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IT 제품을 소개합니다
애플에서 아이폰용 무선 충전 방식 맥세이프를 발표한 날, 새로 나온 아이폰을 놔두고 맥세이프에 대해 화를 내던 친구를 안다. 무선 충전이 얼마나 비효율적이고 에너지 낭비인데, 아이폰처럼 많이 팔리는 기기에서 저걸 기본인 양 지원하면 어떻게 하냐고.
틀린 말은 아니지만 조금 황당했는데, 다른 원고를 쓰다 ‘비트코인과 NFT는 환경의 적이다.’라고 적었다. 그래, 큰 낭비가 문제라면 작은 낭비도 문제지.
생각해보니 스마트 기기가 환경에 그리 좋지는 못하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한때는 모든 것을 디지털화시키면, 종이나 플라스틱을 쓰지 않게 돼서 환경에 좋을 거라 생각한 적도 있었다. 실제론? 늘었다.
2000년 세계 종이 생산량이 3억 1천 톤 정도였는데, 2014년엔 4억 톤을 넘었다. 지금은 거의 5억 톤 정도 쓰지 않을까 싶다. 신문도 잡지도 안 보는 세상에서 종이를 어디에 쓸까 했더니, 온라인 전자 상거래가 발달하면서, 배송용 포장재 수요가 엄청나게 늘었다고 한다.
전자 쓰레기라고 부르는 컴퓨터, 스마트폰, 가전제품의 전자 폐기물도 많이 늘었다. 2020년 국제 전기통신연합(ITU)과 UN 등이 함께 작성한 글로벌 전자폐기물 모니터(The Global E-waste Monitor) 보고서를 보면, 2019년 한 해 버려진 전자폐기물 양이 5270만 톤에 달한다고 한다.
2014년엔 4360만 톤이었는데, 21% 증가했다. 수거되거나 재활용되는 폐기물은 17.4%에 불과하다. 이대로 가면 2030년에는 7280만 톤까지 늘 거라고 한다. 전자 쓰레기는 사실 유해물질 덩어리라서, 빠른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어떤 방법이 있을까? 크게 3가지다. 먼저 폐기물을 재활용하는 방법이 있다. 다음으로 수리하기 쉽게 제품을 만드는 방법이 있고, 마지막으로 오래된 제품을 활용하는 방법이 있다. 여기에 더해 친환경 에너지를 이용한다거나, 생산 과정 자체에서 탄소 중립을 추구한다거나, 아예 제품 사용 자체를 줄이는 생활을 추구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재생 소재 등을 이용해서 제품을 만들면 어떨까? 실제로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발표한 ‘오션 플라스틱 마우스’는 해양 플라스틱 폐기물 재가공 소재로 만들었다. 갤럭시 S22에는 폐어망을 재활용한 소재가 들어갔고, 맥북 에어 같은 노트북은 100% 재활용 알루미늄을 썼다.
한 제품에 대한 ‘탄소 발자국 보고서‘를 발표하기도 한다. 제품을 생산, 소비, 폐기하는 전 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얼마나 발생하는 지를 기록한 보고서다. 앞으로는 물건을 살 때, 이런 내용이 또 다른 판단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산화탄소를 적게 발생시키는 제품이, 전기료를 적게 먹는 제품이기도 하다.
다만 이런 것을 그린 워싱, 그러니까 친환경 흉내를 내는 거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일단 재생 소재 비율이 20% 정도다. IT 제품 특성상 100% 재활용 소재를 쓰는 건 불가능하다. 재생 소재 가격도 비싸서, 특정 고급 제품에만 쓰이기도 한다. 가장 많은 전자 쓰레기를 배출하는 값싼 소형 가전은, 에코 프렌들리 트렌드에서 벗어나도 한참 벗어났다.
그래도 친환경을 내세우는 기기가 늘고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뭐든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는 게 최선이지만, 이왕 살 거라면 지금부터 소개할 친환경 스마트 기기를 고려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그래야 이런 기기들이 더 늘어나고, 더 많이 만들어질 테니까.
요즘 나오는 노트북 컴퓨터는 이용자가 수리해 쓰기 쉽지 않다. 프레임워크 노트북은 이런 흐름에 반기를 들었다. 직접 조립해서 쓸 수 있는 제품으로, 모든 부품이 모듈화 되어 있어서, 필요에 따라 바꿔 쓸 수도, 고장 난 부분만 따로 사서 쓸 수도 있다. 나중에 부품을 바꿔 성능을 업그레이드할 수도 있다. 아직은 이런 ‘수리할 수 있는’ 제품 생태계에 참여하는 기업이 별로 없지만, 점점 늘어나면 좋겠다.
노트북에 프레임워크가 있다면, 스마트폰에는 페어폰이 있다. 이제는 모두 잊은 구글의 모듈형 스마트폰 프로젝트 아라(Ara)와는 다르게, 정말 살 수 있는 조립식 스마트폰이다. 배터리나 디스플레이, 카메라가 고장 나도 필요한 부품만 사서 고쳐 쓰면 된다. 품질 보증 기간은 5년. OS 업데이트 역시 지원한다. 본체 재질 역시 재생 플라스틱을 사용했다.
