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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그니 Dec 17. 2016

나와 병원 생활을 함께 해준 스마트폰이 있다

소니 엑스페리아 XZ 사용기

지난 10월, 도쿄 여행에서 돌아온 날, 어머니가 쓰러지셨다. 원인은 심근경색. 이상하게 등이 너무 아프다, 체한 것도 같다-고 하셨는데, 그게 심근경색의 전조증상이란 것은 몰랐다. '다행히' 그날따라 일찍 집에 돌아온 동생이 어머니를 발견했다. 의사인 막내에게 전화해서 물어보니, 빨리 응급실로 가라고 소리쳐서 바로 병원으로 달려갔다. 

심장에 스탠스를 박으셨지만, '다행히' 별다른 후유증 없이 회복되실 수가 있었다. 늙은 아들들이 주책없이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이, 이번만큼 '다행'이라고 생각된 적은 없었다. 다시 생각해도 아찔해지는 순간, 다행과 다행이 이어져서 어머니는 사셨다. 딱 그때, 리뷰용 소니 엑스페리아 XZ가 집에 도착했다. 이 녀석은 졸지에 나와 병원 생활을 함께 해야만 했다.


▲ 소니 엑스페리아 XZ, 블루 코랄


▲ 정말 좋아하는 카메라 버튼, 버튼만 누르면 바로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병원 생활이 힘들지는 않았다. 집과 병원도 가까웠고, 낮에는 이모님이 와주셨기 때문이다. 나와 동생은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교대로 어머니 병실에 머물렀다. 게다가 모 선배님 말씀에 따르면 의외로 준비된 신랑감인 나는, 요리를 제외한 대부분의 가사 활동을 다 잘하는 편이다. 청소나 빨래나 아무튼 뭐든지. 어머님이 안 계셨지만 집이 더러워질 일은 없었다.

다만 정신은 좀 나갔던 것 같다. 여행에서 돌아온 날 일어난 일이라, 여전히 여행이 끝나지 않은 것만 같았다. 잠을 밖에서 자니까. 와이파이에 연결할 짬도 내기 힘들어서, 엑페 XZ에 USIM을 갈아끼우고 그대로 들고 다니며 세팅을 했다(LTE 에그 만세!). 오랜만에 통화할 일이 많았는데, 통화 품질은 별문제 없었다. 새롭게 바뀐듯한 키보드도 금방 적응할 수 있었다.

가장 좋은 것은 디자인. 왔다 갔다 하면서 잡고 있는데, 오랜만에 5.2인치 스마트폰을 쥐어서 그런지, 아니면 둥글게 마감된 옆 면 탓인지 확실히 손이 편하다. 가볍기도 하고. 마시멜로로 업데이트 되면서 바뀐 소니 UI는 가장 좋아하는 인터페이스 중의 하나고(바탕화면에 아무것도 없이 놓고, 검색해서 앱을 찾아 쓰는 것을 선호한다.), 서류를 찍을 일이 잦았는데 카메라 버튼이 따로 있는 것도 (여전히) 편했다. 

...마치 원래 내 폰이었던 것처럼.



불편한 것도 있었다. 바로 USB-C 포트. 사실 앞뒤 가릴 필요가 없으니 편하기는 편한 포트인데, 집에 가지고 있는 USB-C 케이블이 따로 없기에, XZ 패키지에 포함된 케이블을 항상 들고 다녀야만 했다. 

배터리는 충전이 빠르고 적당히 오래갔다. 대단하다고는 말 못하겠지만, 아침에 나와서 저녁때 들어갈 때까지는 잘 버텨줬다. 한 번은 깜박 잊고 케이블을 병실에 둔 상태로 저녁 강의를 가는 바람에 스태미나 모드를 써야 할 때가 있었는데, 스태미나 모드에선 정말 근근이 계속 한~참을 버티며 전화를 받을 수 있는 상태로 유지시켜 줬다. 

발열은 크게 느끼지 못 했다. 당시 써야 했던 글들은 대부분 버스나 지하철에서 이동하면서 스마트폰으로 초안을 작성했는데, 그때도 별문제 없었다. 음악이야 당연히 잘 들렸고. 

다만 카메라는 조금 아쉬웠다. 많이 좋아졌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엔 약간 푸른끼가 도는 사진들을 찍었다. 야간 촬영 시 매뉴얼 모드에서 약간 손봐줘야 잘 찍히는 것도 엑스페리아 시리즈의 공통점이다. 동영상은 찍을 상황이 아니라서 따로 테스트해 보지는 못 했다. 

* 사진은 모두 무보정 리사이즈. 


▲ 저녁 무렵 산책길


▲ 흐린 날의 코엑스


▲ 스튜디오 소품들


▲ 야경



셀카 사진은 뭐라고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누군가는 셀카가 잘 찍히는 스마트폰이라고 하는데, 확실히 화소수도 크고, 꽤 광각을 지원해 주고, 잘 찍히긴 한다. 다만 포샵 기능이 가볍게 적용되는 편이라, 20대 뽀얀 피부를 가지고 있는 청춘이라면 충분히 아름답게 나오겠지만, 나 같은 아저씨는 ... 너무 솔직하게 나온 느낌이라 슬펐다.


▲ 병실에서 한 장 찰칵


▲ YTN 사이언스 '다큐 S' 녹화 중에 한 컷



결론은? 소니 엑스페리아 XZ는 좋은 스마트폰이다. 좋은 스마트폰이긴 한데, 학교 다닐 때 우리 반에 있었던 착하고 적당히 공부 잘하는, 하지만 튀지는 않는 친구가 생각났다. 딱히 모자란 부분이 없다. 취향이 맞으면 정말 좋은 스마트폰이다. 하지만 뭐가 좋냐고 물으면, 딱히 이건 정말 좋다-라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이 별로 없다.

가격이 조금 더 낮았다면, 그래서 플래그십 라인이 아니라 중고급기 라인에 있었다면 충분히 권할만한 기기다. 하지만 지금 가격을 다 주고 사기에는, 왠지 망설여진다. 비슷한 가격대에 다른 대안이 꽤 있기 때문이다. 화웨이 P9은 이 제품보다 싸다. 소니 AS는 다른 회사들보다 좋은 평가를 받고 있지 않다.

...물론 내 취향에는 딱 맞는 스마트폰이다. 특히 카메라 버튼은. 나와 같은 사람이 꽤 있는지, 이 제품은 중고 거래 게시판을 보면, 판다는 사람보다 사겠다는 사람이 더 많은, 좀 특이한 상황에 처했다.


퇴원날 풍경


병원에서 어머니가 퇴원하신 다음 날, 이 제품을 돌려보냈다. 돌려보내면서도 아쉬움은 꽤 남았다. 본의 아니게 하루 종일 폰을 잡고 생활하면서, 정이든 탓이리라. 생활하면서 쓰기 좋은 폰을 만들고 싶었다면, 소니는 성공했다. 덕분에 병원 생활을 하면서도 불편하지 않게 보낼 수가 있었다. 아무튼 내게는 좋긴 좋았다. 


... XZ 너도 참, 고생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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