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라스베이거스를 먹어 치운 해(The Year AI Ate Vegas)’
테크 미디어 와이어드에서, CES 2024를 사진으로 정리한 기사에 붙인 제목이다. 먹어 치웠다고 표현할 만큼, 올해는 CES 행사장 거의 모든 곳에서 인공지능이란 단어를 만날 수 있었다. AI 베개, AI 매트리스, AI 의자, AI 냉장고, AI 건조기, AI 램프, AI 그릴, AI 바비큐 기계, AI 에어프라이어, AI 새 모이 상자, AI 망원경, AI 청진기, AI 백 팩 …
농담처럼 들리겠지만, 모두 실제로 CES 2024에서 만날 수 있었던 제품이다.
모두 인공지능 기술을 쓰고 있다고 말하지만, 같은 기술을 여러 제품에 도입한 것은 아니다. 소리를 인식하거나, 상황을 판단하거나, 이미지를 인식하거나, 추론을 통해 답을 내놓는 것과 같은 서로 다른 AI 기술을 필요에 맞게 가져다 쓰고 있다. 얼핏 보면 새로워 보이지만, 몇 년 전부터 쓰던 기술이 대부분이다. 생성 AI가 인기를 얻기 전부터, 인공지능은 느리지만 꾸준하게, 인간이 접하는 거의 모든 걸 바꾸고 있었다.
반면 몇몇 제품은 AI와 큰 상관이 없는데도 AI를 내세우고 있기도 했다. 그만큼 인공지능이 큰 관심을 받는 탓이다. 예전 빅데이터나 딥러닝, 메타버스처럼 시시때때로 등장하는 ‘마법의 키워드’가 됐달까. 이렇게 진짜와 허풍이 뒤섞인 상황에서, 진짜 트렌드를 반영하고 있는 세 가지 제품을 CES 2024 행사장에서 골라봤다. 이 제품들을 통해 AI가 어떻게 세상을 바꾸고 있는지 확인해 보자.
이번 CES 2024에서 가장 화제가 된 제품을 꼽으라면, 이 제품을 빼놓을 수 없다. 신생 기업 래빗에서 만든 래빗 R1이다. 간단히 말하면 AI 워키토키로, 비서에게 말하듯 래빗 R1에 명령을 내리면 지시받은 업무를 처리한다. 예를 들어 ‘우버에서 차를 불러줘’라고 말하면 래빗 R1이 우버에 접속해 차량을 검색하고 부른다. 그 밖에 호텔 예약을 하거나, 온라인 쇼핑 등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왜 중요한가 :
2023년부터 ‘레이밴 메타 스마트 안경’이나 ‘AI 핀’처럼 새로운 카테고리의 AI 장치가 나오기 시작했다. 음성을 통해 앱에서 하던 일을 처리하는, 디스플레이 없는 스마트폰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왜 이런 기기가 필요할까?
전 MS CEO 빌 게이츠가 말한 바에 따르면 이렇다. AI가 발달하면 컴퓨터 사용 방법이 완전히 달라진다. “앞으로는 일상적인 언어로 하고 싶은 일을 디바이스에 대고 말하기만 하면 된다.”
어떤 AI 기술이 쓰였나 :
사람 대신 일을 처리하기 위해 쓰이는 핵심 기술은 두 가지다. 하나는 자연어 처리 기술(Natural Language Processing, NLP)로, 사람이 하는 말을 컴퓨터 같은 기계가 이해하고, 해석하며, 대답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다른 하나는 대형 행동 모델(Large Action Model, LAM)이다. 앱을 이용하는 사용자의 행동을 학습해, 이용자의 명령에 따라 이용자가 하던 행동을 대신할 수 있는 AI 모델이다.
포인트 :
대화하듯 자연스럽게 제품을 사용할 수 있는 내추럴 사용자 인터페이스(Natural User Interface, NUI)를 갖춘 AI 에이전트는 널리 보급될 전망이다. 포드, GM, 벤츠 같은 주요 모빌리티 회사는 챗GPT를 이용한 음성 대화를 차량 시스템에 포함하기로 했다.
다만 현재 기술로 불편함 없이 사람처럼 대화할 수 있는지는 검증되지 않았다. 이용자의 명령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고 제대로 실행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볼리는 AI 집사 로봇이다. 지난 2020년 소개한 제품을 개량한 것으로, 공처럼 생겨서 이름이 볼리다. 본체에 장착된 바퀴로 혼자서 집안을 돌아다니며, 이용자가 음성으로 지시한 명령을 실행한다. 다양한 가전제품을 직접 제어할 수도 있고, 프로젝터를 내장해 필요한 정보나 영상 콘텐츠를 보여주기도 한다. 반려동물의 상태를 확인하고 먹이를 주거나 영상을 틀어서 같이 놀아줄 수도 있다.
