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 스윙 댄스 이벤트 빅뱅(BIG BANG) 이야기
왜 가고 싶었을까? 지금 생각해도 모를 일이다. 나는 사람을 찾아 여행을 가고, 사람을 만나러 또 떠난다. 그런 내게 '춤'이라는 것은 사람을 만나게 만들어주는 연결 고리 같은 것이라, 굳이 어떤 이벤트에 참가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 본 적은 없다. 아, 물론 어떤 이벤트를 핑계 대며 여행을 떠나 본 적은 있지만...
그런 내가, 처음으로 '스윙 댄스 이벤트'에 참가하기 위해 여행을 떠났다. 방콕 스윙 댄스 커뮤니티에서 주최하는 '빅뱅(BIG BANG)'이란 이벤트에 가고 싶어서. 대체 왜?
지난번 행사가 좋아서 떠난 것은 아니다. '빅뱅'은 이번에 처음 열렸으니까. 유명한 댄서가 오기 때문도 아니다. 나는 스윙을 잘 춘다는 유명한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으며, 당연히 이름도 전혀 모른다. 심지어 춤을 잘 추고 싶은 욕심도 없다. 그럼 왜?
음, 그러니까, 이런 거다. 그러니까 나는, 방콕 스윙 커뮤니티의 친구들을, 다시, 만나고 싶었다.
나는 친구가 별로 없다. 어느 한 곳에 진득하게 붙어 있지 못하는 탓이다(라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친해질 만하면 떠나는 사람에게, 오래 사귄 벗이 있....다. 미안하다. 생각해보니 셋 정도 있다. 아무튼 셋 정도다. 친한 사람은 많은데 친구는 딱 그 정도다. 그런데도 여행을 떠나면 외롭다. '외로워지려고 여행을 떠나는 거야'라고 농담을 할 정도로, 외로울 때가 있다.
그렇다고 여행하며 정말 친해질 사람을 만날 일도 없다. '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셋'은 영화니까 가능한 이야기지. 나, 영어 못한다. 아, 정말 예쁜 아가씨가 비행기 옆자리에 앉았던 적은 있다. 구운 오징어를 드시면서 가는 바람에 비행시간 내내 오징어 냄새가 나서 조금 고생했다. 예쁜 아가씨가 기차 옆 좌석에 앉았던 경우도 있었다. 조금 지나니 그 아가씨 선배들이 와서 빈자리 있다고 데려가더라.
오다가다 친해진 친구는 많다. 그런데 정말 딱 그 정도다. 어디 가서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고, 페이스북에서 생일이란 알람이 오면 괜히 친한 척 축하 메시지 한 번 건네는 정도. 그 정도면 감지덕지다. 당신도 알잖아. 그 의례적인 축하 인사를 하는 친구들도 별로 없다는 것을. 그래서 그 이상은 바라지도 않는다. 어쨌든 우리는 오다가다 만난 사이. 당신은 그곳에 살고 나는 잠시 그곳에 들렸던 것뿐이다. 그런 나를 기억이라도 해주면 고마운 거지.
방콕 스윙 파티에 들렸을 때도, 딱 그 이상 이하의 감정도 아니었다. 재미있게 놀다 가자. 실은 그것도 어렵다. 나는 남들 파티에 끼여 노는 것이 쉬울 만큼 성격 좋은 사람이 아니다. 아무튼 그래서, 한 30분 바깥에서 망설이다가 '더 홉'이란 곳의 문을 열었다. 그런데 아무도 없다. 2층으로 올라갔다. 음악 소리는 들리는 데, 어떤 문을 열어야 좋을지 모르겠다. 좀 더 문 같은 문을 열었다. 아이쿠, 사람들이 그 안에서, 신나게 놀고 있었다.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여행을 하고, 춤을 췄다. 나라마다, 도시마다 스윙 커뮤니티의 모습은 모두 다르다. 같은 일본이라도 오사카와 도쿄는 분위기가 굉장히 다르다. 그중에서 방콕 스윙 커뮤니티는, 특이하다. 젊고, 조용하고, 따뜻하면서도, 행복하다. 아, 오해는 마시라. 젊어도 결혼한 사람이 많은 곳도 있고, 연령대가 조금 높아도 태반이 싱글인 곳도 있다(... 울지 말자. 서울이 그렇다.). 자세한 내부 사정은 여행자인 나로서는 알기도 어렵고. 아무튼.
방콕 스윙 커뮤니티의 특징은 서로 '굉장히 친한 것처럼 보인다'는 것. 친한 사람들 사이에서만 흐르는 어떤 '따뜻한' 공기가 여기에는 있다. 방콕이란 도시의 특징 때문에 외국인들도 많다. 커뮤니티에서 공식적으로 쓰이는 언어도 영어다. 방콕에 거주하는 외부인들에게는 어쩌면, 이 스윙 커뮤니티가 이들의 '집'일지도 모르겠다.
