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세상에 던져지는 순간 관계를 맺기 시작하고 이러한 관계 맺기는 죽을 때까지 이어진다. 무엇보다 주체적이어야 할 내 삶이지만 관계 속에서 나의 선택권은 생각보다 훨씬 제한적이다. 애증으로 얽혀 있는 가족은 평생 나를 따라다니는 또 다른 내가 되어 때로는 나를 짓누르기도, 때로는 나를 한껏 부풀게도 한다. 그리고 학교, 직장 등 사회에 소속되면서 타인과 관계를 맺고 끊임없이 고뇌하게 된다. 내가 문제인가, 그가 문제인가... '인간관계'를 다룬 수많은 책을 읽어봐도 현실 앞에서는 형해화된 이론일 뿐, 도를 닦듯 하루하루를 살아내면서 포기하는 연습을 하게 된다.
이 책 <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은 누구나 알고 있음 직한 단순한 방법을 제시하지만 그 실천적 결과는 절대 가벼이 볼 수 없으며, 결국 인간관계는 내 마음을 다스리는 데서 출발해야 하는구나,라는 각성과 함께 성찰하는 마음을 갖게 한다.
카네기의 관계론 중 특히 '역지사지'의 이론에 공감이 간다. "내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라는 성경 구절처럼 상대와 나의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본다면 나의 입을 한 번 더 단속하게 될 것이고, 거기에 상대의 이야기를 들을 줄 아는 귀와 공감할 줄 아는 마음이 열려 있다면 관계 맺기는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카네기의 지적대로 우리는 대부분 상대의 이야기를 들을 때 그대로 수용하고 공감하기보다는, 어느새 스스로 시시비비를 가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한 자의적 판단을 기준으로 상대의 의도를 곡해하기도 혹은 분노하기도 한다. 잘 생각해 보면 문제의 근원은 확인되지 않은 나의 판단에 있으니, 이 또한 나를 먼저 다스려야 함이다.
우리는 관계의 상대성을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나, 즉 자아는 하나지만 관계에 따라 우리는 다양한 자아를 경험한다. 나를 인정하고 사랑해 주는 이 앞에서는 온유한 자아를, 나를 비난하는 이 앞에서는 공격적인 자아를 발견한다. 공자도 일찍이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사람의 잘못은 그 자신의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 남의 잘못을 보면 돌이켜 자신을 반성하라." 관계 속에서 타인을 탓하던 마음이 부끄러워지는 한편 관계에 온기를 불어넣을 수 있도록 나를 좀 더 잘 단속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적 동물이라 불리는 우리 인간은 관계와 완전히 단절한 채 살아갈 수는 없다. 그렇기에 차선책으로 관계를 축소하고 방어선을 구축해 자신의 내면을 지켜 나가는데, 이렇게 축소된 관계는 아마도 내가 선택한,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들일 것이다. 이들이 소중한 만큼 원론적인 것 같지만 실천할 만한 가치가 충분한 카네기의 이론을 자주 되새겨 볼 일이다.
Q. 인간은 관계 속에서 안정과 행복감을 느끼지만 또한 비교, 질투로 인해 상대적 박탈감과 불안을 느낀다. 그러함에도 관계가 인간을 우울과 고독감에서 구원할 수 있다고 보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