왜 중요한가 :
가전제품에 컴퓨터가 탑재되면서 스마트하게 변했고, 이젠 AI가 탑재되면서 점차 가전형 로봇으로 변하고 있다. 볼리는 사실상 ‘로봇 청소기처럼 움직이는 AI 스피커 + 빔프로젝터’나 마찬가지다. AI와 가전제품이 만나면 어떤 변화를 만들 수 있는지를 간략하게 보여준다. 소형화된 생성 AI, 인터넷 연결 없이 쓸 수 있는 온디바이스 AI, 지능형 로봇 같은 주요 기술 트렌드를 한 몸에 담고 있는 제품이기도 하다.
어떤 AI 기술이 쓰였나 :
볼리는 한 대의 로봇에 자연어 처리 기능을 비롯해, 사람과 사물을 인식할 수 있는 비전 AI, LiDAR를 이용한 자율 주행, 삼성 스마트싱스와 연동한 스마트 홈 제어 기술 등이 다 들어가 있다. 소형화된 생성 AI 삼성 가우스(Samsung Gauss)가 내장되어 있어서, 이런 다양한 기능들을 제어한다고 알려졌다.
포인트 :
생성 AI를 소형화해서(small Large Language Model, sLLM), 온디바이스로 탑재하는 건 올해 핵심 AI 개발 흐름 중 하나다. 인터넷 연결이 필요 없어서 반응이 빠르고, 개인정보 침해 가능성을 줄여줘서 그렇다. 애플도 아이폰에 온디바이스 생성 AI 탑재를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로봇에게 동작을 학습시키고 제어하는 로봇 AI도 곧 주요 트렌드로 떠오를 것으로 예상한다.
CES 2024에는 4,300여 개 회사가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 하드웨어를 내세우는 회사는 많지만, 소프트웨어를 내세우는 회사는 드물다. 스태그웰은 드문 회사 가운데 한 곳이다. 이번에는 선보인 스마트에셋은 마케팅과 광고 캠페인을 위한 AI 도구로, 고객의 광고 콘텐츠를 분석하고 향후 캠페인을 개선할 수 있도록 돕는다.
왜 중요한가 :
2023년 챗GPT 같은 생성 AI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인기는 높았지만, 막상 실제로 사용하려고 하면 막막하게 여겨질 때가 많다. 그럴듯하지만 잘못된 글을 작성하거나, 평균적이고 무난한 글만 작성하며, 계산 능력이 매우 떨어지기 때문이다. 한글로는 좋은 대답을 잘 못한다는 한계도 있다. 스마트에셋은 여러 기업이 생성 AI의 한계를 어떻게 극복하고, 누구나 쓸 수 있는 제품으로 만들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한 가지 사례다.
어떤 AI 기술이 쓰였나 :
스마트에셋은 ‘프라이빗 챗GPT’라 부르는 기술을 사용한다. 검색 증강 생성(Retrieval Augmented Generation, RAG)이라 부르는 기술에 붙인 다른 이름이다.
이미 훈련된 AI 모델에 고객이 가진 데이터를 불러와 고객에게 맞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기술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요즘 여러 기업에서 많이 쓰는 파인튜닝과 비슷해 보이지만, 파인튜닝은 훈련된 모델에 고객이 가진 데이터를 추가로 학습시키는 기술이라 서로 다르다.
지금까지 CES 2024에서 선보인 제품에 담긴 AI 기술 트렌드는 다음과 같다.
인텔리전스 기기 : 기존 AI 기술에 덧붙여 자연스러운 대화형 인터페이스와 이를 지원하는 기기가 떠오르고 있다.
로봇 AI : 생성 AI를 소형화시켜 로봇을 비롯한 다양한 디바이스에 내장하려고 하고 있다.
챗GPT 실용화 : 생성 AI를 개선해 실제로 쓸 수 있는 제품으로 만들고 있다.
여기에 더해 글과 이미지, 영상 같은 다양한 형태의 데이터를 동시에 처리하는 멀티 모달 기술이 더해지고 있는 것이, CES 2024에서 확인할 수 있는 변화다.
* 2024년 1월 중소기업 CEO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