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는

고독과 외로움 사이 그 어디쯤

by 재숙

헬스장에서 1

"어느 아파트 살아요?"

"... xx아파트요."

"몇 동 몇 호?"

"... xx동이요."

"몇 호?"

"..."

"아유, 안 찾아가요."

귀찮은 몸을 이끌고 가끔 헬스장에 간다. 그저 세월에 조금이라도 저항해 보고자. 뇌를 풀어놓고 슬슬 러닝머신 위를 걷는다. 제멋대로 피어오르는 상념들이 A의 기습적인 질문에 돌연 흩어져 버린다. 두세 번 인사를 나눈 적이 있는 60대 중후반의 여성 A.


헬스장에서 2

"마트에서 오이 할인 행사하더라."

"네..."

"사다가 김치 담아요."

"전 요리를 잘 못해서..."

"남매야?"

"..."

"남편 삼성 다녀?"

"..."

"집에서 밥 안 먹어?"

"아, 죄송하지만 개인적인 질문은 그만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쉼표 없이 쏟아지는 질문 끝에 순식간에 남매에, 삼성 다니는 남편을 둔 가상의 인물이 탄생했다. 가상의 인물은 생각한다. '하, 헬스를 끊어야 하나...'


'타인이 지옥이다'라고 한 실존주의 철학자의 말이 떠오른다. 탐색하는 눈빛, 지극히 사적인 영역을 경계 없이 넘나드는 유연함,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소거한 선 넘은 적극성, 이렇게 지옥의 조건이 갖춰진다. 인간은 피투적인 사회적 존재로 어느 정도의 '관음증'은 기본적으로 내재되어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관음증적 호기심이 그저 앎을 향한 강한 내적 갈망에만 머무르는 게 아니라 실체를 갖추어 상대에게 내던져질 때다. 무방비 상태에서 잽이 훅 코앞까지 들어온 느낌, 혹은 누군가 우리 집 현관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느낌이라면 너무 과한 생각일까. 쉽게 얻은 건 쉽게 흩어지듯이 이렇게 벌컥 들어와 포획한 정보는 또 다른 집의 현관문이 벌컥 열리면서 픽션을 토핑해 '아웃팅'되기가 쉽다. 유사 이래 '뒷담화'만큼 좋은 여흥거리가 있었던가.

친밀함이 배제된 수많은 형식적 관계는 사람을 피폐하게 만든다. 이에 사람들은 적정한 거리, 적정한 감정으로 자신을 보호하고 암묵적으로 상대의 영역에도 함부로 발을 들이밀지 않는다. 이는 단순히 관계를 넘어 낯섦에 대한 불편함, 두려움을 포괄하는, 우리 인간종의 진화 결과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정이 없다, 삭막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요즘 사람들은 무의미한 관계 속에서 시들기보다는 차라리 고독한 삶을 희망한다. YOLO는 이미 식상할 정도로 익숙한 단어가 되었으며 건강한 고독은 긍정적인 삶의 한 형태가 되었다. 이들은 긍정적 고립을 통해 성찰과 자아실현에 집중한다.


하지만 고독을 외로움과 등치시키는 사람은 홀로 됨을 두려워하며 이러저러한 관계를 부유한다. 심지어 저 너머 디지털 세상을 유영하며 시간의 흐름을 잃고 도파민의 홍수에 휩쓸리기도 한다. 이는 더 큰 공허함만 불러오는 양의 되먹임밖에 되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는 <우연은 비켜 가지 않는다>에서 '외로움에 대한 치료책은 혼자가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외롭다고 느낄 때 남의 집 문고리를 잡기보다는 자발적 고독의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어쩌면 나를 한번 살펴보라는 내면으로부터의 신호일지도 모를 테니. 얄팍한 정신력으로 아슬아슬 외로움과 고독 사이를 줄타기하는 나에게도 해당되는 말이겠다.


"고독하지 않다면 어찌 삶의 심연을 들여다볼 수 있으며 무언가를 절실히 바랄 수 있겠는가? 그러니 내 자존의식을 붙들고 홀로 인생길을 가는 것이다. 나는 내게 속했고 나는 나를 벗 삼는다."

-이덕무, <천애지기서>


(그 뒤부터 헬스장 입구에서 A부터 살피는 버릇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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