나 19가 지나가고 나면 진짜 유틸리티 기업이 되어 있을 것 같아서입니다. 아마존과 넷플릭스는, 판데믹 시대의 백기사가 돼버렸습니다.
지난 2018년 1월 22일, 미국 시애틀에 색다른 매장이 하나 문을 열었다. 계산대가 없는 매장, ‘아마존 고’다. 2015년 11월 3일 오프라인 서점 ‘아마존 북스’를 오픈한 이래, 처음 여는 오프라인 잡화점이다. 분위기는 다르다. 아마존 북스가 생기기 전에 우려와 비웃음을 보낸 사람이 더 많았던 것을 생각해 보면, 아마존 고를 대하는 사람들의 기대와 계산대에 줄 설 필요 없는 쇼핑을 경험한 이들이 내뱉는 찬사는 낯설기까지 하다.
그때만 해도 많은 사람은 뼛속까지 온라인 기업인 아마존이 현실 매장에서는 쓴맛을 보리라 여겼다. 오프라인은 오프라인만의 비결이 있으며, 그걸 아마존이 따라가진 못하리라 짐작했다. 개점 이후 그런 선입견은 깔끔하게 깨졌다. 편안히 앉아 책을 볼 수 있는 공간, 친절한 직원들, 모든 책이 표지가 보이게 진열된 서가, 아마존 평점이 높은 책만 갖춰 놓은 구성, 아마존 고객 리뷰와 평점을 볼 수 있는 책 안내판 등 아마존이 선보인, 온라인 경험을 연장해 오프라인에 구현해 놓은 매장 디자인은 기존 서점을 오히려 능가했다.
생각지도 못하게 성공하자, 다양한 평가가 쏟아져 나왔다. ‘현실 고객 자료를 수집하려는 시도다’, ‘아니다. 온라인 데이터를 오프라인에서 검증하려고 한다’, ‘아마존이란 브랜드에 대한 고객 경험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부터 시작해 ‘실은 진짜 목표는 아마존 웹서비스를 홍보하려는 거다’, ‘책은 미끼일 뿐이고 나중에는 전자 제품을 팔려고 한다’까지, 당시만 해도 의견이 분분했다. 다만 왜 굳이 이런 매장을 만들었는지는 누구도 쉽게 대답하기 어려웠다. 오죽하면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의 저자 니콜라스 카는 그저 ‘책을 더 팔기 위해서’ 아마존 북스를 열었다고 말했을까.
비웃지 말자. 누구나 할 수 있는 얘기라 언급할 가치가 없어 보이는 니콜라스 카의 의견이 가장 정확한 분석에 가깝기 때문이다. 아마존 북스와 아마존 고는 모두 아마존이 물건 하나를 더 팔기 위해 만든 가게다. 아마존은 판매를 조금이라도 더 늘리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한다. ‘아마존 프레시’라는 신선 식품 배달 서비스를 개시한 이유도, ‘홀푸드’를 인수한 이유도, ‘아마존 키’라는 집 안 배달 서비스를 시작한 이유도, 드론 배달을 연구했던 이유도 단 하나다. 고객이 불편하게 여기는 과정을 없애서 하나라도 더 팔려는 것.
온라인 기업들이 오프라인 매장을 만드는 일을 ‘O4O(Offline for Online)’라고 부른다. 쉬운 일은 아니다. 아마존 북스 오픈 전에 사람들이 걱정했던 것처럼, 온라인에서 잘 팔린다고 해서 꼭 오프라인에서도 인기가 많다는 법은 없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상황은 매우 다르다. 점포 가까운 곳에 창고가 필요하다. 바로 근처에 경쟁자가 있다. 고객 클레임, 점원 응대에 대한 반응, 날씨 같은 다루기 힘든 변수도 많고, 클릭 한 번으로 책을 살 수도 없다. 꼭 물건을 사기 위해 매장이 들리지도 않는다. 많은 현대인의 주말 여가 오락이 ‘마트에서 장보기’인 것처럼, 오프라인 매장은 단순한 물건 판매 장소 그 이상이다.
