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상상력, 3류만화 3CF
* 이 글은 월간 민족예술, 2002년 6월호에 실었던 글입니다. 블로그 글을 정리하다가 찾았습니다. 이제 와서 다시 생각해 보니, 이들의 했던 이야기는 지난 시대의 ‘우화’라고 불리는 이야기들과 비슷한 면이 있네요. 이에 대해선 언젠가 기회가 닿으면 다시 언급하기로 하겠습니다.
인간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비싼 부속품일 것이다
– 일류생산지, 불친절한놈 in 3cf
1. 인간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비싼 부속품일 것이다… 이런 말을 듣는 순간, 기분이 어떠세요? 굳이 마르크스 할아버지의 이야기 등등을 떠올리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렇게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니까요. 이 문장은 ‘보노보노의 3류 만화’라는, 일명 연습장 만화라고도 불리는 사이트에 실린 만화의 한 켠에 실려 있는 글이랍니다.
보노보노, LDJ, Elsboy, 닥터고딕, teamcscw등으로 이뤄진 고등학생 만화 창작 집단(…이라고 하기엔 좀 그렇지만)의 이름이 바로 3류만화패밀리, 3CF입니다. 어쩌면 인터넷에서 가장 특이하면서도 가장 특이하지 않은 만화를 창작하는 집단일지도 모르는.
이들의 사이트를 처음 들어가 본 순간 떠올랐던 것은, ‘스틱맨의 죽음’이라는 사이트였습니다. 인터넷 초기에 만들어진 플래쉬 게임으로, 작년에 유행했던 ‘졸라맨’이라는 플래쉬 캐릭터의 원조격인 사이트였죠. 졸라맨처럼 생긴 캐릭터들이 나와서 서로 쏘아 죽이는, 그러면서 헐리우드 영화를 본뜬 액션을 보여주는 플래쉬 게임이었는데, 검은 배경을 바탕으로 총에 맞은 졸라맨들에게서 흐르는 피가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영화 ‘매트릭스’ + ‘저수지의 개들’ 분위기라고나 할까요. 과도한 폭력성과 그것을 코미디로 만들어버리는 기호화된 캐릭터들. 그것은 3류만화 사이트를 봤을 때 처음 느끼는 기분과 같습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스틱맨의 죽음’과 ‘졸라맨’은 아무런 생각 없이 즐기는, 한 번 웃으면 그만인 작품이지만, 3류만화는 무엇인가 가슴 끝을 아리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3류대 가는 것보다 죽는게 더 낫겠지?
–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보노 in 3cf
2. 이들이 특이한 이유는 기존의 룰을 한참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3류만화의 외형적 특징은 앞서 말했듯 연습장 만화란 사실입니다. 보면 알겠지만, 말 그대로 연습장에 연필로 쓱쓱 그린, 많은 이들이 중고등학교때 한 번쯤은 그려봤을 그런 스타일의 만화입니다. 대충 그린 네모칸, 손으로 쓴 대사, 스크린톤의 도움없이 오로지 연필로 거칠게 표현한 특수-_- 효과.
그림체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다른 기성 만화에서 많이 봤을 만화적 표현과 구도들. 한마디로.. 음.. 기존의 시선으로 본다면, 습작품도 못되는 엉터리죠. –;
그렇다면 내용이라도 좋은가?라고 누가 물으면, 절대 그렇지 못한 만화라고 할 겁니다. 정통윤이든 영등위든 기윤실이든, 검열을 소리높여 부르짖는 이들이 보면 이건 ‘등급 보류’도 모자라 ‘구속’ 시키려 들지도 모릅니다(빨간 마후라냐…).
피가 난무하고, 몸이 잘리고 분해되고, 선생님들을 패륜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당연하며, 자식이 부모에게 ‘좃같네’라고 당당히 얘기하니까요(물론, 만화도 보기 전에 위의 글로 지래짐작하지는 않기를 바랍니다.). 음, 아마 검열 반대를 외치는 분들도 슬그머니 외면해 버릴지도 모르겠네요. 포르노 사이트 문제에 대해서도 어물쩍 회피해 버리는 것처럼.
