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위한 철학수업> 이진경

사고에서 사건으로

by 재숙

<삶을 위한 철학수업>은 살아가면서 우리가 천착하게 되는 철학적 명제, 즉 자유, 행복, 꿈, 사랑, 관계 등에 대해 저자의 통찰을 담아 각각의 의미를 재해석함으로써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단단히 뭉쳐 있는 생각의 전환을 이끌어낸다.


모든 고뇌의 시작과 끝은 결국 '행복'이'라는 종착점에 이르기 위한 도정이라 할 수 있다. 이 과정에 자유는 필수다. 일찍이 밀은 자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우리가 타인의 행복을 빼앗으려고 하지 않는 한, 또는 행복을 추구하는 타인의 노력을 방해하지 않는 한, 자유라고 부를만한 가치가 있는 유일한 자유는 우리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우리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자유다." 우리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즉 '자유'가 전제되었을 때 '행복'이라는 지고의 목적에 도달할 수 있다는 얘기일 터인데, 우리는 과연 주어진 자유만큼 행복에 다가가고 있는가. 아마도 아주 드물게 스쳐가는 행복보다는 크고 작은 수많은 고통들과의 투쟁의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으리라. 그리고 이를 감내 내지 제거하기 위한 노력보다는 적당히 현실과 타협, 안주하려는 유혹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저자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쉽게 안주하려는 마음은, 감수해야 할 작은 고통조차 피하려 들게 하고, 그런 태도는 고통의 크기를 실제보다 확대하고 과장한다. 그리고 그 고통의 '크기'를 들어 자신의 '무력함'을 정당화하려 하고 자신의 실패나 소심함을 위로받고자 한다." 나의 내면 깊숙이 감추어져 있는 비겁함을 들킨 것 같아 일순 뜨끔해진다. 이렇게 자기 합리화를 통한 현상의 안주는 나를 고양시킴으로써 '강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차단해 버린다. 효능감, 성취감, 나아가 행복감에 이르기에 앞서 고통의 시간은 필연이다. 기만적인 자족감을 느끼며 살지, '미련한' 노력 끝에 자유로움에 이를지, 선택은 '내' 몫이다.


저자는 민주화 운동으로 수형생활을 할 당시 꿈에서조차 영어의 몸이었다면서 꿈만큼은 현실의 벽을 넘어 자유롭게 꿀 수 있어야 하지 않는가,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꿈'과 연결해 미국의 가난한 청년들은 왜 공화당에 투표하는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그들은 가난이라는 무거운 짐 앞에서 예술이니 철학이니 하는 다른 꿈을 꿀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꿈에 갇히게 되고 그러한 폐쇄성이 '비즈니스'를 대표하는 공화당으로의 투표로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전에 다른 책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본 적이 있는데, 왜 서민들은 친서민 정책을 펼치는 정당보다 그에 대립되는,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보수정당에 투표하는가?에 대해, 저자는 당장 먹고사는 문제가 급하니 만큼 진보적 개혁, 복지 확대 등 거시적 정책보다는 기존의 내 것이라도 지켜줄 수 있는 보수정당 쪽을 택하는 것이라고 답하였다. 그들에게 개혁이니 복지니 하는 꿈을 좇기에는 삶이 무거운 것이다. 너무 명쾌하고 논리적인 설명 앞에 현실의 벽을 넘어서는 게 가능하기는 한 걸까, 하는 무력한 의문이 든다.


저자는 우리가 살면서 겪게 되는 사고와 사건에 대해서도 깊이 있는 통찰을 제시한다. 삶은 사고 혹은 사건의 집합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그런 만큼 예기치 않게 부닥치게 되는 이들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수동적인 삶에 갇히기도, 능동적인 삶으로 나아가기도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교통사고든 이별이든 어떠한 급작스러운 사고를 당했을 때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사고 이전과 이후의 커다란 간극에 고통스러워하고 과거로의 회귀에 집착한다면 이는 말 그대로 '사고'다. 하지만 이를 나의 새로운 삶으로 받아들이고 긍정하면 이는 또 다른 삶의 기회, 가능성으로의 '사건'이 된다. 이론과 달리 현실에서 체화하기는 결코 쉽지 않겠지만 나를 연옥에서 구해낼지, 지옥으로 떨어뜨릴지 또한 선택은 '내' 몫이다.


책을 읽고 나니 삶을 잘 살아내기 위한 '비법'을 전수받은 것 같아 든든하다. 앞으로도 수많은 사건, 고통이 툭툭 튀어나와 조심스레 나아가는 발길을 붙잡겠지만 저자의 수업 내용을 무기로 삼아 전보다는 덜 힘겹게 전진해 나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가끔 다시 들춰보고 힘을 얻고 싶은 책이다.



눈을 활처럼 휘며 금방이라도 나의 이름을 부를 것 같고, 전화를 걸어와 나의 잠과 식사의 안부를 물을 것 같고, 세상에 하나뿐인 내 편이 되어 나를 섬처럼 홀로 두지 않을 것 같은데... 사고다. '꼿꼿한 단독자가 돼'라는 말에 묻어 있는 감정과 의미를 수없이 곱씹고 서늘한 말이 그어 놓은 금단의 선 앞에 붙박혀 제자리를 맴돈다... 지난한 자아분열의 시간을 거친다. 계절의 변화를 신비로운 눈으로 관조할 수 있게 되었고, 건강한 나이듦을 위해 운동하는 습관이 생겼으며 오고 가던 언어가 더 이상 가슴을 할퀴지 않고 떠올라 사유의 확장으로 이어진다. 사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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