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산업에 영향을 끼친 영화 베스트 3을 소개합니다
얼마 전 오픈 AI에서 GPT-4o를 공개했습니다. 반응 속도가 빠르면서, 마치 사람처럼 감정을 가지고 말하는 AI입니다. 오픈 AI 대표 샘 올트먼은 뜬금없어 보이는 트윗을 하나 올립니다. 'her'라고. 마치 영화 그녀(Her)의 한 장면 같다고 말하는 거겠죠. 그 때문에 지금 논란에 휩싸였습니다만-
사실 이런 반응은, 지극히 평범한(?) 반응에 가깝습니다. 많은 새로운 기술이 태어나게 된 배경에는, 거기에 영감을 준 영화가 있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생각난, 전에 썼던 글을 올려봅니다.
사람은 외부 정보에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영화나 드라마, 소설처럼 이야기를 전달하는 매체는, 우리가 무엇을 좋아하거나 싫어하게 만들기 하죠. 욕망을 자극해 그럴듯한 꿈을 꾸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영상 속 어떤 장면을 한 번쯤 따라 한 적, 있으시죠? 영상 속 인물에게 반하거나, 어떤 것을 갖고 싶게 만들기도 하죠.
기술도 다르지 않습니다. 기술이 좋아져서 그럴듯한 영상이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반대로 영화나 드라마에 영향을 받아서, 아이디어를 얻어서 만들어진 제품도 많습니다. 어떤 영화가 있는지, 한번 보실까요?
소개할 첫 영화는 고전 명작 메트로폴리스(Metropolis)입니다. 지하 세계에서 기계를 움직이는 노동을 하던 노동자들이 반란을 일으키는 영화죠. 최초의 장편 SF 영화이기도 합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기술보다 당대 건축 양식에 더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합니다.
이 영화를 빼놓을 수 없는 건, 영화에서 매력적인 여성형 로봇/인조인간을 선보였기 때문입니다. 등장인물 마리아의 이름을 따서 불렸던 마시넨멘쉬(Maschinenmensch)라는 이 로봇은, 스타워즈에 등장하는 C-3PO 디자인에 영향을 준 걸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그만큼 기억에 남을 캐릭터였죠.
메트로폴리스 전에도 인공 생명체나 자동인형, 로봇을 다룬 영화는 여럿 있었습니다. 다만 그냥 괴물이나 깡통 로봇, 사람이 인형인 척 연기하는 캐릭터였습니다. 반면 마시넨멘쉬는 지금 봐도 멋지고, 매력적입니다.
그래서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산업혁명의 꽃이었던 벨 에포크를 지나, 1차 세계대전과 대공황으로 절망에 빠졌던 인류가, 로봇에 대한 꿈을 꾸게 됩니다.
1928년, 최초의 영국 로봇(?) 에릭(Eric)이 만들어지고, 모델 엔지니어 협회 전시회(the Exhibition of the Society of Model Engineers)에서 4분간 연설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지금 보면 그저 전기 모터와 자석으로 움직이는 로봇 인형이지만요.
아무튼 이때부터 골프 연습 로봇, 달리기 연습 로봇, 소설 쓰는 로봇, 안내 로봇 등 온갖 로봇이 붙은 인간형 전기 제품이 등장합니다. 1930년대에 말이죠.
영화 메트로폴리스가 이런 붐을 일으켰다!라고 말하긴 근거가 부족하지만, 영화 개봉 이후 로봇이라는 이름이 붙은 전기 제품이 속속 등장한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자동항법장치가 달린 비행기조차 로봇 비행기라 불렀을 정도로요.
이후 로봇이란 개념은 사회에 확실하게 정착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인간 같지 않은 딱딱한, 시키는 것만 하는 사람에게 ‘로봇 같은’이란 수식어를 달아주게 됩니다.
재미있게도, 최초의 산업용 로봇인 ‘유니메이트’는 발명가들이 이걸 로봇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답니다. 그냥 자동화된 기계라고 여겼는데, 주변에서 하도 ‘로봇이네요’ ‘그거 로봇이죠?’ 이러는 바람에 그냥 로봇이라고 하기로 했다고.
메트로폴리스 이전에, 마술사이자 영화감독이었던 조르주 멜리에스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단순히 움직이는 사진에 불과했던 영화 장르를, 이야기를 담는 그릇으로 만든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필름을 편집해 마술 같은 효과를 연출했는데, 그걸 통해 이야기가 담긴, 우리가 아는 ‘영화’를 만들게 됩니다. 여러 가지 영화적 효과도 많이 고안했고요. 우리가 영화를 통해 꿈꿀 수 있는 건, 모두 멜리에스 덕분입니다.
아, 달세계 여행(1902)도 빼놓을 수 없겠네요. 로켓을 타고 달로 날아간다는 아이디어를 처음 선보인 영화거든요. 자동인형이 나오는 영화도 찍긴 했습니다.