책 한 권을 더 판다고 크게 이익을 얻지도 못한다. 많은 사람이 의아하게 여기지만, 아마존은 물건을 팔아 큰돈을 버는 회사가 아니다. 시가총액 세계 2위 기업이지만 2017년 매출과 순이익은 시가총액이 1/3이 불과한 미국 월마트의 절반도 안 된다. 지난 20여 년간 거의 이익을 내지 않고 성장했다. 실은 적자를 낸 기간이 더 길다. 그나마 최근 아마존 클라우드 서비스(AWS)가 제 궤도에 오르면서 괜찮은 수익을 가져다주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딱히 돈을 더 버는 것도 아닌데 오프라인 매장을 계속 만든다. 홀마트처럼 오프라인 매장을 가진 기업도 넘겨받는다. 킨들이나 아마존 에코처럼 적자 나는 사업도 계속 끌고 간다. 책 한 권 더 팔자고 하기에는 너무 비싸다. 왜 이러는 걸까? 아마존이 온라인 서점으로 시작했다가 온갖 것을 다 파는 종합 온라인 상거래 사이트로 성장했던 것처럼, 아마존 북스는 아마존 고를 만들기 위한 테스트 베드 역할을 했다. 다만 ‘세일즈’처럼 직접 책 한 권을 더 파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PR’처럼 물건을 더 팔 수 있는 구조를 만들기 위한 테스트 베드다. 이렇게 생각하면 그 비싼 돈을 들이며 아마존이 계속 오프라인 매장을 만드는 이유가 보인다.
아마존 CEO 제프 베조스는 아무나 진입하기 힘든 거대한 시장 플랫폼을 만들고 있다. 아니, 소비자 라이프 스타일을 아예 바꾸려 하고 있다고 해도 좋겠다. 아니, 어쩌면 시장(Market)이란 말을 아마존(Amazon)이란 말로 바꾸고 있는지 모르겠다. 가장 많은 거래가 일어나기 위해선 소비자 경험이 만족스러워야 한다. 좋은 소비자 경험을 위해선 가격이 싸야 한다. 배송이 빨라야 한다. 좋은 상품을 쉽게 고를 수 있어야 한다. 아마존이 내놓는 여러 혁신적인 서비스나 기술, 하드웨어는 이런 좋은 경험을 만들려고 하다 보니 태어난 부산물이다.
‘아마존이 시장을 대체하려고 한다’라는 말은 솔직히 허풍이 심하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아마존이 시장을 대체하진 못한다. 지금은 소비자에게 이익이 되기에 독과점에 가까운 온라인 시장점유율을 가지고 있어도 정부가 간섭하지 않고 있지만, 이익률을 높이려는 순간 법에 따라 철퇴를 맞게 된다. 세상이 그렇게 무력하지 않다. 지난 수백 년간 독점 기업들이 어떤 해악을 낳는지를 충분히 지켜봤으며, 경쟁 시장을 유지하는 것이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는 사실을 다들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전력, 수도, 도시가스 같은 기본 인프라를 제공하는 유틸리티 기업이 되려고 한다면 어떨까? 다시 말해 한 사회의 기본적인 전자상거래망을 제공하는 회사가 되려고 한다면? 그렇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유틸리티 산업은 그 속성상 한 사회에 꼭 필요한 인프라를 광범위한 투자를 통해 구축하면서도 저렴한 비용으로 제공해야 한다. 그렇기에 독과점이 인정되며, 정부가 직접, 또는 국영 기업을 통해 참여하는 예도 많다. 아마존의 두 축을 이루는 사업은 전자상거래와 클라우드 서비스다. 이 두 사업은 지금은 유틸리티 산업으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앞으로 유틸리티 산업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크다. 아마존 AWS는 아직 공적 규제 대상으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이미 유틸리티 컴퓨팅 사업 모델로 운영된다. 미국 CIA 및 세계 각국 은행들이 이용할 정도로 신뢰도도 높다.
물론 아마존 전자상거래가 진짜 유틸리티 사업이 되기 위해선 넘어야 할 벽이 높다. 아직 온라인보다 오프라인 시장 규모가 더 크며, 물건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직접 보고 만지고 사기를 원하는 사람도 많다. 필요한 물건을 그 자리에서 바로 사기도 어렵다. 하지만 아마존의 혁신이 그런 불편함을 없애고 만족스러운 소비자 경험을 만들어내기 시작했을 때, 우리 라이프 스타일은 아예 다른 형태가 될지도 모른다.
아마존에서 필요한 식품을 바로 주문해서 받을 수 있다면 어떨까? 집에서 냉장고가 사라지거나, 작은 크기로 바뀔지 모른다. 물건을 보관해 둘 수납장이나 창고가 필요 없어질 수도 있다. 어쩌면 옷장이 바뀔지도 모른다. 필요하면 주문해서 사용하고, 반납할 수 있게 되니까. 어떤 미니멀리스트들은 마트를 창고처럼 생각하며 사는 것처럼, 아마존을 창고나 냉장고처럼 여기며 살아가는 세상이 올 수도 있다. 그때가 되면, 다른 오프라인 가게들은 어떻게 버티며 살아남아야 할까? 아직 거기까지 고민하기엔 너무 이르다 여길 수도 있지만, 어쩌면 변화는 생각보다 성큼성큼 다가올 수도 있다. 한국에는 아직 아마존이 될 만한 기업이 보이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