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이 많이 내리는 산동네에 살고 있다.
어느 겨울날
강설 예보에 앞서 미리 눈삽을 사러 동네 철물점에 들른 길
눈삽을 사고 나오는데 추적추적 비가 내리지 뭐야
한 손엔 삽을 들고
남은 손은 이마에 바짝 갖다대어 겨우 한 뼘 비를 막고는
주차된 차를 향해 달음질 치다가
매일 오가던 길 불현듯 그곳이 낯설어
빠른 걸음을 멈추고 터덜터덜 걸었다.
종종 여기 현실은
꿈처럼 자고 일어나면 없어질 것처럼 아득하다.
엄마가 평생 모은 전재산을 털어 마련한 전세금으로
방한칸을 얻어 나는 처음 자취를 시작했고
1년이 채 되지 않아 내 집주인은 홀랑 그 돈을 들고 날랐다.
할 수 있는 거라곤 그 작은 방을 붙들고 있는 것
어느날 가만히 누워있는데 천장이 나를 향해 돌진해왔다
그 집에 잡혀먹힐 것 같아서 무작정 밖으로 나왔네
바깥을 떠돌다 만난 사람 그리고 낯선 동네
그 사람은 어느덧 가족이라 생각하고 싶어졌고
그 동네는 내 집이라 하고 싶었지
그렇게 또 일년이 흐른 어느날
바깥에서 만난 사람은 내것을 빼앗고 돌연 나를 고소했다.
사람은 믿어선 안되는 건데
나는 그때 무엇이라도 믿어야만 했으니 후회할 수도 없네
잃어버린 건 되찾을 수 없고
내가 갈 길은 너무 많이 남았으니
돌아보지 않기로 했다.
홀로 외곽을 빙글빙글 돌면서
나는 비로소 내가 된 것 같았다
혼자서도, 누구와도 괜찮을 때쯤
오래 전부터 알던 사람과 함께 살기로 했고
낡은 집을 하나 만났다.
세를 들어가 사는데
지난날 당했던 일이 밤마다 파도처럼 다시 밀려와
덜컥 오십살이 되어가는 집을 사버리고 말았다.
돈은 억을 썼는데
산 걸 고쳐 쓰려니 억이 더 드네
아무래도 나는 이억을 주고 근심을 산 게 분명하다
그래도 밤마다 지난날이 파도처럼 밀려오진 않으니까.
불현듯 뭉게뭉게 피어나는 상념
남들처럼 도시에 아파트 그런걸 사야하는 거 아닌가.
나도 그러고 싶었는데
내가 탄 기차는 어디로 가는지 당최 알 수가 없네
전재산을 다 털어 밑빠진 독을 사고 나니
정신없이 물바가지를 퍼올려 독을 채워야할 것만 같다.
차라리 잘 됐어
언제까지나 물을 길어올려야할 이유가 있다는 게
공허한 것보단 낫겠지.
완전한 건 없더라.
모든 건 완전하고 싶은 마음으로 가는 과정
누구에게나 각자의 완전한 이상이 있겠지
그 곳이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추상으로만
존재한다면
현실을 사는 내가 자주 지칠텐데
그저 내 공간을 채우고 만드는 게 내 이상이라면
사는 게 더 수월하지 않겠니
남들처럼 환금성 생각해서 아파트를 사야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요즘은 할 틈이 없다 밑빠진 집 채우려면 갈 길이 멀어.
지붕도 바닥도 벽도 다 뜯어 고쳐야하는 내 집.
부모님같아서 삼촌과 이모라 부르는
동네 철물점 사장님 내외
눈삽 하나 사러갔는데
김장김치 한통에 뼈를 다 발라낸 가자미,
꽁꽁 언 떡국떡 봉다리까지 쥐어주는 이모.
눈삽을 건내주는 삼촌이 그런다.
정답으로 살았으면 우리가 만났겠니
정답이 아니니까 만났지. 정답이란 건 없어
그 말 끝에 따라붙는 삼촌의 너털웃음 소리가
닿지 않을 것만 같던 이상에 올라선듯
꿈결처럼 아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