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작가미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riter T May 03. 2018

봄내음

힘들 때마다 꺼내볼 수 가족사진 같은 그 말



“허허, 이젠 제법 봄내음이 나는구먼...”

 

유난히도 추운 올 겨울, 쌀쌀맞기 그지없는 한 겨울의 냉기 사이로 이따금씩 온기가 수줍게 고개를 드는 날들이 있다. 그 날도 그랬다. 운동도 하고, 생각도 정리할 겸 동네 공원에 산책을 나갔는데 위와 같이 말하는 어르신들의 얘기가 귀에 쏙 들어왔다.


엄동설한의 한 가운데 있는 1월에 봄을 얘기해서도, 미세먼지가 목을 칼칼하게 만드는 숨 막히는 날에 봄내음을 언급해서도 아니었다. 왜 그런지는 몰랐지만 이상하리만큼 ‘봄내음’이라는 단어는 내 머릿속을 헤엄치며 돌아다녔다. 


그동안 ‘봄향기’, ‘봄냄새’라는 단어를 주로 사용했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왠지 봄에는 향기나 냄새가 아닌 ‘내음’이 날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와 사전을 찾아보았다.

 
냄새: 어떤 사물이나 분위기 따위에서 느껴지는 특이한 성질이나 낌새
향기: 꽃, 향, 향수 따위에서 나는 좋은 냄새
내음: 코로 맡을 수 있는 나쁘지 않거나 향기로운 기운

 
봄에는 ‘내음’이 날 것 같다는 막연한 내 믿음(?)이 틀리지 않았음을 사전은 말해주고 있었다.


‘봄’이라는 존재는 어떤가. 초입엔 아직 한기가 남아있지만 코끝에서 느껴지는 청량감이 좋다. 끝자락엔 살짝 덥긴 해도 온 몸을 휘감는듯한 온기가 좋다.


그래, 모든 걸 시들시들하게 만드는 녀석에게 ‘여름내음’이라는 단어를 선사해주지 않았고, 살을 에는 동장군의 세상 ‘겨울’과 ‘내음’을 짝지어 주지도 않았다. 그렇게 ‘내음’은 오롯이 봄만의 것이었다.
 

인위적으로 향기를 만들지 않아도, 냄새를 피우지 않아도 것. 그게 ‘내음’이고 그게 어울리는 계절이 ‘봄’이다. 그렇기에 봄은 우리네 인생에 스며든 가장 빛나는 순간을 의미하는 단어로도 사용되었으리라. ‘내 인생의 봄’, ‘드디어 내게도 봄날이 오는구나!’처럼...
 

일의 의미와 보람을 찾지 못하고,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며 살아갈지 몰라 막막했던 내 인생의 겨울도 서서히 끝나가고 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알았고, 어떻게 가야할지도 하나씩 배워가고 있으니 말이다.


앞으로의 인생길이 아우토반일지 비포장도로일지, 아니면 막다른 길일지 아직은 모른다. 지금 내 앞엔 미세먼지가 가득하다. 어쩌면 일년 내내 마음이 추운 겨울이 지속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봄을 꿈꾸는 그 자체만으로도 봄은 이미 내 곁에 와 있는지도 모른다. 봄내음을 지척에 두고 있는지 모른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공원에서 들었던 어른들의 말씀이자 내 인생의 키워드가 될 지도 모르는 그 말을... 힘들 때마다 꺼내볼 수 가족사진 같은 그 말을... 나지막이 읊조려본다.

 
“허허, 이젠 제법 봄내음이 나는구먼...”

 
 
Copyright(C) Jan.2018 by Writer T. All rights reserved.                                                  

매거진의 이전글 받들겠습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