미래를 미리 보여준 영화라고 하면 빠질 수 없는 영화가 여기 또 있습니다. 바로 스페이스 오디세이 2001(space odyssey 2001)입니다. 목성 조사를 떠난 우주인들이 컴퓨터에 살해당하는(?) 영화입니다.
삼성과 애플이 벌인 태블릿 PC 디자인 특허 소송 전에서, 삼성이 아이패드 같은 태블릿 PC 디자인은 예전부터 있었다!라고 주장하면서 이 영화에 등장하는 ‘뉴스패드’를 거론한 적도 있었죠.
이런 이야기를 들을 만큼, 영화에는 지금 쓰는 것과 비슷한 기기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태블릿 PC, 음성 인식 AI 컴퓨터, 화상통화 등이 그렇습니다. 아, 이 영화는 1968년 개봉한 영화고, 당시엔 컴퓨터 그래픽이 없던 시절이란 걸 생각해 주세요.
좀 지루한 영화지만, 영화가 개봉했을 때는 큰 인기를 얻었다고 합니다. 1968년 북미 영화 매출 1위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1957년 소련이 최초의 인공위성을 발사한 것에 놀라, 미국이 우주 개발에 진심이던 있던 시절이거든요.
사회적으로도 이런저런 일이 많았습니다. 68 혁명이 일어난 때이기도 하고, 베트남 반전 운동이 펼쳐지던 때이며, 마틴 루서 킹 목사와 로버트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된 해이기도 합니다. 바로 전 해인 1967년에는 아폴로 1호 화재로 우주비행사 세 명이 사망하는 일도 있었고요.
이런 상황인 만큼, 영화 속 묘사도 서투르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천문학자, 항공 우주 엔지니어, 전 NASA 직원을 고용해 영화 속 기술에 대한 컨설팅을 받았다고 합니다. 영화 속 플랫 컴퓨터 모니터, 터치스크린 태블릿, 로봇, 인공 지능 컴퓨터(HAL 9000) 등은 이런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나름 정밀할 수밖에 없었고, 거꾸로 조지 루커스, 스티븐 스필버그, 크리스토퍼 놀런 같은 (당시에) 자라나는 세대에게 큰 영감을 줬다고 합니다. 일반 대중에게 AI 컴퓨터, 컴퓨터 비전(사람 입술을 읽습니다.) 같은 개념을 선보이기도 했고요.
당연히 스페이스 오디세이 2001, 특히 인공 지능 컴퓨터 HAL은 21세기 기술에 많은 영감을 줬습니다. AI 제품과 어떻게 소통하는지, 일반적인 모습을 제시했다고나 할까요.
한때 Siri에게 영화 속 대사인 “open the pod bay doors”라고 요청하면, 역시 영화 속 대사인 “I’m sorry, I can’t do that.”이라고 대답하는 기믹이 탑재됐을 정도입니다.
애플에서 만든 MP3 플레이어 아이팟(iPod)도 저 대사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만들어진 이름입니다(iMac + pod). 첫 번째 아이팟 출시연도가 2001년이라서 떠올랐다고.
… 진짜 영향력이라면, 당시 수많은 소년소녀 가슴에 우주 과학을 해보고 싶다는 꿈을 던진 것이겠지만요.
+ 스타트렉 (Star Trek, 1966) :
사실 기술 산업에 영향을 끼친 영상으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스타트렉입니다. 초인기 프랜차이즈 영화 스타워즈보다 IT 산업에 끼친 영향은 더 큽니다. 무엇보다 세계 첫 휴대폰을 만든 마틴 쿠퍼가 스스로 밝혔습니다. 스타트렉에 나오는 커뮤니케이터란 장치에 영감을 얻어서 만들게 됐다고. 다만 TV 드라마라서, 이 글에선 다루지 않을 뿐입니다. (눈물 뚝뚝)
+ 그녀(her, 2013) :
스페이스 오디세이 2001이 영감을 줬다면, 영화 ‘그녀’는 보이스 어시스턴트가 어떻게 작동하고, 사람과 관계를 맺는 방법에 대해 직접적인 영향을 줬습니다. 정말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이런 AI 프로그램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니까요.
애플 Siri나 아마존 알렉사가 영화 ‘그녀’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다고 말하는 건 아닙니다. 그건 거짓말이죠. 이들은 이미 영화 찍기 이전부터 개발되고 있었으니까요. 영화 대본을 쓴 스파이크 존즈는 2000년대 초, 인공지능과 채팅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웹사이트에 접속했다가, 영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이후 나오는 AI 스피커들은, 상호작용(사용자 인터페이스) 측면에서 영화 ‘그녀’에게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영화에선 주로 음성으로 기기를 제어하고, 디스플레이가 달린 장치가 보조 기기입니다. 바깥에선 무선 이어폰으로 이야기를 주고받고요.
