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좋아하세요?
어떤 음식 좋아하세요?
좋아하는 음식을 묻는 건 상당히 좋은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상대에게 부담을 주지도 않고, 민감한 주제도 아니어서다. 물어도 될지 말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다. 가볍게 던질 수 있지만 돌아오는 답을 듣고 나서는 은근히 많은 사실을 알아낸 것만 같다. 그건 음식이 삶의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무엇보다 먹는 행위는 즐겁고, 사람들은 대개 좋아하는 것에 대해 말하는 걸 좋아한다. 그러니까 이 질문은 노 리스크 하이 리턴이다.
내가 만약 이 질문을 받으면 이렇게 답할 거다. ‘저는 빵을 좋아해요. 물론 모든 빵을 좋아하지만 그중 크루아상이 1등입니다. 참고로 좋아하는 빵 종류는 몇 년 주기로 바뀌어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크루아상 집은 부산에 있어요. 메트르아티정이라고 프랑스 사람이 프랑스 밀로 빵을 만드는 곳이에요. 프랑스 제빵사가 파티쉐인 한국인 아내를 따라 부산으로 왔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주인 말로는 프랑스 빵 맛을 완전히 구현하지는 못했대요. 물이 달라서 그렇다고 하네요. 어쨌든 부산 가면 한번 꼭 가보세요. 후회하지 않으실 거예요’
내가 빵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자각한 건 고등학교 즈음이다. 당시 나는 기숙사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2주마다 집에 돌아오곤 했다. 주말에 잠깐 들렀다가 복귀하는 식이었다. 주말을 보내고 다시 고등학교로 출발하는 일요일 아침에는 항상 빵을 먹었다. 동네 빵집에서 산 빵을 잔뜩 늘어놓고 우유와 요거트를 곁들였다. 개인적으로는 바게트를 요거트에 찍어 먹는 걸 꽤 좋아했다. 나는 2주마다 돌아오는 빵 타임을 기다렸고, 그걸 보면서 내가 빵을 좋아한다는 걸 깨달았다. 빵 타임은 일종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시간이었던 거다.
빵을 왜 그렇게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사실 명확히 답할 수 있는 말은 없다. 어떤 특정한 계기나 이유가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 할 수 있는 답은 그냥 맛있어서다. 어떤 부분이 맛있냐고 묻는다면, 그리고 굳이 대답한다면 풍미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빵에는 밀을 비롯해 버터, 우유, 생크림, 소금, 설탕 등 다양한 재료가 들어간다. 좋은 재료가 다양하게 들어갈수록 풍미가 배가되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조금 더 파고들어 보면 이런 간단한 설명으로는 빵을 좋아한다는 걸 명확하게 말할 수 없는 느낌이다. 모두가 아는 빵의 장점을 그저 나열해 놓은 것만 같다. 좋아함의 시작점을 찾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다.
비슷한 이유로 ‘좋아하는 이유’라는 개념이 내게는 꽤 어렵다. 우선 시작점을 명확하게 모르기 때문에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다. 어떤 존재를 좋아하는 순간은 보통 자신도 모르게 찾아오는 법이니까 말이다. 그 지점을 지나 점점 좋아하게 되는 복합적인 과정을 다 설명하기엔 내 사고와 언어, 기억에 한계가 있다. 또 다른 이유는 인과 관계가 살짝 뒤엉킨 느낌이어서 그렇다. 좋아하는 이유를 묻는 물음에 답을 해버리면 '000 때문에 000을 좋아한다'라고 말하는 것 같다. 나는 빵을 밀로 만들었기 때문에, 버터와 생크림이 잔뜩 들어갔기 때문에, 바삭하거나 폭신한 식감을 가졌기 때문에 좋아하는 게 아니다. 여러 요소가 결합돼 고유해진 ‘빵’이라는 음식을 좋아하는 거다. 물론 거기에는 개인의 기억도 녹아들어 있다. 그런 이유로 빵을 좋아하는 내 감정은 고유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니까 좋아하는 감정은 실은 다 고유한 게 아닐까.
그래서 나는 000 때문에 빵을 좋아한다고 답하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그 이유를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없을 뿐더러, 고유한 내 감정을 한 단어로 퉁 치는 것 같은 느낌이어서다. (물론 일상에선 맛있다고 퉁쳐서 대답한다) 그래서 나는 빵을 왜 좋아하는지 잘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얼마나 좋아하는지 말한다. 예를 들면, 전국 3대 빵집과 서울 3대 빵집을 직접 찾아가 봤다거나, 군대 훈련을 수료하고 나서 처음 찾은 식당?이 뚜레쥬르이며 그자리에서 2만원 어치를 해치웠다는 얘기를 통해서 말이다. 결국 그 대상을 자신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고 즐기는 지가 중요한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조만간 대전 내려갈 일이 있는데) 오랜만에 성심당을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딸기쨈을 발라 카스테라 가루를 묻힌, 옛날식 꽈배기 맛이 일품이다. 그러니까 고백하자면, 사실 이건 꽈배기를 생각하다가 끄적인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