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지도 못하고 떠났던, 암파와 수상 시장 투어 이야기
1. 첫 여행은 소개팅과 비슷하다. 소개팅을 하기 전에 상대에 대해 많이 알아보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나는 알아보지 않는다. 실은... 만나기 위해 약속을 잡을 때를 빼면, 연락도 거의 하지 않는다. 잘 모르는 사람한테 왜 정성을 쏟아야 하지? 란 마음가짐으로 살아온 지 오래됐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하는 능력은 애당초 타고나질 못했다(예, 그래서 제가 여자친구가 없습니다.).
준비를 한다고 해도 무슨 소용일까. 사진을 보고, 신상명세를 파악하고, 무엇을 좋아하는 지를 알면... 음, 그 사람이 잘 대접받는다는 느낌을 받을 수는 있겠다. 앞서 말한 것들을 제일 잘하는 사람들이 호텔 리어다. 그런데, 그렇게 준비를 한다고,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될까? 애당초 직접 부딪혀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들은 아주 많다. 그 사람의 버릇, 냄새, 사람을 대하는 태도, 스타일에서 느껴지는 취향.
그러니까 처음에는, 아무런 준비 없이 부딪혀 보는 것이 좋다...라는 핑계를 대며, 아무 준비 없이 여행을 한다. 한번 만나보고 애프터 신청을 할지 말지 결정하는 것처럼, 항상 첫 여행은 '이 곳에 다시 올지 말지'를 결정하는 여행이다-라고 말한다. 찾아가서 보고, 좋으면 다시 오고, 아니면 안 간다. 피부로 다가오는 '그곳'의 느낌은 사진이나 글, 타인의 느낌만으로는 알기 어렵다.
모든 자리에선 그 자리만의 냄새가 난다. 그건 누가 대신 전달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절대 내가 게을러서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라고 우겨본다.).
2. 암파와 수상 시장에 찾아갔다. 가기 전까지 내가 가는 곳이 암파와 수상 시장 인지도 모르고 있었다. 그저 카오산 로드를 방문했고, 이제 뭐할까- 생각하며 호텔 근처를 구경하다 (낯익은 이름의) 동대문 여행사를 발견했다. 들어가서 한국에서 왔는데 투어 좀 추천해 주세요-하고 말했다. 사장님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 사장님이 내일 아침에 오라기에 안된다고 했다. 라디오 방송 인터뷰를 해야 했다. 그럼 모레 12시 반에 오라고 한다. 예약금을 내고 나왔다. 근처에 왕궁이 있다기에 거기나 가볼까-하고 걸었다. 농담이 아니고, 무슨 날이라고 진짜 오후 2시에 문을 닫았다. 에메랄드 사원은 아예 하루 종일 문을 열지 않았고. 그리고 난 다시 걸어서 돌아오다 그날 더위 먹고 쓰러졌다. 아- 진짜 방콕 온 첫날부터 이렇게 죽는구나- 싶었다.
그리고 모레 점심, 그때서야 내가 가는 것이 '암파와 수상 시장 투어'라는 것을 알았다. 솔직히 별로 궁금하지는 않았다. 잘하는 것은 잘하는 사람에게 맡기고 신경 쓰지 않는 편이다. 낯선 사람들과 승합차를 타고 갔다. 휴게소에 한번 들르고, 메끌렁 시장이란 곳에 먼저 도착했다. 이 곳에서 이런저런 다른 여행사에서 오신 분들이랑 함께 모여 설명을 듣고 주위를 구경하는데, 난 어쩌다 보니 치앙마이... 에서 온 태국분들 그룹에 섞여서 이동하고 있더라.
아무튼 시장을 구경하고, 느릿느릿 눈 앞을 지나쳐가는 예쁜 노란색의 기차를 구경하고, 다시 암파와 수상 시장으로 갔다. 아참 메끌렁 시장은 적당히 재미있다. 기차가 출발하기 전 좌판이 걷히는 긴장감과 기차가 지나가자마자 그 좌판이 촤르륵 다시 깔리면서 느껴지는 안도감이 있었다. 시장 구경 냄새난다고 싫어하는 분들은 좋아하지 않겠지만.
암파와 수상 시장은... 말 그대로 수상 시장이었다. 어릴 적 가족 여행으로 태국에 왔을 때, 그때 봤던 수상 시장과는 왜인지 다른 느낌. 여기가 그때 봤던 시장보다 크고, 길고, 사람도 많다. 강 상류 쪽은 레스토랑, 주택, 숙박 업소 등이 있고, 하류 쪽은 먹을 것, 액세서리, 의류 등을 파는 시장이 있다. 생각보다 꽤 예쁘고 운치 있는데, 사람이 많다.
