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억과 온기가 편집실을 채우던 날 –
길고도 낯선 여정 끝,
새벽녘 길로이의 전경이 창밖으로 펼쳐졌다.
상쾌한 바람과 함께 마음도 가벼워지는 듯했지만,
머릿속에는 마지막 남은 영상 편집 과제가 맴돌고 있었다.
‘오늘은 꼭 마무리해야지.’
그 다짐과 함께 동생과 조카에게 도움을 청했다.
낯선 미국의 배경,
그러나 오히려 그 이국적인 풍경이
명상 가이드를 더욱 편안하게 감싸주는 듯했다.
우리는 다시 실습 촬영을 시작했고,
조카의 귀여운 디렉팅 아래
음악 누락, 배경 소음 등 사소한 실수로
무려 다섯 번이나 다시 찍어야 했다.
그러는 사이 우리는 어느새 ‘하나의 팀’이 되어 있었다.
한때 멀게 느껴졌던 미영이와의 거리도
이 과정 속에서 순식간에 좁혀졌다.
어릴 적 함께 뛰놀던 기억들이
카메라 너머로, 음악 속으로 자연스레 스며들었다.
그녀는 늘 우리 집에 오던 막내 작은어머니의 딸.
우리 종가댁은 늘 북적였고,
명절이나 제사 때면
친지들과 아이들 돌보는 건 늘 내 몫이었다.
그 시절 미영이와 나는
누구보다 가까운 자매처럼 지냈고,
특히 우리 집은 딸이 귀하다 보니
온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다.
미영은 6살에 이민을 떠났지만,
이토록 많은 추억을 기억하고 있는 모습이
참 놀랍고도 반가웠다.
이제는 딸아이를 시집보낸 엄마가 되어
그 시절 이야기들을 조곤조곤 들려주는데
세월이 참 멋지게 흐른 듯했다.
모두 함께한 촬영을 마치고,
막내 조카가 제안한 요즘 핫한 카데헌을 보았다.
자막을 따라가며 웃고, 울고, 추억을 공유했다.
그 작은 거실 안에서
한국과 미국, 과거와 현재가
한데 어우러졌다.
이날의 편집본이 어떤 결과로 남든,
우리는 이미 충분히 좋은 작품을 만들어냈다.
영상 그 이상,
삶과 기억, 관계의 회복이 담긴 하루.
그리고 나는,
이 순간에도 자비명상 미술치료의 본질을
다시금 깨닫고 있었다.
결국, 우리가 서로를 따뜻하게 바라볼 때,
가족도, 기억도, 마음도 하나가 된다는 것