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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 T Apr 04. 2024

언론이여, 난 당신들의 밑반찬이 아닙니다

되풀이되는 토사구팽, 혹은 간보기.. 이젠 내가 거부한다

“Writer T 작가님이시죠? 저는 ㅇㅇ일보 xx기자입니다. 인터뷰 요청 차 연락드렸습니다”     


퇴사 후 인생 2막을 연 지 6년째. 능동적 퇴사, 새로운 도전 등이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키워드가 되다 보니 이와 관련한 언론 매체 인터뷰 요청을 종종 받는다. 퇴사를 결심하게 된 원인과 계기, 퇴사 당시의 심경, 퇴사 후의 삶, 새로운 도전에 대한 동기, 퇴사를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조언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냐는 것.

     

퇴사 이후 홀로서기를 하면서 어느 정도 자기브랜딩이 필요했고 그 과정에서 언론 매체 노출이 필요할 수도 있었지만, 내가 먼저 언론 매체를 찾아다니며 기사 동냥하듯이 살지는 말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언론 매체에서 먼저 인터뷰 요청을 해오면 굳이 그걸 마다하지는 말자는 생각도 했다. 언론에 목을 맬 필요는 없지만 물 들어올때 노 젓는 것도 나쁘진 않기 때문이다.      


퇴사 후 첫 책을 출간하고 한 방송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퇴사 후 새 길을 걷는 개척자들에 대한 릴레이 인터뷰였는데, ‘방송국놈들’ 특유의 고압적인 자세 때문에 수 년이 지난 지금도 당시를 회상하면 화가 난다. 그 방송사에서는 약속 당일 오전 일방적으로 장소를 변경했다. 그나마도 양해의 말 없이 장소가 변경되었다고 바로 본론부터 ‘통보’했다. 변경된 시간을 맞추지 못하면 네 인터뷰는 안하는 것이라는 식이었다.    

  

‘우리가 너 방송 내보내주는데’라는 고압적인 태도와 일방적인 소통방식에 화가 났지만 한 번 참았다. 약속장소로 향했다. 구체적인 장소를 알려주지 않고 서울시내 모 지구대 근처라고만 했다. 모 지구대 근처에서 전화를 했지만 담당자들은 녹화에 들어간다는 이유로 연락을 받지 않았다. 그렇게 현장에서 발품을 팔아가며 약속 장소를 찾아냈다.

      

현장에 다가가자 (방송국놈들은 안전요원이라고 부르고, 실제 하는 행동은 양아치 깡패스러운) 건장한 사내가 내 앞을 막아섰다. 그 모습을 본 막내 작가 정도로 보이는 사람이 촬영장 인근 카페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애초에 얼마정도 걸릴 것 같다고 언질을 준 것도 아니고 무작정 기다리게 했다. 그렇게 두 시간 가까이 내돈내산 음료를 마셔가며 내 촬영 순서를 기다렸다.      


마침내 내 인터뷰 차례가 되어 연락을 받고 촬영장으로 나갔다. 그런데 담당 PD가 좀 끊었다 가자고 해서 촬영이 중단되었다. 이미 카페를 나왔기에 기다릴 곳도 없어서 엄동설한에 밖에서 기다려야 했다. 오전 반나절이 속절없이 흘렀다.

      

그런데 촬영이 재개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참을만큼 참은지라 화가 치밀어올랐다. 무엇보다 오후에 일정이 있어서 더는 기다릴 수 없었다. 인터뷰를 할 수 없겠다며 자리를 떴다. 그러자 ‘너 아니어도 할 사람 많다, 꼬우면 네가 어쩔건데’라는 식의 반응이 돌아왔다. 그렇게 퇴사 후 첫 언론 매체와의 만남은 악연으로 끝났다. 


