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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 T Jun 16. 2020

언론... 대한민국 최고의 카르텔

‘어려울 때 돕는 친구가 진짜 친구’ 원조는 바로 언론과 기자였다

서로를 향한 손가락질. 하지만 이 손가락들을 모으니 대한민국 최고 카르텔이 되었다. 대한민국 언론과 기자들의 자화상이다. 


‘카르텔’    

 

연합이라는 뜻의 이 단어는 사실 ‘담합, 야합’이라는 말과 더 가깝게 느껴진다. 그러면서 생각해봤다. 대한민국 최고의 카르텔은 어느 집단일까? 언뜻 생각하기에 정치판, 혹은 재벌그룹들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정치판을 들여다보면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고, 둘도 없던 동지가 훗날 으르렁거린다. 선거를 앞두고는 철새 정치인들의 이동도 잦다. 대한민국 최고 카르텔이라고 부르기엔 어딘가 부족해보인다.    

 

재계도 마찬가지. 경영권을 둘러싸고 어김없이 등장하는 단어는 바로 ‘형제(혹은 남매)의 난’이다. 이들 재벌가 사람들은 경영권과 재산을 두고 같은 피가 흐르는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볼썽사나운 소송전도 불사한다. 한 지붕 밑에서도 치고 받는데 하물며 경쟁 관계에 놓인 다른 기업과 사이가 좋을리는 없다. 경우에 따라 기업들간에 카르텔이 형성되기도 하지만, 사안에 따라 유동적인데다 언제든 틀어질 수 있어 대한민국 최고의 카르텔이라고 부르기엔 부족하다. 


자, 그렇다면 대한민국 언론들은 어떨까? 정재계의 카르텔을 날카롭게 지적하는 기자들은 카르텔로부터 자유로울까? 겉으론 보기엔 보수/진보언론으로 나뉘어져서 서로 신나게 물고 뜯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특정 언론사나 기자 개인사를 둘러싸고 문제가 불거질 땐 그 누구보다 침묵을 지키는 것도 우리네 언론과 기자들이다.


물론 취재 과정에서 불거진 기자윤리에 대한 문제나 언론과 특정 세력과의 결탁 의혹이 불거지면 서로를 향한 날 선 기사를 쏟아내긴 한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공적인 영역이다. 언론사주나 기자가 음주운전, 폭행, 갑질 등 물의의 주인공이 될 때는, 즉 기자 사생활 영역에서 문제가 불거질 때는 서로 약속이나 한 듯 조용하다.

        

예를 들어 한 정치인, 대기업 사주 혹은 그들의 자녀가 사생활에서 물의를 일으켰다고 가정해보자. 대중들의 비판이 거세지면서 언론도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 기사화하며 이슈를 확대 재생산한다. 이런 기사들로 인해 부와 명예를 한 번에 날리는 정치인과 재벌들도 많다. 반면 언론사주나 기자가 똑같은 문제를 일으키면 서로 쉬쉬하는 경우가 많다. 특정매체명이나 언론사주 이름이 그 좋아하는 포털 실시간 검색어에 등장해도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다반사다. 


자칭 보수언론의 사주가 논란에 휩싸인 경우가 있었다. 평소 서로 1등매체라고 우기는 보수언론들에겐 라이벌을 주저앉힐 절호의 기회인데 어찌된 일인지 조용하다. 심지어 앙숙인 진보언론에서도 이 문제를 크게 다루지 않는다. 비슷한 논란을 빚은 정치인이나 재벌들 보도에 비하면 비중이 현저히 낮다. 해당 언론사 메인 섹션엔 아예 없고 그나마도 일부 언론에서만 잠깐 다루고 말 뿐이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진보언론 기자들을 둘러싸고 사건 사고가 몇 차례 있었다. 경찰은 물론 언론계 전체를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이를 다루는 진보언론은 없었다. 정의와 공정, 인권을 외치지만 자신들의 문제엔 한없이 관대했다. 보수 언론도 마찬가지다. 진보언론의 이중성을 꼬집을 절호의 기회였지만 조용했다.

      

이념에 따라, 정치적 스펙트럼에 따라, 각자 처한 이해 관계에 따라 서로 으르렁대지만 사적인 영역에서는 철저히 침묵을 지킨다. 같은 사안이라도 정치인과 재벌의 문제는 열심히 다루면서(물론 다루는 것이 언론의 사명이지 의무다), 본인들이 논란의 주인공이 될 경우엔 다루지 않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다. 이쯤되면 대한민국 최고 카르텔은 다름 아닌 바로 언론과 기자들이다.

      

보수/진보 매체를 막론하고 각 언론사 홈페이지 매체 소개란엔 약속이나 한 듯 ‘정론지’, ‘진실만을 보도하는 언론’, ‘사회의 구석지고 어두운 곳에 빛을 밝히는 등대’라는 화려한 수식어들로 장식되어 있다. 어떤 탄압이 있어도 홀로 꿋꿋이 정도를 걷겠다는 다짐의 말도 곁들이고 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대한민국 언론들은 정말 홀로 꿋꿋이 걸어나가고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언론들은 정론지의 뜻을 모르거나, 아는데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둘 중 하나다.

      

코로나 사태가 한창일 때 진원지인 중국을 두고 ‘어려울 때 돕는 친구가 진짜 친구’라는 정부 관료들과 여권 인사 발언에 언론들은 일제히 비판 기사를 쏟아냈다. 정부가 친중이냐 아니냐, 적절한 발언이냐 아니냐를 따지려는 게 아니다. 언론이 이 발언을 비판할 자격이 있느냐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 언론 카르텔에게 필요한 건 ‘어려울 때 돕는 친구가 진짜 친구’라는 발언을 곱씹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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