정말 못 보던 먹을 것들이 꽤 많았는데, 입이 짧은 나는, 해산물을 안 먹는 나는 손도 대지 못했다. 대신 예쁜 가게에서 태국식 국수를 팔기에 슬쩍 앉아 사 먹었는데, 맛있었다. 검은색 곤약 젤리와 달콤한 우유를 함께 넣어 만든 것도 먹어봤는데... 반.드.시. 우유와 젤리를 함께 먹어야 한다. 정말 '몸에 좋은' 맛이었다 -_-; 암파와 시장 강가 쪽으로 나가 한가하게 산책을 즐겨봐도 좋다. 시원한 강바람 맞으며 강둑에 '홀로' 앉아 있는 낭만을 느낄 수 있다. 단, 해는 조금 떨어지고 난 후에. 커피숍에 앉아서 지친 다리를 쉬게 해줘도 좋다. 은근히 보고 먹고 쉴 것이 상당히 많은 곳이 바로, 암파와 수상 시장이었다.
그냥 커피숍에 앉아 바람맞으며 반쯤 누워있는데, 아아 좋다-란 소리가 절로 나왔다. 맛있는 것 먹고 시원한 강 구경하고 적당히 사랑하는 풍경 속에서 커피 한잔 마시며 앉아 있다. 좋다, 아, 좋다. 하지만 진짜는 그다음에 있었다.
해질 무렵, 집합 시간에 맞춰서 돌아왔다. 밤에 불 켜진 암파와 시장을 보고 싶었는데, 이제 돌아가나 보다-하며 아쉬워하고 있었다. 그런데 배에 타란다. 응? 그때서야 난 이 투어가 '암파와 수상 시장 + 반딧불 투어'라는 것을 알았다. 배를 타고 강으로 간다. 불이 켜진 암파와 시장이 흐르며 지나간다. 와, 그날따라 강에 내린 저녁노을은 진짜로 예뻤다. 이 저녁노을 하나 보러 왔어도 절대 아깝지 않았을 정도로. 진짜 진짜 예뻤다. 반딧불들은 조금 소란스럽게 따다다다 하는 느낌으로 빛나긴 했지만(예전에 소이작도에서 봤던 우리 반딧불들과는 다른 느낌).
그때 결정했다. 여긴 다시 와야겠다-하고. 어쩌면 앞으로, 자주 보고 싶어 지겠다고.
3. 가끔 우연에게 내 시간을 맡겨도 괜찮다. 나는 뭔가를 낭비했다거나, 시간이 아깝다거나 하는 그런 기분을 느끼는 것에 좀 둔하다. 휴대폰이 없던 시절에는 약속하고 오지 않는 친구를 하루 동안 기다려본 적도 있다(실은 내가 날짜를 잘못 알았다). 그래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가끔은 그냥 어딘가에 가보거나, 그냥 잘 아는 사람에게 맡겨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움직이면, 뭐든 일어나긴 나니까.
때론 기분 나쁜 시간을 맞이하기도 한다. 모든 시간을 충만하게 보낸다는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평범한 사람이다. 현재에 충실한 삶을 살지 않는다. 목적이 이끄는 삶 같은 것과도 거리가 멀다. 하지만 이런 나를 어여삐 여긴 듯 가끔, 풍경이 나를 찾아와 준다. 나는 그저 어디 재미있는 일 없나? 하면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걷고 있는데, 저기서, 풍경이 나를 찾아와 준다. 고맙게도.
찾아와 주지 않아도 상관없다. 그건 사람 마음과 같은 것이라,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세상에 낭비되는 시간이란 없다. 소개팅에서 좋은 사람을 만났건 아니건, 그 자리에 있던 시간의 맛은 나와 그 사람의 주고 받음 속에서 결정된다. 그렇다면 최선을 다해, 맛있는 요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수밖에. 그러다 맛없는 요리가 나와도 어쩌겠는가. 어머님 말씀처럼 '세상에 돈 들지 않는 경험이란 없다'라고 생각하며 넘기면 그만이다.
음, 물론 최근에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 있어야 괜찮은 삶을 살았는지 아닌지 알 수 있다'라고 말하는 책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인 적이 있어서, 그냥 내 맘대로 살아도 괜찮아-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는 것이라, 어디를 간다고 마음먹는 순간부터 눈에 들어오는 것을 외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기 위해선 마음 다잡고 노력해야 하는데, 내가 그럴 리가 없다. 다만 거기 가서 만나는 순간들은 내게 달린 것이 아니니, 그냥 마음 편히 가지고 우연이 주는 맛을 즐길 뿐이다.
사실 나는 몸도 마음도 애들 입맛이라서, 싸고 소소한 것들만 있으면 언제든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것은 비밀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