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llom, <Por cesárea>를 듣고
아티스트들은 때때로 자신의 비극적인 경험을 음악으로 승화시킨다. 동료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그에서 비롯된 혼란을 담아낸 Injury Reserve의 <By the Time I Get to Pheonix>, 명예와 부를 모두 얻은 뒤 겪게 된 불안과 두려움을 담은 Saba의 <Few Good Things>, 청소년 시절 범죄와 폭력이 난무하던 도시에서의 삶을 고백한 Kendrick Lamar의 <good kid, m.A.A.d city> 등. 다양한 작품들에서 아티스트들은 솔직한 가사와 신비로운 분위기의 프로덕션을 내세워 자신의 처절한 심경과 상황을 꾸밈없이 투영해 내곤 한다.
아르헨티나 힙합씬의 떠오르는 신예 딜롬(Dillom)의 2번째 정규 앨범 <Por cesárea> 또한 그러한 작품이다. "제왕절개"라는 의미를 가지는 앨범의 제목이 암시하기라도 하듯, 딜롬은 본작에서 자신의 어두웠던 과거의 고통에 몸부림치는 동시에 새로운 삶을 살아가려는 의지를 담아내고 있다. 산모의 복부를 절개해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 것과 같이, 자신이 경험했던 지금까지의 수난들을 극복하려 하는 것이다. 딜롬은 약 3년 전에 발매된 첫 정규 앨범 <Post Mortem>에서 이미 한차례 복잡하게 얽힌 정신세계를 표출해낸 바 있다. 유년 시절, 사랑, 가족, 명성 등 다양한 주제로 이루어져 있으며 "죽음 이후"에 대한 고찰을 담아낸 작품이다. 그러나 <Por cesárea> 그 깊이부터가 완전히 다른 작품이다. 본작은 딜롬의 인생을 집약해놓은 하나의 전기와도 같다.
<Por cesárea>에서는 충격적인 내용들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마약 중독자였던 어머니의 자살 시도를 다룬 "Últimamente", 내면의 악마를 따르기로 결정하며 자신의 선택에서 오는 쾌락을 노래한 "La carie"와 "Buenos tiempos", 한 여성에 대한 집착이 살인으로 이어진다는 내용을 담은 "Muñecas". 그리고 이러한 모든 복합적인 감정들은 마지막 트랙 "Ciudad de la Paz"에서 평온함과 치유의 메시지를 주는 것으로 귀결된다. 딜롬은 자신의 이야기를 매우 불쾌하게 풀어나가면서도, 35분 내내 어두운 이야기만을 계속하는 것이 아니라 분명한 메시지를 담아내었다. 개인적인 경험에 기반하면서도 이를 사회에 대한 비판과 연결 짓는 능력은 놀랍기 그지없다. 단순 자신의 고통만을 토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를 매개체로 하여 청자들에게 더 큰 메시지를 전달하려 하는 것이다.
한편 딜롬의 이야기가 이토록 진정성 있게 다가올 수 있었던 이유에는 프로덕션이 분명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앨범의 분위기에 걸맞게 굉장히 음산하고 고어적인 스타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는 듣는 이들로 하여금 마치 현장에 있는 듯한 몰입감을 제공한다. 앨범이 진행되는 동안 일관된 톤을 유지하여 앨범의 서사를 매끄럽게 이끌어나감과 동시에 더욱 강렬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분명 딜롬의 이 무거운 이야기는 신비로운 맛으로 한껏 점철된 프로덕션이 아니었다면 지금처럼 생동감 있게 다가오지는 못했을 것이다.
<Por cesárea>는 한 신예에게 있어서 안정적이다 못해 놀라울 정도로 훌륭한 소포모어 앨범이다. 앞서 언급한 스토리텔링, 어두움과 동시에 황홀함을 머금은 프로덕션은 이미 확실히 어느 경지에 오른 듯 보인다. 자신의 이야기를 음악으로 역동성 있게 구현해 내는 능력 역시 놀라우리만큼 탁월하다. 그러나 한 가지 바라는 점이 있다면 — 바로 래핑이다. 음반에서 유일하게 다채롭지 못한 래핑이 발목을 잡는다. 분명 어느 정도 파워풀한 힘을 실었으나, 막상 알맹이가 없는 느낌이다. 이러한 감상은 단순 언어적 장벽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지만, 그러한 점들을 제쳐두고 보아도 확실히 스토리텔링에 비해 아쉬운 랩 퍼포먼스가 많이 존재한다. 이러한 단점들만 개선해나간다면, 다음 앨범부턴 믿고 듣는 아티스트 반열에 오를 수 있지 않을까. 딜롬이 내디딜 다음 발걸음에 모두 주목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