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겐 선택 사항이 누군가에겐 필수 사항이 된다
1. 예전에 롤리 키보드1을 잠깐 써본 적이 있었다. 기대가 컸던 탓일까. 독특한 것은 좋았는데 기본이 부족했다. 키보드로 쓰기엔 꽤 모자랐다는 말이다. 글쓰기 불편했던 키 배치는 물론이고, 롤리 키보드의 독특한 스타일 덕분에 자꾸 손가락과 키보드 위에 있는 막대기가 부딪혔다. 조심하면 되긴 하지만, 그런 일이 자꾸 생긴다는 것 자체가 사람에게는 스트레스.
이번에 롤리 키보드2를 구입하기 전에, 친구에게 2주 정도 미리 빌려 썼던 것도 그런 이유다. 키보드는 사람 몸에 닿는 물건이라, 신중에 신중을 기해도 모자라지 않다. 여기저기 들고 다녀야 하는 물건이라면 더더욱. 그런데 이 물건, 2주간 쓰다 보니 더 고민하게 만든다. 키보드로서의 만족감은 떨어지는데, 물건 자체로서의 매력은 상당했기 때문이다.
결국, 롤리 키보드2를 구입했다. 내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나는 조금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무게에 집착한다.
2. 아마 2년전 겨울이었을 거다. 갑자기 오른팔을 위로 들어 올릴 수가 없었다. 마비된 것처럼 감각도 둔해졌다(지금도 오른쪽 검지는 감각이 없다.). 가만히만 있어도 아팠다. 글을 쓰는 게 일이니 키보드를 쳐야 하는데, 10분 치면 진이 빠져서 더 칠 수가 없었다. 매일 같이 병원을 다녀봤지만 좀 괜찮아지나 해도 그때뿐, 두세 달을 힘들게 지냈던 것 같다.
그 이후로, 몸에 뭔가를 들고 다닐 때 무게에 굉장히 신경 쓰게 됐다. 여행을 좋아하니 뭔가를 매고 다니는 일이 잦은데, 조금만 무거워도 한두 시간 걷고 나면 반드시 티가 난다. 이건 오래 걸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어쩌다 대여섯 시간 걷고 나면, 페트병에 담긴 물조차 쇳덩이처럼 느껴진다. 어깨가 빠질 듯이 아픈 것은 당연하다.
이쯤 되니 무게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물건을 사면 반드시 주방용 저울에 올려 무게를 먼저 재본다. 내가 쓰는 태블릿 PC는 280g, 스마트폰은 165g, 이제까지 쓰던 MS 블루투스 키보드는 300g, 가방은 980g, 수첩은 98g이고 외장 배터리는 200g 정도 한다. 책 한 권은 240g에서 300g 정도의 무게를 가지고 있다. 가방 포함해서 맞추려고 노력하는 무게는 2kg 안쪽.
사실 아무것도 들고 다니지 않으면 좋겠지만, 카페가 작업실이나 마찬가지인 사람이라 그러는 것은 어렵다. 차를 가지고 다니지도 않고, 여행이 아니어도 하루 평균 걷는 시간이 2시간 정도 되기 때문에 저 무게를 맞추는 것은 꽤 중요하다. 3kg이 넘어가면 피곤해지고, 5kg이 넘어가면 집에 돌아오자마자 뻗는다. 그쯤 되면 하루 종일 애를 안고 돌아다니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울지도 않고 말도 잘 듣는 애겠지만.
3. 롤리 키보드1과 비교했을 때, 키 배열 자체는 확실히 많이 개선된 편이다. 4열 키보드로 바뀌면서 겨우 그래도 쓸만한 키 배열을 갖게 되었다. 물론 문제는 남아있다. 오른쪽 시프트 키는 작고, Back 키와 Delete가 붙어 있어서 자주 잘못 누르게 된다. 기능키를 죄다 펑션키와 함께 써야 하는 것도 불편하다. 키감이 얕은 것은 어쩔 수 없겠지만, 키와 키판 사이가 약간 벌어져 있는 구조라 내구성에 큰 신뢰를 보내기는 어렵다.
3개의 기기를 번갈아가며 연결할 수 있는 것은 좋다. 스마트폰, 서피스 프로3, 태블릿PC 이렇게 3대에 물려서 사용할 수가 있으니까. 평소에 이 키보드 하나면 메인으로 사용하는 기기들은 다 연결할 수 있는 셈이다. 하지만 아이폰/아이패드에 물리면 이상하게 '가상 키보드'가 안 사라지고 뜬다. 막대기 형태는 불편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편하다. 가방에서 꺼내기가 편하고, 넣어도 크게 부피를 차지하지 않는다.
가장 큰 장점은, 역시 배터리 포함해 160g(내가 쟀을 때는 이보다 더 나온 듯하지만...)밖에 안 하는 무게와, 그러면서도 '거치대'를 내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거치대를 포함해 200g 이하의 블루투스 키보드는 보기 힘들다. 5단으로 접히는 구조 때문에 무릎에 올려놓거나, 아무튼 받침대가 없이 작업하는 일은 포기해야 하지만.
그러니까 나는, 이 키보드를 살 수밖에 없었다. 가장 가벼우면서도 그럭저럭 쓸만한 키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이 제품 밖에 없었으니까(가장 가벼운 것처럼 보이는 MS 폴더블 키보드보다 같거나 가볍다). 대신 상당히 비싸다.
4. 아주 오래전부터 휴대용 키보드를 써왔다. 그렇지만, 십몇 년이 지났어도, 맘에 꼭 드는 제품은 만나지 못 했다. MS 유니버설 모바일 키보드는 다 좋은데, MS 답게(?) 거치대가 꽤 무겁다. 물론 지금까진 나에게 있어선 최고의 키보드다. 롤리 키보드2는 그에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무게가 다른 단점을 다 커버한다. 절대 변명하지 못할 정도로 나쁜 점도 없고(iOS 유저에게는 권하지 않는다.).
재미있는 것은, 휴대용 키보드로 나왔지만, 쓰다 보면 롤리 키보드2는 '윈도우' 사용자를 기준으로 설계됐다는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 키보드와 가장 궁합이 잘 맞는 것은, 어이없지만 '서피스 프로'였다. 이 제품이 있으면 탭북 듀오처럼 서피스 프로를 사용할 수가 있어서, 서피스 키보드 커버보다 오히려 생산성이 올라간다...;; 사이즈도 서피스 프로를 가로로 거치하면 딱 맞는다. 세로 거치는 불안정해져서 권하지 못하지만, 보기에는 좋다.
당연히 지금 이 글도 롤리 키보드 2로 쓰고 있다. 작은 가방에 태블릿PC와 롤리 키보드 2만 갖고 다니면, 어디서든 대충 글을 쓸 수가 있다(11인치 노트북이 들어가는 가방엔 다 들어간다.). 정말 나는 어쩔 수 없이, 이 키보드를 계속 쓴다. LG가 정말 액세서리 명가가 되려는지, 어떤 성향의 유저들에게는 꼭 필요한 기기를 만들어버렸다. 워낙 마이너한 성향이라, 많이 팔릴지 어떨지는 장담하기 어렵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