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제되지 않은 마음

불현듯 동행

by 작소



“나랑 결혼할래?”


그를 만난지 3일 째 되던 날이었다. 창문으로 들어온 아침 햇살이 코끝을 간질였다. 불쑥 말을 뱉어낸 건 나인데 내가 더 당황한 것 같다.


“아니 그러니까, 당장 뭘 어쩌자는 게 아니라, 내가 말한 결혼은..”

“그래 그러자.”


겨울 월정리는 처음이었다. 그렇게도 사람이 많더니 그날따라 아무도 보이지 않고 가게는 모두 문을 닫아 적막하기까지 했다. 원래 겨울엔 이런가. 해변 골목을 기웃거리다 바다를 잠시 바라보았다.


“진짜 오랜만이네. 우리 같이 여기 왔었던 게 벌써 10년 전이다.“


10대에서 20대 초반에 걸쳐 오랜 연인이었던 그에게 이별을 고한지 7년. 나는 그에게 연락을 했다. 20대를 정리하면서 내게 영향을 주었으나 오래 만나지 않았던 몇 사람에게 안부를 전했는데, 그 때 그가 떠올랐다. 연인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오랫동안 가장 친한 친구여서 끝을 낼 때 참 많이 어려웠다. 첫 연애, 첫 이별이라 더 그랬을까. 설렘이 잦아들고 익숙하기만 한 그에게 점차 미안함이 커질 때 쯤 나는 이제 그만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일방적인 내 요구를 그는 별 말 없이 받아주었다. 다른 사람과 만나고 헤어져보니 이별한 후에도 좋은 사람으로 남은 그가 고마웠다.


뭐하고 사나. 한번 연락해볼까.


우리가 헤어진 후 그는 멀리 유학을 떠났고 나는 서울로 취직을 했다. 절대 잊을 수 없을 줄 알았는데 매일 새로운 날이 쌓여 과거의 기억을 덮어갔다. 저 아래 덮혀있던 파편 하나를 끄집어내 들여다 보는데 여기서 더 시간이 흐르면 다시는 그를 찾지 않을 것 같았다. 예전에 그가 이니셜로 만든 아이디를 사용하던 게 생각이 나서 카카오톡에 검색을 했더니 왠걸, 단번에 그의 계정을 찾았다. 내친김에 잘 지내냐고 메시지를 보냈다. 금새 1이 사라져서 답변이 올 줄 알았는데, 이틀이 흘러도 답이 없었다. 실례였다면 미안하다고 메시지를 보내는 와중에 장문의 메시지가 내게 도착했다. 이런 저런 근황과 통화를 하고 싶다는 답변.


바뀐 그의 번호로 전화가 왔다. 7년간 서로에게 일어난 일을 알려주려니 시간이 참 많이도 거렸다. 나는 울릉도에 살고 있었고 그는 제주도에 살고 있는 근황까지 주고 받다가 한번 만났으면 좋겠다기에 내가 제주로 가기로 했다. 난 참 많은 게 바뀌었는데 그의 말투와 분위기는 변한 게 없었다. 오랜만에 만나 이야기를 하면서 그 시절 내가 알던 그 모습으로 여전히 살고 있는 그와 문득 앞으로도 함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긴 생각없이 불현듯 튀어나온 내 말을 시작으로 우리는 만난지 3일만에 우리는 동행을 하기로 했다. 이걸 이렇게 앞 뒤 없이 정해도 되는 걸까, 별의 별 생각이 다 드는데 그냥 왠지 그 사람과는 그래도 될 것만 같았다. 그나저나 나 결혼은 하기 싫은데 어쩌지. 한마디로 표현할 단어가 '결혼' 뿐이라 일단 그렇게 말을 던지고 장황하게 설명을 덧붙히는데 다행히 그는 내 얼렁뚱땅 아무 말을 적당히 이해한 것 같았다. 길게 말 안해도 이해하는 걸 보니 다행이었다.


우리는 멀리 살겠지만 여행하듯 바다를 건너 서로를 찾아갈 수 있어서 재밌겠지. 알 수 없는 마음으로 가득했던 월정리. 그날 바다는 무척 푸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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