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으로든

적성과 흥미를 찾아서

by 작소


중간고사를 앞둔 봄날 아침, 학교 갈 채비를 하는데 친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전화가 왔다. 오 남매 중 장남인 아부지를 따라 황급히 경상도 산골짜기 아빠 고향으로 향했다. 장례는 그 동네 유일한 장례식장 가장 큰 곳에서 치루기로 했다. 밥 먹는 곳만 학교 교실 두 개를 합친 정도로 면적이 꽤 컸다. 초중고부터 대학까지 온갖 동창회를 섭렵한 울 아부지의 조문객만 해도 그곳을 다 채우는 건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발 넓은 맏아들의 맏딸인 나는 찾아오는 분들께 인사를 하고 연신 악수했다. 도우미 두 분으론 아빠 오남매 손님을 응대할 일손이 부족해 나까지 서빙하기에 이르렀다. 사람들이 관광 버스를 빌려 타고 오질 않나, 어디서 그렇게 물밀듯 들어오는 건지 계속해서 그 큰 곳이 다 찼다. 아니 새벽인데 이 인간들은 왜 집엘 안 갈까. 누군지도 모를 사람과 종일 반가운 척을 하려니 입꼬리에 경련이 일 것 같았다. 장례를 치르는 동안 웃는 낯으로 연신 음식을 나르다 창백한 할배 옆 관에 나란히 누울 뻔했다.


삼베옷 불편합디다


아빠의 대 환장 유난으로 우리 일가친척은 삼일장 내내 사극에 나오는 삼베옷을 입었다. 할아버지는 드라마에서만 보던 꽃상여에 고이 모셨고, 이상한 모자를 쓴 아빠 친구들이 꽃상여를 어깨에 들쳐메고 집 뒷산에 올라 삽으로 땅을 파서 할아버지를 묻었다. 고2 중간고사를 2주 앞둔터라 장례식 서비스와 시험 공부를 병행하고, 어른들 잔심부름에 어린 동생들도 돌봤다. 발인에서 입관, 할아버지의 봉긋한 새 무덤까지 내 눈으로 본 후 시름시름 앓기 시작해서 내리 3일을 누워 일어나지 못했다. 할아버지와 유대가 얕아서 죽음에 대한 슬픔은 크지 않았는데, 오로지 장례식 내내 고생해서 앓아누웠던 거다.



몸을 추스르고 학교에 가니 모두가 시험을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늘 그렇듯 공부는 손에 잘 잡히지 않았다. 일주일 쯤 공백을 채우느라 급급하면서도 할아버지 장례식이 종종 떠올랐다. 어릴 때부터 학업 욕구가 있는 편이었던 나는 초딩 때부터 스스로 성적 압박에 시달렸다. 서점에서 문제집 구경하길 좋아했던 어린이인데 반해 애석하게도 공부 머리가 영 없었다. 수업 시간엔 너무 잠이 와서 손등을 꼬집어대느라 나중에 보면 멍이 들어 있었는데, 그 정도면 어지간해서 공부를 잘했어야 하는 거 아닌지 늘 의문이었다. 할아버지 장례식장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각 테이블에 필요한 메뉴와 손님이 앉은 자리를 줄줄 외우며 서빙하던 순간 머리가 팽팽 돌아가던 것처럼 공부할 수 없는걸까.



할아버지를 땅에 묻고 몸살로 몸져누웠다가 중간고사를 대차게 말아먹고, 나는 태어나 이렇게 내가 잘 해낸 일이 있었던 건지 곱씹었다. 진정 내가 잘하는 일이 서빙인가. 그곳이 사업장이었다면 나는 우수 직원으로 뽑혔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 후로도 학교에 다니며 공부를 잘한 적이 없었지만, 전처럼 슬프진 않았다. 또 어떤 날 우연히 내 강점을 발견하게 될 수도 있다고 기대했던 것 같다. 생전 할아버지에 대해 아는 것은 없지만 돌아가시는 길에 내게 별스러운 기억을 하나 남겨주신 덕에 나는 할아버지가 떠난 벚꽃 흩날리는 4월이면 그날이 떠오른다. 여전히 나는 뭔가 뚜렷하게 잘하는 건 없지만, 사건처럼 벌어지는 삶에 잘 대처하며 살고 있는 걸 보면 무엇으로든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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