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소 May 10. 2020

울릉도로 떠난 디자이너

나의 시작, 나의 도전기



줄곧 부산에서 살아온 나는 서울에서 사는 게 꿈이었다. 서울에 몰려 있는 전시와 공연을 맘껏 보러 다니고 싶었다. 스물 다섯 살이 되어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꿈처럼 서울에서 취직을 했다. 회사 생활이 힘들어도 매일 출퇴근 길에 한강대교를 지나며 한강과 여의도를 바라보고 있으면 드디어 나도 서울 사람이라는 설렘이 마음에 한가득 찼다. 야근이 일상이 되고, 클라이언트에 치여도 참을 수 있었지만 내 주변에 닮고 싶은 어른이 아무도 없다는 게 슬펐다. 적금이 만기 되자마자 취직한지 일년 만에 사원증을 벗어 던지고 무작정 백수가 되었다. 이직을 알아보고 있는데 친구가 내게 이미지 하나를 카톡으로 보내줬다. 


'울릉도 한달살이 참가자 모집'


그게 섬과 첫 만남이었다.



코끼리 바위



그 때는 울릉도에서 가장 유명한 게 명이 나물이란 사실조차 몰랐다. 쾌속 여객선을 네 시간이나 타고 바다를 건너야 닿을 수 있는 섬이 우리나라에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버스와 기차, 택시와 배까지 비행기를 제외한 모든 대중교통을 타고, 서울에서 출발한 지 12시간 만에 울릉도에 도착했다. 한국이지만 결코 한국에선 볼 수 없었던 특이한 바위와 맑고 투명한 바다를 처음 마주했을 때 그 감동이 아직도 생생하다. 바다에 있는 바위 하나를 보고 무슨 바위가 저렇게 코끼리같이 생겼냐 말하니 옆에서 저게 바로 코끼리 바위라고 알려줘서 깔깔 웃었던 순간엔 내가 이곳 주민이 될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 해 여름, 한달간 울릉도에서 머물면서 조금씩 섬에 스며들었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하늘에 구름이 둥실둥실 흘러가는 걸 구경하다 보면 시간이 참 잘 갔다. 어느새 여기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조금씩 들었다. 마침 울릉도에서 알게 된 이웃분이 국가에서 청년이 시골로 이주하면 지원금을 주는 지원 사업이 있단 걸 알려줬다. 서울에서 디자이너로 쌓고 싶던 커리어와 꿈보다 젊은 날 내가 좋아하는 곳으로 훌쩍 떠나 살아 보는 일이 훨씬 더 매력적이었다. 지금 아니면 못할 결심일 것 같았다. 큰 고민도 하지 않았고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섬으로 이사를 왔다. 본격적으로 울릉살이를 시작한 작년 1년 동안 울릉도 살아보기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기념품도 디자인해서 팔고, 섬 영화제를 군청과 함께 열기도 했다. 읍내에서 팝업스토어를 열어서 매일 가게에 출근한 적도 있다. 조금 독특한 삶으로 보였는지 방송과 잡지에 몇 번 나와서 내 근황을 모르던 지인들을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너 울릉도는 언제 간 거야?"

"거기 가서 뭐해?"

"울릉도에 언제까지 살아?"

"왜 여기 왔어?"

"돈은 뭐로 벌어"


육지에서 온 낯선 사람으로 시골 섬마을에서 온갖 관심을 끌며 도시와 다른 시골 정서에 적응하기도 어렵고, 별별 구설에 오를 일도 많지만 그래도 이 섬에서 가장 좋아하는 노을과 바다 그리고 하늘을 언제나 곁에 두고 볼 수 있어서 좋다. 서울에서는 야근하느라 그 좋아하는 노을을 보는 게 참 어려운 일이었다. 잠깐 하늘 쳐다보는 게 뭐 그리 어렵다고 그 찰나의 즐거움 하나 누리지 못하고 사나 싶었다. 어차피 어디에 살든 삶이 괴롭고 힘들긴 매한가지니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게 있는 곳에서 사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울릉도에 없는 아이스크림 하나가 너무 먹고 싶을 때, 파도가 높아서 배가 안뜨면 누군가의 장례식조차 가볼 수 없는 현실이 너무 버거울 때도 있지만 가슴 뛰게 하는 풍경 속에 산다는 사실 하나가 불안한 이 삶에 커다란 위안이 되어주었다.



울릉도 노을



육지와 뚝 떨어져 머나먼 섬에 와서야 도시에 살던 나를 멀리서 볼 수 있었다. 하루를 살아내는 게 바빴던 직장인의 설움을 여기에서 다독였다. 남들 다 잘하는 직장 생활을 나는 뭐가 힘들어서 결국 그만 둬야했나 매일 밤 하던 자책을 울릉도에 살면서 그만뒀다.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다던 생각이 내겐 스스로를 옭아매는 짓이었다. 나답게 산다는 게 어떤건지 천천히 알아 가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풍경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산다는 것. 진정한 내 삶을 사는 기분이다.



섬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났다. 나처럼 이 섬이 좋아서 들어온 사람들은 하나 같이 힘들고 고된 섬 살이지만, 참 행복하다고 말한다. 돈 벌어 먹고살긴 힘들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바다와 산이 있는 이곳이 참 좋단다. 그 사람들 눈은 반짝반짝 빛이 난다. 나도 그런 마음을 닮고 싶다는 생각을 매일 한다. 집값이 비싼 아파트에 살길 꿈꾸는 삶 말고 내가 좋아하는 풍경이 곁에 있는 삶. 그리고 햇살 하나에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이고 싶다. 그저 닮고 싶은 사람들이 곁에 있고, 한없이 걸을 수 있는 산과 푸른 바다가 있는 이곳에선 알 수 없는 내일이 기대된다. 젊은 사람이 대체 여기서 어쩌려고 그러냐는 말을 참 많이 들었다. 그러게 말이다. 나도 앞으로 무슨 일을 더 할지, 얼마나 더 있을지 사실 거창한 계획같은 건 없다. 디자이너의 특기를 살려서 울릉도 여행 기념품을 제작하고 판매를 준비하고 있다. 아름다운 이 섬에서 작고 소소하게 내 색깔이 담긴 브랜드를 만들어가는 꿈을 꾼다. 어쩌면 무모하기도 한 이 도전을, 성실하게 이어 가보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