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풀의 미라클 키친 보여준 미래 주방과 냉전 시대
새롭게 보이는 모든 것은, 대부분 오래된 꿈을 실현하겠다는 의지거나, 실현한 버전에 지나지 않습니다.
- 자그니
1959년 여름, 6주 동안 소련 모스크바에서 열린 미국 국립 전시회(American National Exhibition)라는 것이 있습니다. 냉전 시대 스탈린 사후, 잠깐 이뤄진 미-소 문화 교류의 일환으로 행해진 전시였는데요(소련 박람회는 뉴욕에서 열림), 거기서 소개된 미국의 미래 가전...입니다.
미래 가전이긴 한데... 당시 이 박람회를 보러 소련을 방문한 닉슨 미 대통령은, 미국 가정은 다 이런 주방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거기에 발끈한 흐루쇼프(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와 논쟁이 붙으면서 '주방 논쟁(Kitchen Debate)'이라 불리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죠.
https://en.wikipedia.org/wiki/Kitchen_Debate
체재 경쟁이, 군비 경쟁뿐만 아니라 라이프 스타일 경쟁...으로 이어지기 시작했던 사건인데요(당시 중장비와 로켓 등은 소련이, 가전 소비재는 미국이 앞서고 있었습니다.). 그 주방은 과연 어떤 주방이었을까요? 당시 박람회에 전시된 주방 데모는 모두 4종류였지만, 월풀의 미라클 키친이 큰 인기를 끌었다 전해 집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래 영상과 같은 주방이었거든요.
https://youtu.be/Vui2CSEwOxQ?si=1MSUamYUnmkieAYo
1957년에 월풀이 선보인 이 미라클 키친은, 미국의 선진 기술이 얼마나 멋진 주방을 주부에게 선사할 수 있는지를 뽐냈던 결과입니다. 지금 봐도 놀라운 데요. 모든 것이 전자동으로 움직이는, 요즘도 보기 힘든 고급 주방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진실은-
... 다 뒤에서 사람이 원격으로 조작했었다는 것(웃음).
위 사진은 미라클 키친의 핵심인 컴퓨터 책상입니다. 저기서 버튼 하나만 누르면, 알아서 주방 가전이 동작합니다. 앞에는 대형 TV가 있어서 엔터테인먼트를 즐길 수 있고, 책상에 있는 작은 모니터로는 아이 방을 원격 감시한다거나, 문 앞에 누가 왔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필요하면 알림 설정도 할 수 있고, 할 일을 메모할 수도 있으며, 전화기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1959년입니다.
한국은 이렇게 살 때였어요...
위 사진은 자동 조리기를 보여주는 삽화. 그러니까 레시피 누르고 재료만 세팅하면 알아서 요리를 해줍니다. 믹서가 알아서 케이크 재료를 배합하고, 그걸 전자레인지 오븐에 넣으면 케이크를 3분 만에 구워주는 식입니다.
미국 생활에 식기세척기를 빼놓을 수는 없겠죠. 저렇게 뻥 뚫린 식세기가 어딨냐고요? 그게요 ... 저거, 로봇입니다. 움직여요. 저 테이블 위에서 요리하고 더러워진 그릇을 밑에 넣으면, 알아서 이동해서 벽에 수납된 후... 식기를 세척합니다. ㅋㅋㅋ
사실 이 식세기와 더불어 싱크대가\eh 무척 재미있는데요. 일단 싱크대가... 평소에는 감춰져 있다가, 필요하면 나타납니다. 각자의 키에 맞춰서 높낮이가 조절되기도 하고요. 옆에는 재료를 자동으로 다듬어 주는 기기도 있어서, 재료를 넣고 다듬고 알아서 쓰레기를 처리합니다.
... 당연히 말이 그렇다는 거고요(손을 대고 있는 것은, 터치 센서라서 그렇습니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수납형 냉장고. 거실 싱크대 상단...에 있는 자동 수납대와 더불어, 그 옆에는 냉장고도 있었는데요. 고기 버튼을 누르면 고기가, 오렌지주스 버튼을 누르면 오렌지주스가 나오고, 냉온수를 비롯해 얼음도 꺼내 먹을 수 있었습니다.
... 식재료나 음식별 수납은 현대에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현대에는 그 종류가 너무 많아요), 다른 아이디어는 자동 개폐를 제외하면 모두 현대 냉장고에 구현되었다죠.
가장 놀라운 것은 역시, 이 제품입니다. 현장 전시에서는 쓰지 못했다고 하는데요- 딱 봐도 로봇 청소기(...). 다시 말하지만, 1959년입니다.
사실 여기서 봐야 할 것은, 기술이 꿈꿨던 미래와 그걸 실현해낸 대단한 우리!-가 아니라, 저 때나 지금이나 현대 주방에서 처해 있는 문제는 비슷하다는 겁니다. 냉장고에 수납된 재료를 편리하게 쓸 수 있을 것, 쉽게 청소할 수 있을 것, 쉽게 요리할 수 있을 것.
... 예전에는 그걸 사람을 시켜 처리했고, 현대에는 기계를 시켜 처리합니다.
물론 닉슨 대통령 주장처럼, 모든 미국 가정이 저런 걸 가지고 있다!라는 건 진짜 농담이었지만... (2025년에도 완전히 구현되지 않았습니다.) 진짜 미국 집이 어떤 지를 당시 소련인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으니, 가능했던 주장이기도 합니다.
... 미국도 소련도, 아무도 믿는 사람은 없었다고 하지만요(뻥이 너무 심했어요).
문제는, 미국에선 여성의 역할이 '주방'에 머물고 있었을 때, 소비에트에선 여성을 '주방'에 두고 싶지 않았다는 것. 당시 소련에선 여성을 가사에서 독립하기 위해, 공동육아나 저렴한 세탁소, 공동 식당 등을 설치하는 실험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좋은 뜻이라기보단 정치적 문제도 있었고, 당시 소련인들 생활이 그리 좋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소비에트의 실험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어린이집, 코인세탁소, 학교 급식 등으로 이어지게 되는데요(아님). 농담이 아니라 미국의 미라클 키친과 소련의 가사 해방 실험이 모두 구현되는 나라가 한국 같아서, 묘한 기분이 들긴 한답니다.
이미지 출처 https://paleofuture.com/blog/2015/10/27/the-1950s-miracle-kitchen-of-the-future-had-its-own-roomb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