세월이 흘러 두 번째 인터뷰 기회가 찾아왔다. 한 신문사의 기획인터뷰였는데, 꿈을 찾아 퇴사를 하고 내 삶은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인터뷰 코너였다. 인터뷰 당시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대면 접촉이 금지되었을 때라 전화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퇴사를 결심한 순간부터 지금의 자리에 서기까지의 일들을 구체적으로 털어놓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기사가 게재되었다는 연락이 없었다. 궁금한 마음에 매일같이 내 이름과 관련 검색어들을 총 동원해 기사를 찾아봤지만 헛수고였다. ‘윗선에서 통과시켜주지 않았어요’, 기자들 용어로 ‘데스크가 킬 시켰어요’라는 한 마디만 해줘도 아쉽지는 않을 걸.. 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해할 수 있었다. 기자는 최선을 다했고, 기사 게재에 대한 결정권은 데스크와 해당 언론사에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아쉬움을 달랬다.

      

그리고 다시 시간이 흘러 또 다른 신문사의 인터뷰 제의를 받았다. 인생 2막과 한국출판 시장과 관련한 인터뷰였다. 서면 인터뷰로 진행되었는데, 이번에도 취재 기자의 윗선에서 인터뷰 기사를 킬 시켰다. 인터뷰를 진행한 기자가 난감해했지만, 나와 데스크 사이에서 난처할 것 같아 괜찮다고 했다.     


하지만 괜찮지 않았다. 아니, 지금도 괜찮지 않다. 그리고 앞으로도 괜찮지 않을 것이다. 방송국놈들은 대단한 권력자인양 나를 함부로 대하고, 기자에게 취재 지시를 내린 데스크는 손바닥 뒤집듯 말을 바꿨다.     


‘다른 사람들 기사는 잘만 게재되는데 왜 나만 이럴까’, ‘왜 이런 일이 내게만 자꾸 벌어질까’ 자책도 해봤다. 하지만 내 잘못은 아니었다. 그래서 고개를 들고 당당해지기로 했다.

     

그래, 내 인생이 그리 매력적이지 않은 것 인정한다. 소위 ‘얘깃거리가 되는’ 사람이 아닌 것도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다. 드라마틱한 인생을 산 사람들이 우선시 되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인터뷰 해달라고 조른 것도 아니고, 자기들이 필요할 것 같으니 연락해서 부탁하고 입장이 바뀌니 헌신짝처럼 내다 버리는 건 이해할 수 없다. 킬 시킬 기사 아이템이었다면 애초에 기획 단계에서 킬 시키지, 왜 인터뷰까지 다 진행해놓고 킬 시켜서 담당 기자와 내게 상처를 주는 지 이해할 수 없다. 내 시간과 노력 들이게 하고 기대감을 품게하다 좌절을 맛보게 하는 걸 이해할 수 없다.

     

상처와 좌절을 딛고 ‘인생 2막’을 열며 삶에 대한 이야기를 준비한 사람에게 또 한번 상처주는 행태를 용서할 수 없다. 인터뷰이의 인격과 감정을 무시하고, ‘내가 무려 (언론 보도라는) 황송하기 그지없는 성은을 내려주는데 너 따위가 감히’라며 대단한 벼슬아치라도 되는 양 말하고 행동하는 오만함을 용서할 수 없다.      


그래서 분명하게 말한다. 난 밑반찬이 아니다. 아무 때나 냉장고를 열어서 허기를 채울 존재도 아니고, 맛없다고 음식물쓰레기통에 버려질 존재도 아니다. 얘깃거리 안 되는 사람이고 재미없는 사람일지언정 네들이 함부로 재단하고 썼다 버릴 인생이 아니다.

     

방송국놈들, 기레기라는 말이 괜히 나왔을까? 앞으로 내가 먼저 언론 매체에 다가가지 않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언론 매체에서 먼저 인터뷰 제안을 해도 거절할 것이다. 더 이상 속지 않을 것이다.     



‘언론 매체가 구긴 내 삶의 종이를 다시 펴며...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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