정말 신기한 것은, 그런 '따뜻함'이 '사람 벽'으로 작용하며 타인들을 밀어내지는 않는다. 다들 한 번씩 당해봤잖은가. 어떤 친한 사람들끼리 쌓는 관계의 벽. 내 표현으로 말하자면 '사람 벽'. 대부분의 커뮤니티가 가지고 있는, 특히 그 커뮤니티에서 오래 있었다는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그런 벽. 내 영역 침범하지 말고 꺼지라는 기운. 그런데 이 방콕 커뮤니티에선, 그런 벽을 쉬이 느끼지 못했다. 친해진 사이도 아닌데, 그냥 편했다.
음, 아마 그게 이유였던 것 같다. 방콕 스윙 이벤트에 참석하고 싶었던. 여기서는 그냥, 떠돌이인 내가, 별 눈치 안보며 머물러도 된다. 나를 보호해 줄 사람을 찾지 않아도 된다. 무슨 우스운 소리를 하는 거냐고 할 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항상 그랬다. 어느 파티를 가든 처음에는, 고아원에 처음 들어온 아이의 심정으로, 사람을 찾았다. 이해해주지 않아도 괜찮다. 누군가와 함께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이런 마음을 알아줄 것이라 생각하지 않으니까.
그런데 여기선 괜찮다. 왠지 괜찮다.
아무도 나를 환영해주지 않아도, 이미 마음이 따뜻하다.
그런 것이 아마, 어쩌면, 방콕이란 도시가 품고 있는 힘.
방콕 빅뱅까지 가는 길이 쉬웠던 것은 아니다. 빅뱅에 대한 이야기는 작년 10월, 처음 파티에 참석했을 때 들었다.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바로 비행기표를 끊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그 짧은 기간 동안 환율이 엄청나게 뛰었다. ㅜ_ㅜ
방콕 빅뱅이 방콕이 아니라, 방콕 근처 '샘프란'이란 곳에서 열린다는 것도 나중에야 알았다. 나는 낮에 관광을 할 수 없는, 그런 '캠프'식 행사를 좋아하지 않는다. 게다가 행사가 열리는 샘프란 리조트의 방을 쉽게 구할 수가 없었다. 행여 같이 갈 친구가 있나 해서 찾아봤지만, 앞서 말했듯이 나는 친구가 별로 없다. 고민이 많았다. 그래도 갔다. 6시간이 걸렸다. 도착했다. 그때부터 매일 같이 춤을 췄다.
첫날에는 방콕 스윙의 베이스캠프인 '더 홉'에서 웰컴 파티가 있었다. 이번엔 여유 있게 들어갔다. 낯익은 얼굴들이 날 반겨... 줄리가 없잖아. 난 그냥 지난번에 한번 파티에 놀러 왔던 리더일 뿐이다. 그래도 몇몇과는 인사를 나누며, 춤을 췄다. 다음 날 샘프란 리버사이드 리조트로 버스를 타고 갔다. 저녁을 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안 준다. 배고파 울면서(?) 춤췄다.
테마가 올림픽이라 '축구 선수' 복장을 준비했는데, 한국에서 오신 다른 분이 똑같은 '축구 복장'을 입고 와서 속으로 삐지기도 했다. 다들 친구들이랑 와서 조금 외로울 뻔하다가, 도쿄와 오사카에서, 싱가포르에서 만난 친구들이 다들 와있어서 반갑게 인사했다. 아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이럴 때 좋다. 아는 사람이 모두 팔러라는 것은 일단은 비밀로 하자. 어차피 다들 그렇게 생각했겠지만.
둘째 날 파티 테마는 캔디. 하지만 개인적인 테마는 '지루함'이었다. 대부분의 스윙 이벤트는 '낮 강습' + '저녁 파티'로 이뤄진다. 강습을 듣지 않는 사람들은 주변 관광을 하기도 하고(외국인이 많이 참석하니까.). 나는 강습을 신청하지 않았다. 그런데... 낮에 '혼자서' 할 것이 별로 없다! 친구들이랑 온 사람들은 외부 투어를 가기도 하고, 수영장에서 수영도 하고 그러는 것 같았지만..
나는 수영도 못하고 -_-; 샘프란 리조트의 프로그램은 대부분 가족 단위 숙박객들을 위해 마련된 것이며, 근처에 혼자서 돌아다닐만한 곳이 별로 없었다. 결국 책 읽다가 리조트 근처 돌아다니면서 구경하다가, 카페에 들려서 커피 한 잔 마시고 숙소로 와서 쉬다가, 파티 시간이 되자 옷을 갈아입고 나섰다. 지루함이 외로움이란 말과 같은 의미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고나 할까.
