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치료 현장에서 내가 가장 자주 듣는 첫마디는
“저는 그림 잘 못 그려요.”
치료자이자 안내자로서 나는 조심스럽게 웃으며 말한다.
“괜찮아요. 우리는 화가처럼 멋진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
그냥 마음을 표현해 보는 거예요.”
그 말을 건넬 때마다
나는 상대방의 눈에 어색함과 안도감이 동시에 스치는 것을 본다.
무언가를 ‘잘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잠시 벗어나는 그 순간,
이미 치료는 시작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작업이 시작되면, 많은 이들이
자신도 모르게 점점 몰입하게 된다.
선을 그리고, 색을 바르고, 무언가를 오리고 붙이면서
어릴 적, 아무도 평가하지 않던 시절의 나로 돌아간다.
퇴행이 시작된다.
그리고 그 퇴행 속에는 놀라운 회복의 가능성이 숨어 있다.
어른이 된 우리는 너무 많은 역할을 짊어지고 살아간다.
잘해야 하고, 어른스러워야 하고, 감정을 정리할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미술치료라는 공간에서는
잠시 그 모든 것을 내려놓고 ‘미성숙한 나’로 돌아가도 괜찮다.
색을 마음대로 흘리고,
형태가 없어도 그 안에 감정이 담겨 있고,
그림이 삐뚤 해도
“이건 내 마음이에요”라고 말할 수 있는 자유.
그 순간은 어쩌면,
우리가 가장 순수하게 나 자신이 되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 퇴행의 순간이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진입로라고 믿는다.
기억을 의도적으로 끄집어내지 않아도,
손끝에서 나오는 감정들이 말해준다.
슬픔, 억울함, 외로움, 잊은 줄 알았던 감정들이
종이 위에 조용히 쌓인다.
그리고 우리는 그 감정들을 함께 바라본다.
“이게 나였구나.”
“몰랐는데, 이런 마음이 있었네요.”
그 깨달음은 조용하지만 강하다.
그리고 그다음, 아주 작고 따뜻한 회복이 시작된다.
작업이 끝난 후, 나는 조심스레 물어본다.
“이 그림을 그릴 때, 어떤 기분이셨어요?”
그러면 많은 이들이 말한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손이 가는 대로 했어요.”
“마치 아이가 된 것 같았어요.”
“이렇게 맘대로 해도 되는 거였나요?”
그 말들 속엔 해방감과 낯섦이 공존한다.
삶의 많은 순간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기준에 갇혀 살아온 사람에게
“그냥 해도 괜찮다”는 말은 오히려 더 어렵고 낯선 말이다.
하지만 그 낯섦을 지나고 나면,
사람들은 자기 안의 감정을 조금 더 편안히 들여다보게 된다.
나는 미술치료에서 이 ‘퇴행’의 순간을 단순한 유치함이나 회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가장 근원적인 자아, 보호받고 싶은 내면 아이,
그리고 미처 다하지 못한 감정의 말을 불러내는 귀한 시간이다.
종종 참가자들에게 묻는다.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은 몇 살쯤 되어 보이세요?”
그러면
“다섯 살 같아요.”
“열두 살의 나요.”
하고 대답하는 이들이 있다.
그 순간 나는 알고 있다.
이 작업은 단지 미술이 아니라,
시간을 거슬러 가 닿는 감정의 대화였다는 것을.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는 조금 더 자신에게 다정해지는 연습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