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1일 차
얼마 만의 일기인지 모르겠다. 나란 인간이 인내심과 끈기가 부족한 건 육아할 때만 그러진 않을 테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변명하자면, 근 2주는 썩 유쾌하지 않았다. 솔직하게 말하면 유쾌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고 아주 별로였다. 아내가 나의 육아휴직에 대해 가장 걱정했던, 나와의 다툼이 2-3일에 한 번 꼴로 반복되었다. 이런저런 사소한 다툼의 원인들을 따라가다 보면 그 종착지는 변명의 여지없이, 역시나 나다.
어린이집에 등원을 시작한 지 한 달이 넘었지만, 여전히 도은이는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이라도 보이면 괜찮을 텐데, 오히려 처음보다 더 어려워졌다. 지난주는 내내 어린이집 입구에서 아내의 목에 매달려 자지러지게 우는 통에, 선생님들이 나와서 이리저리 구슬려도 통하질 않아 결국 그대로 아내 목에 매달려 집으로 되돌아왔다. 그 덕에 스트레스가 쌓여서 그런지, 도은이는 안 하던 소리지르기를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원하지 않는 것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ex. 응아를 한 후 닦아야 하는 상황이나 밖에서 놀다가 집에 들어가야 하는 상황 등) 강력한 거부의사를 밝히며 소리를 질러댔다. 회유와 보상(뽀로로 사탕이 최고다)으로 해결되던 것도 안되기 일쑤고, 아내와 내가 본인이 소리 지르는 것을 싫어한다는 걸 눈치챘는지 아무리 말해도 더 크게 소리지르기를 반복한다. 결국 인내심이 부족한 나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강압적인 방법을 사용하게 되고(앞선 예시의 상황이라면 힘으로 닦이거나 들쳐 매고 들어옴), 그게 싫은 도은이는 추후에 유사한 상황에 더 강력하게 거부의사와 소리치기를 반복하게 되는 굴레에 빠져버린 것이다. 아무리 시간이 걸려도 설득하고 부드럽게 풀기를 바라는 아내와의 갈등이 쌓이고, 머리로는 아내가 맞다는 것을 알지만 상황이 닥치면 나는 잘못을 반복한다. 이런 식의 갈등이 우리의 생활 곳곳에서 발생하면서 나는 나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그리고 도은이는 도은이대로 아주 힘든 요즘을 보내고 있다.
별다른 진전이 없이 그렇게 모두가 힘들고 지치기만 하는 하루하루가 반복되고, 결국 어린이집을 그만 보내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다만 이 상황은 어쩌면 우리가 무언가 잘못하고 있는 부분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있으니 상담을 받아보고 결정을 하기로 했다. 마침 우리가 거주하는 지역에 육아종합지원센터에서 운영하는 상담시설에 몇 군데 있었고, 가장 빠른 날짜로 예약한 것이 바로 오늘이었다. 어린이집 등원을 자연스럽게 패스하고, 아침시간을 보낸 후 상담을 받으러 다녀왔다.
아버님은 목적지향적인 분이신 것 같아요.
상담 선생님이 아내에게 한 말이다. 듣는 순간,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나는 목적지향적인 인간이다. 그게 나쁜 건 아니겠지만, 무엇이 목적이고 무엇이 그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될지 설정을 잘못한다면, 그건 나쁜 게 된다. 그리고 나는 지금까지 나쁜 태도로 육아를 하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육아를 하지 않았다고 말해야 될지도 모르겠다.
나는 당연하게 도은이가 어린이집에 잘 적응하기를 바랐다. 그런데 그 목적이 도은이의 행복과 올바른 성장이 아니었다. 도은이가 어린이집에 잘 다녀서, 나에게 자유로운 시간이 생기는 것이 목적이었다. 도은이는 아직 적응도 못하고 있을 때, 나는 점심을 먹으러 어느 식당을 가면 좋을지를 고민했다. 도은이가 잠을 잘 자는 것도, 낯선 사람을 마주했을 때 괜찮기를 바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아무쪼록 순한 아이가 되어, 내가 편해지기를 바랐던 것이다. 한 시간 짧은 상담 동안, 선생님은 우리에게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우리의 고민을 들어주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셨다. 그리고 저 멘트에도 별다른 부연설명을 하지는 않으셨다. 하지만 저 멘트는 내 머리를 둥 울렸다. 나는 정말, 내 시간과 안위를 위해 입과 머릿속 생각으로만 육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내는 사지의 생기를 잃어가며 온 몸으로 부대끼는 동안 말이다.
선생님은 아빠가 조금 더 아이와 가깝게, 아이의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하셨다. 당연한 말이지만 너무나 당연한 듯이 제대로 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상담 후 도은이와 최선을 다해 부대꼈다. 부끄럽게도, 도은이가 두 돌이 다 되어가는 오늘, 처음으로 아빠 노릇을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에게 그렇게 말하니, 작심삼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는 쐐기를 박아주셨다. 다이어트보다 유지가 어렵듯, 이런 태도를 잘 견지하는 유지어터가 되어야겠다. 물론 앞선 일기에서 밝힌 ‘아침마다 운동하기’는 한 달을 버티지 못하고 무기한 중단된 상태고, 이 일기도 지지부진하지만 이건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니 정말 열심히 노력할 거다.
아내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아내는 그런 나를 꼭 안아주었다. 어쩌면 비로소 오늘에서야, 우리가 육아공동체가 된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독박 육아를 한 아내에게 다시 한번, 미안함과 고마움, 사랑을 전한다. 물론 아내는 이걸 읽지 않겠지만.
그나저나 이제 정말 일기도 열심히 써야겠다. 오늘을 기점으로 우리 세 가족도 조금 더 행복해질 테니, 가능할 거다. 부디.
오늘의 도은 대신 오늘의 추천
- 혹여 육아를 하면서 겪는 다양한 문제로 고민하는 분들이 있다면, 우리처럼 상담을 받아보는 것을 추천한다. 확실한 해결책을 얻지 못하더라도, 고민을 부부 안에서만 소모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 전문가의 시선으로 바라봐주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된다. 그리고 대체로 문제는 나에게 있다. 아이는 정말 아무런 잘못이 없다. 엄마들도 대체로 그렇다. 많은 경우, 아빠가 문제다. 그러니 이 글을 읽는 분이 육아와 관련한 문제를 겪고 있는데 심지어 아빠라면, 일단 반성과 자아성찰을 하면 된다. 그게 잘 안되면, 상담도 받아보자. 아무리 나이를 먹었어도 육아는 처음이니 부족한 건 죄가 아니다. 다만 부족을 알고 방치하는 건 죄다. 노력하자, 나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