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 삐, 삐, 삐-
삐, 삐, 삐, 삐-
삐, 삐, 삐, 삐-
삐삐삐-
밤 10시가 넘은 시각, 번호키 누르는 소리가 정적을 깬다. 누르고, 잠시 멈추고, 다시 누르고, 오류 경보음이 울리고. 아무도 올 사람이 없는 데다, 늦은 시간에 침입하듯 들리는 소리에 가슴이 뛴다.
인터폰을 켜고 누구냐고 물어봐도 아무런 답이 없다. 문밖 너머 그 누군가는 도어록 키패드를 터치하는 데 온 정신을 쏟고 있다. 얼핏 보니 젊은 여성의 모습이다. 문이 열릴 때까지 번호를 누르고 또 누를 태세여서 두근거리는 가슴을 누르며 살짝 문을 연다.
열린 문 틈새로 술냄새가 훅 들어오고 동시에 초점 잃은 아이의 눈과 마주친다.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윗집 아이.
"여기 x층이야. 착각했나 보구나. 한 층 더 올라가야 돼."
아이는 비틀거리며 엘리베이터 앞으로 다가간다.
평소와 다르게 표정이 없는 아이의 얼굴이 참 슬프다.
스무 살, 참 아름답고 설레는 푸른 나이인데 그때는 몰랐다. 사실 생의 모든 아름다운 순간은 '그때'는 모른다. 하물며 스무 살에야. 낯섦 앞에 혼란스러우면서도 온전한 '성인'이 되었다는 해방감에 정말 어른이라도 된 양 알코올의 세계에 먼저 입문했다. 아이와 어른의 경계에서 아이 쪽에 더 가까운 정체성으로 회사 생활보다 회사 밖 생활에 더 집중했고, '이게 진정한 자유구나' 하는 사이비 자유론에 심취해 '네 멋대로 해라' 식의 삶을 살았다. 하지만 이렇게 둑 터지듯 넘쳐나는 자유 앞에서 마냥 좋기보다는 뭔가 결핍의 감정이 들었다. 히히거리며 지인들과 어울리다가도 집에 돌아올 때면 공허함으로 가슴이 서늘했다. 사춘기가 뒤늦게 시작된 듯 감정 관리가 잘 안 됐고, 새로 배우는 업무에 지레 자기 한계를 규정하며 패배주의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모든 게 서툴고 우중충했다.
스무 살, 세상에 진정으로 나 홀로 내동댕이쳐지는 나이다. 할 수 있는 게 많아지는 대신 그 뒤에 따라붙는 책임도 무거워진다. 불확실한 미래, 불안정한 현실에 두려움은 커지고 자신에 대한 확신은 점점 쪼그라든다. 모든 것에 열려 있어야 할 그 시기에 오히려 가장 폐쇄적이 된다.
돌이켜보면 너무 무겁지 않아도 되었을 것을, 과하게 아파하고 절망했다.
스무 살, '정식'으로 어른이 되기 전에 '나는 누구인가'라는 답 없는 철학적 물음을 던지며 자아를 찾아 헤매고, 음주(?)를 비롯해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알아내기 위해 수많은 가능성을 탐색하고 성과에 상관없이 나를 던질 수 있는, 실패로부터 가벼워질 수 있는 비상의 나이다. 그 과정에서 부딪치고 깨지고 상처도 입겠지만 청춘은 금세 일어서서 다시 나설 준비를 한다.
지금도 스무 살의 서툰 시간들을 떠올리면 얼굴이 붉어지지만 무의미해 보였던, 그러나 당시에는 상당히 심각했던 고민과 상처, 후회의 감정으로 점철된 경험들은 지금의 나를 형성하는 데 상당히 큰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하지 말아야 할 것과 해야 할 것을 구분하고 실천하는 데 중요한 경험적 토대가 되었다.
수능을 마친 지 얼마 안 된 윗집 아이도 어른으로 가는 길목에서 천천히, 조금씩 길을 찾아 나가기를, 치열한 고민과 함께 단단해져 가기를 바라고, 또 응원한다.
바람이 강할수록 나무도 강해진다.
-클레어 키건, <푸른 들판을 걷다>
(아이가 올라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윗집은 한바탕 난리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