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할레드 호세이니는 아프가니스탄계 미국인으로 1980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이후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망명하였다. 현재 의사이면서 작가이기도 한 호세이니는 전작 <연을 쫓는 아이>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통해 소련의 침공, 내전으로 얼룩진 아프간의 참상과 샤리아법으로 고통받는 여성의 실상을 고발하였다. 이번 책 <그리고 산이 울렸다> 또한 아프간의 현대사를 관통하고 있으며 그 역사를 살아가는 이들, 특히 빈자의 아픔, 상처, 이별을 섬세하게 그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아프간을 넘어 프랑스, 미국, 그리스 등으로 무대를 확장하여 전혀 상관없을 것 같지만, 어떻게든 연결이 되어 있는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종횡으로 풀어놓는다.
책은 가난으로 생이별하게 되는 남매, 파리와 압둘라의 이야기로 시작하여 60여 년의 세월을 거쳐 미국에서 재회하는 이들의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그 사이에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고 다양한 형태의 사랑이 잔잔하고 슬프게 전개된다. 운전사 겸 요리사인 나비에 대한 슐레이만의 사랑, 슐레이만에 대한 나비의 인간적인 우정, 친족으로부터의 폭력으로 두개골이 열린 로시에 대한 이드리스의 연민, 갈등, 로시를 입양하는 간호사 아무르의 휴머니즘, 마르코스와 어릴 적 개에 물려 얼굴이 심하게 손상된 탈리아와의 우정. 이 책은 이들 모두를 주인공으로 하며 그들의 삶은 똑같은 무게를 갖는다. 삶은 해피엔딩이 아니라 네버엔딩의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것이라고 어느 작가는 말한다. 그 항해가 두려울지언정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약자를 향한 연대의 힘을, 가능성을 믿기 때문이 아닐까. 얽히고설킨 다양한 군상들의 이야기에서 희망을 본다.
압둘라와 아버지, 마르코스와 어미니, 파리(압둘라의 딸)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생각지 못했던 부모의 모습, 그들과의 관계에 대해 돌아보게 한다.
어릴 적 우리에게 부모님은 압둘라가 자기 아버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의 유년 시절은 잘 상상이 되지 않으며 그들은 날 때부터 어른이었을 것만 같다. 그들의 위엄에 때로는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발밑에 있는 땅을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한없는 안정감을 느낀다.
"압둘라는 아버지가 그네를 타는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다. 아버지가 자기처럼 한때 아이였다는 것도 상상할 수 없었다. 다른 아이들과 같이 들판으로 달리고 마음대로 뛰놀던 태평한 시절이 있었다는 것도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다. 아버지의 손은 상처투성이였고, 얼굴은 깊은 주름으로 덮여 있었다. 아버지는 손에 삽을 들고 손톱 밑에 때가 덕지덕지 낀 채 태어났을 것만 같았다."
세월이 흘러 우리가 '어른'이 되고 부모가 노쇠하면서 부모의 위엄은 더 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우리는 부모를 이해하려는 노력보다 회피하는 쪽을 택하고 서로가 점점 낯설어진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부모에게서 한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발견하고 때늦음에 가슴 저미는 아픔을 느낀다.
"어머니가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여학생처럼 웃는다. 나는 어머니가 이렇게 순수하고 꾸밈없이 웃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우리 세 사람은 앉아서 어머니의 손 위에서 작은 무지개들이 너울거리는 광경을 바라본다. 그리고 나는 슬픔과 해묵은 아픔을 느낀다. 양쪽이 다, 내 목을 틀어쥐는 발톱 같다."
소설을 읽다 보면 삶의 덧없음을 많이 느낀다. 인물의 생로병사가 한 권의 책에 다 들어 있는 경우에 특히 그렇다. 골고루는 아닐지라도 어쨌든 희로애락을 겪으며 어찌어찌 살다 보면 어느새 회한이 남는(잘 살았든 못 살았든 지나가 버린 것에 대한) 노년에 이르게 되는 이야기. 그러한 인간의 일대기를 보고 있노라면 살아감에 있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무엇을 가치 있게 여겨야 하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하게 된다.
이 책이 슬프면서도 감동적으로, 희망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도 이 질문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