... 사실, 사무치게 외로웠다. 이유는 전혀 모르겠다. 여행하면서 이만큼 외로웠던 적도 별로 없으니까. 원래 혼자서도 무척 잘 노는 타입이라, 외로움을 느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여기엔, 주변에 행복하게 웃으면서 몰려다니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얼굴은 아는데 인사 하기에는 조금 먼, 그런 사람들이 다들 왁자지껄 신나게 다니고 있었다. 백만 명이랑 있어도 외로움을 느끼지 않던 내가, 여기 와서 사무치게 외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이쯤에서 내 외로움을 깨 준 한 팔러에게 고마움의 인사를. 혼자 앉아 식사를 하고 있는데, 그녀가 다가와 자리 없는데 같이 앉아도 되냐고 물었다. 그렇게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밥을 먹다가, 깨달았다. 아, 이렇게 살면 되는구나. 둘러보니 서로 아는 사람들끼리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서로 몰랐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합석을 하며 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다음부터는 내가 먼저 혼자, 또는 둘이 앉아 있는 자리에 쳐들어 가서(?) 앉았다. 혼자 앉아서 밥 먹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그냥 내가 같이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같이 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다들 반가워했다. 사실 알고 보니 아무도 혼자 밥 먹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었다. 나처럼, 누구나 친구가 필요했다. 친구가 필요하면, 먼저 친구가 되면 그만이었다. 서양... 친구들은 그런 것을 참 잘했다. 그래서 나도 따라 했다. 친구가 생겼다. '생활의 지혜'는 생각보다 단순했다.
캔디 파티는 꽤 재미있었다. 파티의 밴드를 맡았던 칼링 밴드는 단순한 재즈 밴드가 아니라, 멋진 퍼포먼스까지 함께 갖춘 밴드였다. 무슨 서커스를 보는 느낌이 들 정도였으니까. 그리고 운명의 세 번째 날이 다가온다. 사실 '골든 파고다'리는 곳으로 이동해서 파티를 한다기에, 무슨 소리인지 모르고 있었다. 야외 파티인가 보다, 덥겠구나-라고 생각했던 것이 전부. 밥을 먹고, 버스를 탔다. 버스에서 내렸다.
그리고 그곳에는...
정말 그곳에는, 잊지 못할 풍경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골든 파고다란 곳의 앞에 있는, 시장통을 통째로 비우고 만들어진 파티장에선, 수많은 사람들이 미리 모여 간단한 춤을 배우고 있었다. 그런데 그 에너지가 정말, 대단했다. 별 것 아닌 이벤트, 그저 흔한 공개 강습-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 자리에 참가한 사람들은, 정말 신나게 그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많은 스윙 이벤트를 지켜봤지만, 이제껏 이런 에너지를 느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정말, 끝내줬다. 내 삶에서 이런 순간은, 두 번 다시 찾아오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다시 말하지만, 진짜 끝내줬다. 이런 것은 어떻게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그냥 쿵-하고 심장이 두근 거리는 순간이 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그런 두근 거림이 존재하고 있었다. 춤추기는 오히려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그딴 것이 다 무슨 상관이랴.
그건 아마, 내가 죽기 전에 떠올리고 싶은 순간. 후덥지근한 공기, 땀으로 온몸을 적신 사람들이 뿜는 열기, 나른하고 시끄러운 웃음들, 거리에 내려앉은 노란색 불빛들, 어디선가 신나게 소리를 치는 사람들, 어서 뛰어오르라고 가슴을 노크하는 음악, 정말,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런 순간들. 지난 아쉬움을 깨끗하게 날려 보내주는, 단 한순간의 벅차오르는 기쁨. 내가 속으로 생각하던, 진짜 파티.
... 나는 정말 그 순간, 그 순간과 사랑에 빠졌었다.
그런 순간이 지나고, 나는 지금, 서울에 와 있다. 그때 만난 친구들과는 지금도 가끔 연락을 하고, 생일 축하 메시지를 보내고, 페북에 어떤 글을 올리는 지를 본다. 다행히 다들, 멀쩡하게, 잘 살고 있다. 잘 살고 있으면서도, 가끔 그때를 되돌아보고, 서로 보고 싶다고 말을 한다.
그럼 됐다. 글을 쓰면서도 정말, 신나고 행복했다. 내게 그런 순간이 있었다. 그럼 됐다. 살면서 그만하면 됐다. 뭘 더 바라겠는가. 이 모든 것은 방콕과 방콕의 친구들이 내게 준 선물. 그러니 혹시 당신도, 사랑을 하고 싶다면, 방콕으로 오세요. 제가 미리 환영합니다. 사랑을 받으려 하지 말고, 하고 싶다면. 잘난 춤이 아니라 재미있는 춤을 추고 싶다면. 그런 순간을 가끔 꿈꾼다면.
.... 뭐, 못 느꼈다고 나를 탓하지는 말고 말이다(훗).
* 이 글에 사용된 사진은 글쓴이와 방콕 스윙 커뮤니티 친구들이 찍은 사진입니다.
* 방콕 스윙 파티에 대한 정보는 방콕 스윙 홈페이지(http://www.bangkokswing.com/)와 방콕 스윙 페이스북 페이지(https://www.facebook.com/groups/bangkokswing/)에서 얻으실 수 있습니다.
* 방콕 스윙 이벤트 빅뱅 정보는 빅뱅 홈페이지(http://bigbangswing.com/)에서 확인하세요. 내년 일정은 아직 미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