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휴직일기

220716

도은이는 무죄

by 잘코사니

지난 일기(무려 2주 반 전...)에 했던 다짐도 무색하게, 아주 오랜만에 일기를 쓴다. 역시 나란 놈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지난 일기에 쓴 것처럼, 상담 후 깨달은 바가 있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신기한 건, 도은이가 그 작은 변화에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금 더 열심히 놀아주니, 그보다 더 많이 나에게 다가온다. 이전보다 더 많이 아빠를 찾고, 스킨십이 많아지고, 더 크게 웃어준다. 그런 도은이에게 고마우면서도, 이 쉬운 것들을 두 돌이 다 되도록 제대로 못해줬다는 생각에 미안함이 더 크다. 정말이지, 아이는 죄가 없다. 다 내가 부족했던 탓이다.


그러는 와중에 도은이는 일단 어린이집을 쉬어가기로 했다. 아내와 30분 정도 함께 어린이집에 머무는, 처음 등원할 때 했었던 적응 방법을 다시 시도했지만 도은이는 여전히 아내의 품을 벗어나 놀이를 할 생각이 없다. 다른 놀이공간에서도 아내와 함께 해야 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장난감과 놀이에 관심을 보이고 주변의 아이들에 대해서도 크게 거부감이 없는 반면, 유독 어린이집에서는 아무것도 하고 싶어 하지 않고, 누구와도 어울리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다. 어린이집 선생님, 상담 선생님 등과 여러 이야기를 나눈 후 우리는, 이미 도은이에게 어린이집이라는 공간은 엄마와 헤어져야 하는 좋지 않은 기억의 공간으로 자리 잡은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일단은 어린이집을 쉬어가기로 했다.


그 사이 상담도 한 번 더 받았는데, 도은이는 현재 22개월이 넘었으나 발달상으로는 30개월 정도 된다고 했다. 그래서 어린이집 적응이 힘들 수 있고, 오히려 또래보다는 언니, 오빠들과 더 어울릴 수 있다고 했다. 예를 들면 도은이가 속한 만 1세 아이들에게는 아직 소유와 질서의 개념이 명확하지 않아, 놀이방에 있는 장난감을 서로 자기 것이라며 다투기 일쑤다. 그런데 도은이는 본인이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누군가가 가지고 놀려고 하면 그냥 줘버리고 아내의 품에 안겨버린다. 우리는 이걸 도은이가 그냥 낯을 많이 가려서 다른 아이가 다가오는 것이 싫은가 보다, 생각했는데 상담 선생님 왈, 도은이는 질서에 대한 개념이 어느 정도 자리 잡았기 때문에, 다투기 싫어서 그러는 것일 수 있단다. 사례가 한정적이긴 하지만 꽤 많이 본 어린이집 친구들보다 두세 번 본 내 친구의 아이들(앞선 일기에 등장했던 준혁이 등)과 더 잘 어울리는 도은이를 보면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도은이가 낯선 사람을 만나면 여전히 고개를 숙이거나 아내의 품에 안기고, 요즘에는 눈을 질끈 감기까지 하는데, 이건 주시불안 증세일 수 있다고 한다. 지금의 월령에서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도은이의 경우 그 정도가 평균보다는 높아 보인다고 했다. 엄마 외에는 아직 모두가 낯선 사람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어서, 엄마를 제외한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눈을 마주치고 다양한 표정을 보는 훈련을 해주면 좋다고 했다. 그리고 그건 너무나 당연하게 아빠인 나다. 그날부터, 도은이와의 아이컨텍을 과도하게 늘려가고 있다.


아빠가 되는 건 크게 어렵지 않았는데, 좋은 아빠가 되는 건 정말 쉽지 않다. 그래도 나의 작은 변화에 바로바로 반응해주는 도은이를 보며 힘을 내본다. 정말로 도은이는 그저 본인의 기질에 맞게 열심히 크고 있을 뿐이다. 그런 도은이에게 맞는 방법을 얼른 찾아서 함께 잘 성장해나가야겠다. 다시 한번, 도은이는 죄가 없다.



그 간의 도은

- 자두 따기에 푹 빠졌던 도은 : 아파트 앞에 자두나무가 있는데, 정말 ‘주렁주렁’이라는 표현이 딱 맞을 정도로 자두가 많이 열렸다. 아파트 단지에 있는 나무라 별생각 없이 지나쳤었는데, 주민들이 지나가면서 자두를 따가길래 우리도 몇 개 따 보았다. 맛이 괜찮아 관리사무소에 물어봤더니 약도 치지 않았으니 편하게 따먹어도 된다고 했다. 그 이후로 도은이는 자두 따기에 푹 빠져 근 2주 동안 하루에 두세 번씩 자두나무 밑을 탐험했다. 어느 아저씨가 자두나무를 흔들어 자두 따는 것을 목격한 후로는 나와 아내에게 자두나무 흔들기를 명령했고, 본인은 떨어진 자두를 바구니에 주워 담느라 분주했다. 얼마 전 장마가 오면서 자두 시즌은 끝났지만, 도은이는 그 후로도 한동안 자두가 더 이상 떨어지지 않는 자두나무 밑을 떠나지 못했다. 내년을 기약하며...

사실 도은이보다 아내가 더 신나서 자두를 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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