물론 그렇기에, 최신 스마트폰처럼 매끈하고 아름답진 않다. 두께도 두껍고 225g으로 꽤 무겁다. 가격도 비슷한 성능을 지닌 폰보다 더 비싸다. 단점은 있지만, 이번 페어폰 4는 지난 2와 3에 비해 많이 발전했다. 무엇보다, 좀 더 고치기 쉬워졌다. 제로 웨이스트라는 관점으로 평가했을 때, 페어폰 4만큼 괜찮은 스마트폰은 없다.
삼성 에코 리모컨
프레임워크와 페어폰이 아나바다 개념을 가진 제품이라면, 삼성 에코 리모컨은 개념을 달리한다. CES 2022에서 공개된 이 제품은, 에너지 하베스팅이라 부르는 기술을 이용해, 생활공간에서 흐르는 무선 전파를 수거해서 충전한다. 다르게 말해, 충전이 필요 없는 리모컨이다(USB-C 충전을 지원하긴 한다.).
아직 상용화되지 않았지만, 이 제품에 들어간 충전 모듈을 저렴하게 보급할 수 있다면, 앞으로 우리는 건전지가 필요 없는 가정에서 살 수 있다. 삼성전자만 이런 제품을 개발하는 것도 아니다. 중국 OPPO에선 전기 없는 통신(Zero Power Communication)에 대한 백서를 발표하고, 가까운 미래에 여러 가전제품을 전기 없이 쓸 수 있게 만들겠다고 밝힌 바 있다.
왜 이 제품이 여기에 들어 있지? 하고 생각할 사람이 있을까? 뱅 앤 올룹슨에서 만든 이 스피커는, 작고 예쁘고 다재다능하고 좋은 소리를 들려주며 아주 비싸다. 그리고 아주 오래 쓸 수 있도록 설계됐다.
Cradle to Cradle 인증을 받은 제품으로 알루미늄 프레임부터 배터리, 패브릭, 목재 커버 등을 모두 교체할 수 있다. 크롬캐스트와 애플 에어플레이 2, 구글 어시스턴트를 지원하기에, 쓰고 있는 제품과 호환되는지를 걱정할 필요도 적다.
당신이 똑똑한 한 대의 기기를 추구하는 스타일이라면, 이 스피커는 충분히 고려할만한 옵션이 될 수 있다.
킥스타터에서 펀딩에 성공한 아드리아노는, 구형 스마트 기기를 방범 카메라나 홈 허브로 쓸 수 있게 바꿔주는 스마트 스탠드다. 스마트폰을 집에 있는 스마트 전구나 온도 조절기 같은 스마트홈 기기를 제어하는 장치로 바꿔준달까. 원하면 추가 부품을 구매해 화재경보기 같은 다른 기기로도 쓸 수 있다.
스탠드에 설치된 스마트 기기는 음성, 제스처와 스마트폰 앱으로 조작한다. 모바일 네트워크, 지그비, 와이파이, 블루투스 같은 다양한 방법으로 연결해 쓸 수도 있다. 무엇보다 이 제품은, 버려지는 스마트 기기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다. 남는 스마트폰을 재활용하는 방법을 (나름) 활발하게 연구하고 있는 요즘, 새로운 해결책을 찾았다고 봐도 좋겠다.
조금 가벼운 제품도 얘기해보자. H2O 수압 샤워 라디오는 샤워기에 연결해, 물이 지나가는 힘으로 발전, 라디오를 청취할 수 있는 제품이다. 오래전 자전거에 달려 있던 발전식 전조등을 떠올리면 된다. 당연히 전원에 연결할 필요가 없고, 물만 나오면 계속 쓸 수 있다.
샤워하려고 물을 트는 순간 좋아하는 라디오 채널에서 음악이 흘러나온다. 충전 같은 걸 걱정할 필요도 없다. 욕실에서 음악 듣기 좋아하는 사람에게 딱 맞는 제품이지만, 들으려면 계속 물을 틀어놔야 한다는 단점도.
집에서 간단히 태양광 충전기를 쓸 수는 없을까? 그룹허그의 창문형 태양열 충전기 같은 제품이 있기는 하지만, 용량이 적어서 실용성이 조금 떨어진다. 제네락 태양광 발전기는 가정용으로 나온, 태양광 전기 백업 장치다.
태양광으로 4시간 정도 충전하면, 최대 7일간 가정용 비상 전원으로 쓸 수 있다(일반 전기로도 충전 가능). 용량은 1566WH와 2060WH 두 가지로, 가정용 공구나 의료 기기, 전기 주전자 같은 전기를 많이 먹는 가전제품 사용도 가능하다. 충전된 전기는 최대 1년간 저장된다.
사실 우리나라처럼 전기가 안정적으로 공급되는 곳에선 크게 필요 없지만, 비상용 전기가 필요한 사람은 이런 제품을 한 대 정도 갖춰둬도 좋겠다.
당장 쓸 수 있는 친환경 스마트 제품을 원한다면, 이케아로 달려가자. 슈고는 드물게 예쁘게 나온 건전지 충전기다. 동시에 8개의 건전지를 충전할 수 있으며, AAA와 AA 건전지를 함께 충전할 수도 있다. 아쉽지만 지금은 품절.
구형 노트북 컴퓨터를 가지고 있다면, 최근 발표된 크롬 OS 플렉스를 설치해 쓰는 것도 괜찮다. 구글에서 발표한 무료 OS다. 무척 가벼워서, 구형 컴퓨터에 설치해서 쓰기 좋다. 주로 웹서핑이나 스트리밍 동영상 시청밖에 할 수 없는 게 한계이긴 하지만, 새로운 컴퓨터를 얻은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