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별을 보러 가기로 했다
오랜만에 밤하늘을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뭔가 단순해졌기 때문이다. 요즘 내 하루는 기상-출근-퇴근-운동-잠이다. 이 정도만 해도 하루를 간신히 그리고 잘 살아냈다는 느낌이다. 아침에는 김창옥 강연(꽤 재밌다)이나 로파이 재즈를 들으면서 출근한다. 버스에서는 자진 않지만 눈은 감고 있는다. 누가 그랬다. 눈만 감고 있어도 휴식 효과가 상당하다고.
나는 보통 3~40분 여유를 두고 사무실에 도착한다. 예열해야 하는 타입이다. 아침에는 팀장님에게 그날 예상 작업 시간을 보고한다. 그러면 팀장님은 마감 기한을 1~2시간 정도 앞당긴다. 인력을 120% 활용하는 분이다. 그 시간까지 고려해서 말하면 되지 않냐고 할 수 있지만, 팀장님은 내 작업 속도를 충분히 알고 있다. 결국 나는 텐션을 끌어올린다. 아침에 2샷, 점심에도 2샷, 오후엔 몬스터. 팀장님 덕분에 하루가 빨리 지나간다. 퇴근하고선 멍하게 집에 들어선다. 가끔 바로 잠들기도 하나 대개는 커피를 한 두 입 정도 먹고 운동하러 간다. 씻고 저녁을 먹으면 11시. 하루 끝.
그래서 별을 보러 가기로 했다. 차를 타고 가면서 그녀에게 얘기했다. “어릴 땐 가끔 그런 생각을 했어. 어른이 되면 말이야, 새벽에 무작정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한적한 휴게소에서 뜨거운 커피를 먹고 싶었어. 밤하늘을 즐기면서 말이야. 그땐 그게 참 쉬울 줄 알았다? 어른이 되면 그냥 할 수 있을 줄 알았지. 근데 그게 아니더라고. 대학생 땐 차가 없었고, 지금은 출근해야 하니까 말이야. 물론 못할 것도 없지만 마음먹기기 쉽지 않아. 주말엔 쉬어야 하고 또 눈앞에 있는 것들부터 하게 돼. 결국 그런 건 시간과 돈과 마음에 여유가 있어야 할 수 있는 거더라”
그런 얘기를 하면서 영동고속도로를 달렸다. 중간에 들른 광주 휴게소에서는 뜨거운 커피를 한 잔 샀다. 그리고 조수석에 앉아 천천히 노래를 골랐다. 노래는 브로콜리너마저 메들리. 중간에 검정치마와 허희경 노래도 섞었다. 옛날 생각이 나서 전기뱀장어 노래도 들었다. 한 시간... 두 시간... 밤이 짙어졌고 도로에 가로등도 점점 사라졌다. 퇴근 후 바로 출발해서 그런지 점차 눈이 감겼다. 눈 좀 붙이라고 하는 그녀의 말이 어렴풋이 들렸다. 하늘에는 반달이 떠있었다. 목요일 밤이었다.
잠에서 깨니 안반데기 주차장이었다. 차는 한 두 대 정도 보였다. 언덕에 올라서니 넓고 텅 빈 배추밭이 펼쳐져 있었다. 차가운 바람이 끊임없이 불었고 커다란 풍력발전기가 천천히 돌고 있었다. 야간 점멸등을 깜박이며 돌고 있는 발전기는 너무 거대해서 엉뚱한 생각까지 떠오르게 했다. 옛날에도 빨간 불빛이 저렇게 깜빡였더라면, 밤에 우편을 배달하던 비행사들이 꽤나 안전했을 것 같다고 말이다.
고개를 좀 더 위로 드니 달과 오리온자리가 보였다. 오랜만이었다. 별자리를 아득히 보고 있노라니 어릴 적이 떠올랐다. 지금은 몸도, 정신도 훌쩍 커버렸는데… 괜히 감상에 잠겼다. 그러다 문득 정신이 자란 건지는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에도 모양이 있다면 어릴 적이 더 보암직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때는 좀 더 순수하게 무언가를 좋아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여러 책임질 일과 그에 맞는 체면으로 잔뜩 점철돼 있는 느낌이다. 그러다 또 별빛이 눈에 들어온다. 생각이 없어진다.
사실 나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되고 싶었고, 지금도 되고 싶다. 간간히 에세이를 쓰는 지금은 브런치에서 작가라고 해주긴 하지만 나중에 단편 작가로 등단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물론 단순하고 에너지가 부족한 지금의 삶에서 이런 욕심은 정말 욕심으로 남을 뿐일 것도 안다. 그리고 이 바람에는 사회적 체면 같은 종류의 욕심도 끼여있다. 살짝 조급하기도 하다.
솔직한 욕망을 꺼내는 건 참 어렵다. 그래도 그녀에게 꺼내 보이고 싶어 입을 뗐다. “작년에 한창 일을 쉴 때 소설쓰기 강좌를 들었잖아. 강의보다는 합평을 더 많이 한 수업이었는데, 유독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한 명 있었어. 그 사람은 왠지 곧 등단할 것 같아서 부럽더라. 나도 그때 좀 더 쏟아부었으면 소설 비슷한 맛이라도 조금 볼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말이야. 어쨌든 그 사람은 수강생들을 문우라고 불렀는데, 그게 참 좋았어. 그 소리를 들으니까 글을 꾸준히 쓰는 사람이 돼야겠다 싶더라고. 40대가 되든 50대가 되든 천천히 하루하루 한 문장씩 써 내려가는, 그런 문우가 먼저 돼야 할 것 같았어”
재잘재잘 댔다. 넋두리인지 뭔지 모를 말들을 그녀에게 늘어놓았다. 욕심이 조금 벗겨진 듯도 싶었다. 이런 걸 얘기하고 싶었던 게 맞나 싶었지만 속은 후련했다. 머리 위에는 빨간 불빛이 깜빡거렸다. 커다란 발전기가 큰소리를 내면서 계속 돌고 있었다. 하늘에는 오리온자리가 반짝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