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가장 값쌀 마음챙김 시대가 올지도?
2년 전일이다. 코로나 때문에 얼굴을 못 보니 메신저로 안부나 묻던 친구가, 재택근무를 시작하면서 VR 헤드셋을 부쩍 많이 쓰게 됐다고 털어놨다. 매일 밤 VR 명상 앱을 이용해 스트레스를 풀고 있다고.
진짜 명상 앱을 쓰는 거냐 아니면 야동을 보는 거냐 따져 물었지만, 본인은 끝까지 명상 앱을 쓴다고 주장했다. 믿기 어렵지만, 그때는 VR을 이용해 코로나19로 생긴 우울한 마음을 달래는 사람이 꽤 있었다.
이런 것을 가상현실 테라피, 또는 R 멘탈 헬스케어라 부른다. VR 마음 챙김이라 부르기도 한다. 사실 명상 기법은 1970년대부터 널리 알려지긴 했다. 하지만 정신 건강 프로그램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건 2000년대 초반이다. 이전 명상 기법에서 종교적 색채를 지우고, 자기 관리 프로그램으로 만든 게 먹혔다.
헬스케어 트렌드가 병을 고치는 것에서 → 평소에 신체를 관리해 건강하게 살자-라는 방향으로 바뀌기 시작한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정보통신 기술이 발달하고, 세계가 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것도 한몫했다. 이때부터 다양한 영상과 앱을 통해 스스로 정신을 관리하는 이가 늘었다.
명상 기법과 가상현실은 언제쯤 만났을까? VR 기술은 명상보다 심리치료 분야에서 먼저 쓰였다. VR은 본래 특성상, 몰입할 수 있는 특정 환경을 만든다. 이런 특징을 이용해 판타지 세상을 여행하는 게임이나, 장비를 시뮬레이션해 훈련하는 용도로 주로 쓰인다. 가상 체험이라고 할까.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치료에 쓰이는 지속 노출 치료는 이런 가상 환경이 필요하다. 트라우마가 생기게 된 상황을 서서히, 반복해서 접해야 하는 치료라 그렇다. 마침 1990년대 중반 VR 붐이 불었고, VR 기술을 노출 치료에 써보려는 시도로 이어졌다. 결과는 꽤 좋았고, 실제 치료 기법이 됐다.
현재 VR은 고소공포증, 공황장애 같은 다양한 증상 치료에 효과가 있다고 인정받았다. 가상현실 기술이 그저 몰입형 환경을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통제된 안전한 환경을 구성할 수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대표적 VR 노출 치료 프로그램은 ‘브레이브마인드(Bravemind)’다. 가상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 환경을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공식 승인된 치료 도구다. 100여 개 이상의 대학과 군대, 보훈 병원 등에서 사용되고 있다.
영국 옥스퍼드 VR(Oxford VR)은 게임화된 VR 치료 방법을 만들고 있다. 2020년 영국 국민 보건 서비스(NHS)가 채택하기도 했다. 우울증이나 강박장애 치료법도 개발하고 있다고 한다.
VR로 심리치료가 된다면 평상시 스트레스를 관리할 수는 없을까? 심리치료와 마음 챙김은 많이 닮았다는 얘기를 듣는다. 그렇다면 VR이 제공하는 몰입 경험이 명상에 도움 되진 않을까? 2010년대 중반 다시 VR 붐이 일어나면서, 이런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이를 기반으로 몇몇 VR 명상 앱이 만들어졌다. 이때만 해도 큰 반향은 없었다. 애초에 VR 헤드셋을 가진 이가 드문 탓이다.
보급이 늦어지리라 여겼는데, 코로나19로 인해 상황이 바뀌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계속되면서, 코로나 블루로 불리는 우울한 기분이 큰 문제가 됐다. 문제가 생겼는데 상황을 바꿀 수도 없고, 병원을 마음 편히 방문할 수도 없다. 이때 VR 기술이 정신건강 관리를 위한 대안으로 떠올랐다.
쓰는 방법은 생각보다 다양하다.
* 스웨덴 후딩에 시에선 노인과 장애인을 위한 가상현실 시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VR을 이용해 요양원 등에 있는 참가자의 정신건강을 돕고, 그들을 돌보기를 원한다. 시에선 전에 MMORPG 게임인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이용해 자폐증을 앓는 시민과 의사소통을 시도한 적이 있고, 나름대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뒀다고 한다. 이번 테스트 프로그램에선 VR을 이용해 요양원 등에 있는 참가자의 정신 건강을 돕고, 그들을 돌보기를 원한다.
* 버티(Virti) VR 플랫폼은 의료진의 정신건강을 위해 쓰인다. 응급 의료 현장에서 부딪히게 되는 불안과 스트레스를, 증거 기반 평가 기능이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활용해 줄여준다.
* 스코틀랜드의 가상현실 사회적 기업 비아라마(Viarama)는 종말기 치료를 받는 노인에게, VR 헤드셋과 구글 어스 앱을 이용해 환자가 원하는 장소로 데려가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 마인드VR(MyndVR)이나 렌데버(Rendever) 역시 노인들의 사회적 고립감을 이겨내기 위한 VR 프로그램이다.
가장 많이 쓰이는 건 VR 명상 앱이다. 명상 VR 가이드(Guided Meditation VR)와 트립(TRIPP) 앱이 유명하다. 이 앱을 이용하면 아름다운 환경에 앉아 호흡에 집중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집중력 향상과 더불어 불안감 및 스트레스 극복이라는, 명상이 가진 원래 효과를 얻게 된다.
V.R. ‘Reminiscence Therapy’ Lets Seniors Relive the Past
VR 명상이 정말 효과가 있을까? 호주 멜버른 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효과가 있다고 한다. VR 명상 앱이 일반 명상보다 더 낫다는 주장도 있다. 가상현실 환경에서는 개인적이고 감각적인 경험이 가능해, 더 깊이 몰입할 수 있다는 말이다. 때론 수년간 훈련한 사람보다 깊게 명상에 빠져들기도 한다고 한다.
다만 경험이 사람마다 달라, 모두에게 효과가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VR 경험이 뇌와 어떻게 연결이 되는지도 더 연구해야 한다. VR 심리치료가 여러 공포증에 효과가 있다는 건 인정받고 있지만, 표준 치료 방법은 아니다. 무엇보다, VR 명상 앱은 아직 ‘쓰면 좋다’가 아니라 ‘쓰고 싶다’ 단계까지 올라가지 못했다. VR 장비가 더디게 보급되는 부분도 걸린다.
앞으로 더 많이 쓰일 가능성은 있다. 코로나 블루가 아니어도 우울, 불안, 수면 및 식이장애 같은 증세로 병원을 찾는 사람은 예전부터 늘고 있었다. 가격과 성능이 적당한 VR기기도 나왔다. VR 명상 앱은 내가 원하는 시간에, 내가 선택한 환경에서 안전하게 마음 챙김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런 장점이 알려지고 제품 가격이 내려가면, 스트레스가 많은 사람은 한 번쯤-하고 돌아볼지도 모른다.
이때쯤 되면 가상현실 명상은, 가장 값싸게 쉬는 방법이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