흥미롭게도 애플 에어팟은 2016년, 네이버 클로바 같은 AI 스피커는 2017년에 출시됐습니다. 덕분에 이 영화를 지금 보면, 사실 SF 영화라고 생각 안 하실 겁니다. 그냥 요즘 러브 스토리 같아요. 그리고 이 영화는, 지금 우리 삶의 모습을 정확하게 보여줍니다.
… 많은 사람과 함께 있을 때는 고독하다고 느끼지만, 스마트 폰을 들고 혼자 있을 때 오히려 연결됐다고 느끼는 시대를.
많은 사람과 함께 있을 때는 고독하다고 느끼지만,
스마트 폰을 들고 혼자 있을 때 오히려 연결됐다고 느끼는 시대
마지막으로, 마이너리티 리포트(Minority Report)가 있습니다. 범죄 예측 시스템에서 근무하는 경찰이 오히려 미래 살인자로 낙인찍히면서, 뭐가 잘못된 건지 조사하는 영화입니다. 21세기 들어와 기술 산업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영화라고 해도 좋을 겁니다. 수많은 스타트업이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보여준 기술을 실현하고 싶었거든요.
어떤 기술일까요?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자율주행차, 마이크로 로봇, 전자 종이, 음성 인식 사물인터넷, 제트팩, 홀로그램, 범죄 예측 시스템, 개인화된 광고, 홍채 인식 등 정말 다양합니다. 오죽하면 아직 ‘마이너리티 리포트 스타일’이란 말로 자기 기술을 설명하는 회사가 많을까요.
이 영화, 2002년에 개봉했습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곧 올듯한’ 정말 그럴듯한 현실을 창조했죠. 이게 가능했던 건,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스페이스 오디세이 2001’에서 했던 것처럼, 전문가들을 초청해서 가능한 미래를 상상하도록 요청했기 때문입니다.
영화 속 많은 기술은 아이디어 회의가 처음 소집된 2000년 당시 이미 존재한, 초기 기술적 성취를 거둔 것들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그럴듯한 상상이 아니었단 말이죠. 스필버그 감독 자신이, 영화에서 표현된 기술이 언젠가 모두 실현되기를 바라기도 했고요.
여러 기술 중 가장 많은 관심을 받았던 건 뭘까요? 바로 제스처 기반 유저 인터페이스입니다. 이제는 영화 아이언맨을 통해 너무나 유명해진, 입체 그래픽과 제스처를 이용한 인터페이스 말입니다. 관심이 많았다는 건 관련 기술 개발이 많이 이뤄졌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MS가 2009년 선보인 엑스박스 키넥트가 있습니다. Xbox 게임기나 PC에서, 음성과 동작을 인식할 수 있게 해 주죠. 이때만 해도 비슷한 동작 인식 기기가 앞다퉈 출시 됐습니다. 2010년에 소니에서 플레이스테이션 무브라는 모션 게임 컨트롤러가, 2013년에는 립 모션(Leap Motion)이란 제스처 인식 장치가 나왔죠. 닌텐도 위(Wii)는 말할 필요도 없겠죠?
아쉽게도 성공한 제품은 많지 않습니다. 아이디어는 좋았지만, 실제로 ‘자연스럽게’ 구현하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준비가 필요했습니다. 일단 양팔을 자유롭게 움직일만한 자유로운 공간, 필요한 것만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는 센서와 소프트웨어, 움직임과 일치할 만한 대형 디스플레이 등이 필요했죠.
아직도 이런 인터페이스를 쓰기엔 기술이 부족합니다. 오히려 닌텐도 위처럼, 간략하게 이용한 제품이 성공했습니다. 나중에 여기서 발달한 기술은 스마트폰 관련 기술과 맞물려, VR 헤드셋 개발에 도움을 주게 되지만요.
+ 레디 플레이어 원(Ready Player One, 2018) :
영화로 만들어지기 전에도, 페이스북(현재 메타) CEO 마크 저커버그를 비롯해 VR 헤드셋 오큘러스 퀘스트를 만드는 팀은, 소설 ‘레디 플레이어 원’의 열렬한 팬이었습니다. 모든 신입 사원은 이 책을 한 권씩 받았죠. 메타버스라는 말이 유행이 된 이후,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은 메타버스를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사례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아쉽게도 기술 제품에 영향을 받았다기보다는, 기술 제품이 발전할 방향을 보여주는 정도에 그쳤지만요.
문화와 기술은 생각보다 긴밀하게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상상력이 없던 기술을 만들 힘이 되고, 그렇게 만들어진 기술이 다시 상상력의 등을 떠밀죠. 문화적으론 어떨까요? 댓글로 좋아요라고 적어주시면, 다음 글에선 블레이드 런너나 트루먼쇼 같은 영화가 거꾸로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 지를 한번 풀어볼까 합니다. 아니면 … 울면서 다른 글을 준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