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의 순간들

자발적 고립이 주는 선물

by 김나물

나이가 찰수록 돈 안 되는 일에 시간을 투자하기엔 너무 바쁜 인생이었다. 언제나 바쁘게 움직였다. 불치병이다. 바쁘게 사는 병. 현대인의 악함은 바쁨에서 온다더니 맞는 말이다. 무언가에 쫓겨 점심 먹을 시간도 없다며 샌드위치를 베어 물고 서류 작업을 하기가 일쑤였고, 부모님은 나를 보고 대통령보다도 바쁘다며 볼멘소리를 늘어놓기도 했다. 왜, 무엇 때문에, 이토록 바쁘게 살아가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바빴다. 그저 바빴고 바쁘지 않으면 바쁘려고 노력했다.


본격적인 한달살이를 시작하고, 혼자가 되었다. 하던 일도 때려치우고 온 터라, 업무로 나를 찾는 사람도 없다. 집안의 살필 일들도 남편에게 냅다 떠넘기고 왔다. 여기서는 청소를 할 필요도, 밥을 할 필요도 없다. 아침에 일어나면 게으름을 피우며 이것저것 스마트폰을 한다. 그리고 배가 고파질 즈음 아침 겸 점심으로 식사를 하러 나선다. 식후 30분 정도 주변 공원 산책을 한다. 그리고는 숙소 바로 앞 카페에서 아메리카노 한잔 시켜 놓고 이런저런 글을 쓴다. 그러면 저녁이다. 시장에 가서 저녁을 먹고 돌아오면 8시다. 가족들과 통화를 하고 영화를 한편 보고 잠에 들면 하루가 끝난다. 이런 호사를 언제 누릴 수 있을까 싶다.


며칠 전에는 정말 오랜만에 책 한 권을 펴자마자 끝냈다. 책을 덮을 무렵 갈무리에 적힌 짧은 문구들이 훅 들어왔다. 읽고 또 읽었다. 이 문장력을 나도 가져가야지 하는 마음에 또 열심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 마침 또 우연히 발견한 시에 잠시 멈추고 읽기를 반복 했다. 우뚝 서 있는 전봇대에도. 길거리 행상에게도. 문득 스쳐 지나치는 공장에서도. 공원 벤치 옆 노인에도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숨어 있었을까. 얼마나 많은 감정들이 휘몰아치고 갔을까. 순간 궁금하지도 않았고, 그래서 물어보지도 않았던 친정 엄마의 인생에 코끝이 찡해지더니, 노래 가사 하나 하나가 어찌나 마음을 울리던지. 사소한 일에 울고 웃고 하면 갱년기라던데... 예민하게 삶을 감각하랬더니, 주변인들을 향한 원망과 짜증을 가득 담아 예민함을 폭발했었는지 모르겠다.


어제는 숙소에 하릴없이 누워 가족들과 실없는 톡을 주고받고 있는데, 쿵쿵 쿵쿵 울림을 느꼈다. 직감했다. 아, 지진이구나. 아니나 다를까 근처 도시에서 지진이 있었단다. 대만의 지진 알림 사이트를 살펴보니 지진이 비단 이번 만은 아니었다. 대만에서는 꽤 자주 지진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간 대만에 있었던 짧은 며칠동안에도 여러 번의 지진이 있었다. 그때는 느끼지 못했던 지진을 이제야 느끼다니... 숙소 사장님께 오늘 지진을 느꼈다고 말하니. 사장님 코웃음 쳤다. 그걸 느끼려면 기차를 타고 가야 한다나...딸에게 이야길 하니, '망상있는 사람이 들어왔네' 하고 사장님이 당황했을거라나.


아무쪼록 바쁘게 사는 나의 병이 지금의 순간들로 치유되길 바란다. 그리고 앞으로의 삶을 더 예민하게 감각해 나가길 나에게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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