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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 T May 03. 2018

받들겠습니까?

영화 1987, 그리고 2018

사진출처: 영화 1987 포스터


“받들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을 소재로 해 화제를 모으고 있는 영화 ‘1987’. 배우들의 호연과 더불어 영화 속 가장 많이 등장하면서 콕 박히는 대사가 있다. 바로 위에 언급한 “받들겠습니다!”다. 

 
이 대사는 1987년 당시 민주화운동에 가담한 대학생과 시민운동가들을 탄압했던 대공수사처 박처장(김윤석 분)을 향한 조반장(박희순 분)의 충성심을 드러낸 대사다.

 
조반장이 박처장의 지시를 행동으로 옮기는 순간 “받들겠습니다”는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다. 국민들의 눈과 귀를 막고, 민주화 인사들에게 가혹한 고문을 가하는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말은 왜 이렇게 엄청난 위력을 가지게 되었을까? ‘무엇을’, ‘왜’ 받드는지에 대한 고민이 결여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고민과 성찰이 빠져있기에 박처장이 부당하고 잔인한 지시를 내려도, 조반장은 “받들겠습니다”라고 대답하며 복종했다. 영화 속에서 부당한 지시를 ‘받드는’ 일이 늘어나면서 그들은 파국으로 치달았고, 이는 610 항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그 후 30년... 영화 속 세상과 현실 세상은 많이 달라졌다. 하지만 “받들겠습니다”라는 말이 가진 위력과 독성은 여전히 유효한 것 같다.
 

우리는 여전히 무엇을 왜 받드는지도 모른 채 사회가 정해놓은 룰을 받들고 있다. 중고등학생은 좋은 대학교를 가기 위해 수능 점수를 받들고, 대학생은 취업을 위해 스펙을 받들고, 3~40대는 안정적인 생활을 위해 직장상사의 지시를 받들고 있다. 영화 속 조반장처럼.
 

심지어 1987년 당시 부당 권력에 저항하던 사람들 조차도 회사에서 직장상사라는 이름으로, 집안에서 가부장적인 가장으로, 후배들을 이끄는 선배라는 이름으로 당시 권력자들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상명하복식 기업문화, 갑질문화의 꼭지점에서 아랫사람들이 받들어 줄 것을 요구하는 ‘꼰대’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 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는 “받들겠습니다”와의 악연을 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뜬금없지만 군대에서 처음 들었던 “앞으로는 다나까(다 or 까)만 씁니다”라는 말 속에서 해답을 찾았다.

 
입 밖으로 먼저 내뱉고 본 “받들겠습니다” 대신, 나를 향한 물음 즉 “받들겠습니까?”라고 바꿔보는 것은 어떨까? 당연하다고 여겨온 것들, 혹은 부당하지만 참고 따랐던 것들을 향해 앞으로 의식적으로라도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고자 한다.
 


“받들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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