군인01 : 왜 8명이 목숨을 걸고 1명을 구하러 가죠?
소대장 : 그는 서울대 법대 수석 입학, 수석 졸업인 1등이기 때문이다.
– 라이언 일등 구하기, 보노 in 3cf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특이하지 않은 이유는, 이들의 만화에 드러나는 폭력은 결코 색다르지 않은, 우리 주변에서 평범하게 벌어지는 일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학력 위주의 사회, 가정에서의 권위주의, 학벌에 대한 집착, 학생에 대한 폭력, 학생끼리의 폭력, 자신보다 못난이들에 대한 폭력 등, 과도하게 표현된 면은 있지만, 그들의 만화에 등장하는 폭력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자행하는, 일상적으로 당하고 있는 폭력입니다.
다들 살아오면서 한 번쯤은 느껴봤을 타인에 대한 적개심, 절대적인 분노. 내가 그를 미워하는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뭔가 이런 것은 아니라고 느꼈던, 그리고 이유 없이 당했었던 지난 시절 폭력의 상처에 대한 연민. 분노와 슬픔이라고 부를 수 있는 추억들.
… 그리고 그런 것들이 3류 만화를 읽으면서, 우리의 가슴이 아리게 되는 이유일지도 모릅니다.
3류만화는 절대로 아름답지 않습니다. 현실이 그러하듯, 어설픈 희망이나 해피엔딩 따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스노우캣’같은 인터넷 만화에서 보여주는 가벼운 나르시즘이나 룸펜 의식도, 일상을 그린 만화에서 흔히 드러나는 ‘따뜻함’이나 주위 사람에 대한 신뢰, 그래도 세상은 살만한 것이여, 따위의 이야기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들은 철저하게 반항합니다. 세상에 합리성을 부여하기 보다는 비합리적인 행동을 통해 일탈하기를 꿈꿉니다.
…그것이 연습장 만화로서의 3류 만화가 가지는 장점이자, 최대의 미덕입니다.
…. 이혼도, 판자촌도, 파출부도, 가난도, 분노도, 힘없는 걸음걸이조차도 마음대로 그릴 수 없었던 그 시절에, 나는 그래도 조금이라도 분위기를 남기기 위해 애쓰고 애쓰다가 다운되어 버렸다……원고는 이미 ‘우향우’를 하였고 이제 와서 다시 그리기엔 시대가 변하였다…
4. 작가 황미나가 ‘우리는 길 잃은 작은 새를 보았다’란 자신의 만화에 대해 한 말입니다. 언젠가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읽게 되어 마음 속에 담아두고 있던 이 말을, 다시 꺼낼 곳이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만화란 아직까지 그런 장르입니다. 개나 소나 우습게 보는, 동네북 정도로 여기는. 청소년들이 뭐 하나 잘못했다 싶으면 일단 그 원인으로 때려잡고 보는. 3류만화도 어쩌면 그 정도로 여겨지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아마 인터넷이 아니었다면… 이들의 만화는, 기껏해야 친구들끼리 돌려보다가 선생님들에게 뺏겨버릴, 그리고 한 번 신나게 맞게될 그런 만화에 지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행히 그들은 기존의 매체에서 거의 다루지 않습니다. 아니, 다루기엔 지나치게 위험하다고 생각되어질 것입니다. ‘딴지일보’정도의 인터넷 잡지는 이들에겐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엽기’라는 단어가 한창 유행일 때도 3CF에게 라이트가 비춰진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들은 아직까지 살아남아 있고, 통제되지 않은 신선하고 기발한 상상력을 가진 ‘작가’들로 성장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리고 나는 믿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3cf가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해피엔딩일지도 모른다고.
관련링크_보노보노의 3류 만화(현재 페이지 사라짐)
P.S. 23년 만에 찾은 글인데, 이 분들 이제 다 컸을텐데, 지금 뭘하고 사나 갑자기 궁금해 지네요. 왜인지 이때나 지금이나, 많이 바뀐 것 같으면서도 그대로인 것도 같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