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랑천변으로 이사한 지도 벌써 일년 반이 지났다. 중랑구에 와보니 한강은 너무 컸다며 중랑천 정도가 딱 걷기에 좋다고 생각했다. 곧 피어날 장미를 기다리는 오월, 살랑살랑 불어오는 밤 공기가 좋은 날 중랑천을 걸으며 대뜸 예전에 살던 한강 근처가 그리웠다. 난 한강대교 걷는 걸 좋아했다. 새로 산 크록스를 신고 집에서 노들섬까지 걸어갔다가 발이 다 까져도 그 산책길이 좋았다. 그날은 근처 사는 친구와 만났다. 노들섬에 퍼질러 앉아 여의도를 바라보며 마셨던 캔맥주가 참 달았다. 그 크록스는 여태 매일 신다가 지금은 걸레짝이 되었다. 지워지지도 않는 묵은 때로 얼룩진 크록스를 신으면 종종 한강대교 건너 노들섬까지 간 날이 떠오른다. 세월이 한참 흘러서도 한강대교를 걸어다니던 시간을 이렇게 떠올리게 될 줄 몰랐다. 그 때가 그리운 건지 내가 한강을 좋아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둘 다인가.
저멀리 마포까지 내 옛 동네 단골집. 여전해서 뭉클했다. 너무 많은 게 변한 내 이십대 절반이 묻어있는 곳.
내가 살아온 도시는 모든 게 지체 없이 변했다. 붕붕 돌아가는 단체 줄넘기 안으로 모두가 무사히 뛰어드는데 나만 주저하며 외곽에서 바라만 보는 것 같다. 줄이 너무 빨리 돌아요.. 난 도시를 좋아하지만 너무 빠르게 바뀌어서 마음 둘 곳이 없다. 차라리 강과 숲은 언제고 그대로니까 마음이 편해. 그런데 서울은 종종 나무와 숲마저 없애버린다.
언젠가 돌아올 곳이라 생각한다. 아직 궁금한 세상이 많고 보통 그것은 도시에 있으니까. 여행이 의도찮게 무척 길어진다. 한 때 내게 집이 어디냐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참 뻔질나게 해댔다. 그런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야했던 건 아마 그 어디에도 머물 곳이 없었기 때문일거다. 먼 길을 돌아 이리저리 오가며 내 손에 쥔 거라면 여기저기 조금씩 삐댈 곳을 알아놨다는 거? 지금은 여기나 저기나 다 내 집같고 어디로 가도 내 집같이 살 수 있지 뭐,,
짧은 서울 일정이 끝났다.
이번 여름엔 바라던 대로 하염없이 그림만 그리는 하루를 보낼 수 있으려나. 시골로 돌아가면 작업실 이사를 해야한다. 집 사서 이사할 일 없으니 일터를 이전하고 자빠진 역마살 낀 내 팔자. 남들처럼 개발하고 확장해야할 것 같은데 외려 더 낡고 외딴 곳으로 옮겨간다. 그러기까지 변치 않는 것에 마음을 빼앗긴 이 여행 초반 심경을 계속 떠올렸고 너 마음 가는 걸 하면 되겠다던 누군가의 말을 자꾸만 되뇌었다. 애써 스스로 설득 다 해두면 욜로라이프 살다 골로 사는 거 아니냐는 물음이 불쑥 튀어올라 다시 힘없이 무너졌다. 아니야, 사놓은 그림 재료는 다 써야지 하는 생각이나 해. 그러다 어느날 정말로 서울로 돌아와야할 때가 오면 미련 없이 떠나와야지. 마지막 남은 미련 탈탈 털어보는 시간이라 여겨.
모든 건 세월이 흐르면 알아서 의미가 생긴다. 그게 뭐든 나는 내 지난 시간에 괜찮은 의미를 부여할텐데 굳이 앞서서 안만들어놔도 된다. 서울까지 멀리 오니까 내 마음도 멀리서 보여서 좋다. 추적추적 비 내리는 소리도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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